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김애란 작가의 잊기 좋은 이름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이전 원고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고치고, 버리다 ‘이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동안 그를 스쳐 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을 말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그는 눈부신 순간들을 만났다고, 그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신문사에서 보낸 기나긴 시간을 매듭지으며 나도 잊기 좋은,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첫 번째 이름, 부사(副詞)와 인사신문사에 막 들어왔을 때 고치기
지난달 두산 베어스는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4연승을 거둔 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었다. 두산의 완벽한 수비와 키움(구 넥센) 타자들의 멋있는 안타를 구경하는 것은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졌어도 최선을 다하는 야구를 했다”는 말은 그래도 준우승을 한 키움한테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았다. 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물던 KIA, 삼성, 롯데에는 “감독을 바꿔라”, “니들이 그러고도 프로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프로란 무엇인가. 박민규 작가는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프로의 세계를 이렇게 규
“What is real? How do you define ‘R.E.A.L’?” 영화 를 본 사람이라면 모피어스의 이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네오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인 ‘매트릭스’를 진짜인 줄 알고 살아왔다. 본인이 살아온 세상이 그저 기계들이 조작해낸 ‘가짜’였음을 알게 된 네오는 절규한다. “이렇게 내 손에 느껴지는 가죽 소파의 감촉이 다 가짜라니? 하물며 매 순간 혀와 코로 느껴온 맛과 냄새는 셀 수조차 없는데!” 혼란스러워하는 네오에게 돌아오는 모피어스의 대답은 냉혹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1.새로 이사 온 동네의 A 프랜차이즈 카페는 오후 10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불이 꺼져있었다. 깜짝 놀랐다. 정말 깜짝. ‘전에 살던 동네는 12시까지도 하던데, 여기는 왜 이렇게 빨리 닫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라고 투덜거리며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2.프랜차이즈 김밥가게가 들어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원래부터 있었던 분식집은 문을 닫았다. 새로운 김밥가게는 깔끔해서 좋았다. 자리마다 신용카드 단말기가 놓여 있어 주문하기도 계산하기도 더 편리했다. 건너편에 ‘상가 임대’라고 쓰인 종이
얼마 전, 동네에 새로 생긴 쇼핑센터에 놀러 갔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는 키즈카페를 보게 됐다. 흠잡을 곳 없이 쾌적하고 좋아 보였던 그 키즈카페의 문제점은 딱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 ‘입장료 1만 8000원’. 8000 원도 아니고 1만 8000원이라니. 올해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두 시간 열심히 일해도 아이 한 명조차 키즈카페에 못 들여보내는 현실을 자각하니 약간 씁쓸해졌다.윤이형 작가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에서 주인공 희은은 부모가 되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의 양육자가
인터뷰 - 한국기술거래사회 이덕근 수석부회장,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과학기술경영정책전공 노환진 교수부품·소재를 전부 국산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우수한 개인 연구자와 연구팀을 육성해 나가야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반도체 핵심 부품·소재를 국산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국산화의 현실 가능성과 경제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한국기술거래사회(회장 남인석) 이덕근 수석부회장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과학기술경영정책전공 노환진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덕근 수석부회장 기술독립의 현실화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모든 부품과 소재를
이번 여름방학에는 신문사 수습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와 호주에 다녀왔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온 세상이 아름다웠는데, 다녀온 뒤 깨진 적금을 보며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여행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추억으로 간직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펼쳐 올 여름 내가 다녀온 ‘여행의 이유’를 되돌아봤다.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김 작가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호텔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집은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띄는 의무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에는 가족끼리 서로 주고받은 고통
주 52시간 근무제, ‘워라밸과 일자리’ 두 마리 토끼 잡아노동자의 처우개선,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지난해 2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 이후 약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주 52시간 근무제는 한국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켰을까. 개정된 근로기준법, 무엇이 달라졌나우리나라 근로자는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었다. 근로자대표와 합의를 하면 무제한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이 26개로 광범위하게 규정
대형 서점에 비해 높은 공급률, 최소한의 이윤 남기기 힘들어완전 도서정가제의 필요성, 사람들에게 납득 시킬 수 있어야오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책의 날을 앞두고 우리 주변에서 책을 팔고 있는 ‘동네서점’을 조명하려 한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이 각축을 벌이는 각박한 환경 속에서 거리 곳곳에 위치하던 동네서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물론 독서인구의 감소와 전자책 보급의 활성화라는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출판업 종사자들은 출판·유통계의 고질적 관행이 동네서점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동네서점이 처한 현실대형서점과 온라인
내가 알고, 보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 ‘글을 남들보다 조금 잘 쓰는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나를 성대신문으로 이끌었다. 호된 수습 트레이닝을 겨우 버티고 임명식을 할 때 “진실만을 전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때는 몰랐다. ‘진실’이라는 단어의 무게를.준정기자 때는 피해를 보는 쪽, 동정 여론을 얻고 있는 쪽을 대변하면 진실하고 정의로운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성대신문 사회부 위상에는 ‘사회적 약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소수
인터뷰 -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무작정 처벌하기보다는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법, 부작용 우려돼경제계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하 개정 산안법)이 기업인의 경영 의욕을 꺾고 기업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를 만나 산안법 개정에 대한 기업의 입장을 들어봤다. 개정 산안법에 과잉처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기업에 대한 과잉처벌 소지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정부 개정안 제63조는 하청업체의 노동자 보호를 위한 책임을 누구
인터뷰 -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이태성 간사개정 산안법, 여전히 개선돼야 할 부분 존재해근본적 해결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개정됐지만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에는 아직 진상조사와 책입자 처벌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시민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이태성 간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김미숙 씨와 고(故) 김용균 시민 대책위는 요즘 어떤 일을 하는지.김미숙 씨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집회에 참여해서 다른 산재사고 피해자와 함께 연대투쟁을 하고 있다. 더불어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