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신문에서 보낸 1년 남짓을 되돌아보면 나에게 남은 세 가지의 소중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성대신문 취재기자로서 한 개의 기사만을 남겨둔 시점, 내가 가둬져 있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해준 것들에 대한 회고를 취재 후기로써 담아내고 싶다.처음으로 기회에 대한 감사다. 나는 욕심 많은 게으름뱅이다. 나는 관심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생각하는 속도나 일을 처리하는 속도는 남들보다 한 발짝 느리다. 그래서 첫 기사 발간 과정부터 삐걱거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부서 회의 문건을 늦게 내고, 회의에 지각하고, 인터뷰이
지난해 이맘때쯤 성대신문에 들어왔다. 기자를 꿈꾼 건 아니었지만 내 기사를 읽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의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거쳐 준정기자가 되고 내 이름이 걸린 기사를 쓴다는 설렘이 가득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벽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소재 선정부터 자료 조사, 인터뷰, 문건 작성까지 뭐 하나 쉬운 단계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학기의 나는 그 벽에 부딪혀 처음의 다짐은 잊은 채 나에게 주어진 지면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가뜩이나
고등학교 때부터 오직 언론인이라는 꿈 하나만으로 대학에 입학한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성대신문에 지원했다. 처음 입사해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받고 난 후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나는 멍청하다.’ 수많은 선배와 동기 기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20살이었던 나는 누구도 부럽지 않게 귀염받았지만, 그런 대우와 내 마음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누가 봐도 질 좋은 선배들의 글에 비해 내 글은 한없이 초라했고 앞으로의 기자 생활이 너무나 막막했다. 길고 긴 회의와 마음에 비수를 꽂는 피드백들에 저항 없이 무너져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첫 기
글쓰기란 자해다.이 한 문장을 쓰고 한 시간째 의자에 앉아 있다. 엄청난 취재후기를 쓰고 싶어 예쁘고 멋진 단어들을 찾다 내 머릿속에 문득 든 생각이다.다소 이상주의자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내가 신문사에 입사한 것도, 끙끙 앓으며 기사를 쓰는 것도, 늦은 시간까지 회의하는 것도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다. 시인 안도현이 삶을 타인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 했던 것처럼 사랑을 위해서 때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깎고
취재의 사전적 정의는 기사에 필요한 재료를 얻는 일이다. 나는 그 방법으로 인터넷 검색과 독서, 인터뷰를 이용했다. 기억과 감정이 남은 인터뷰이들이 많다. 먼저 재난관리 기사를 준비할 때 첫 인터뷰이셨던 호남대 문현철 교수님께 내 인터뷰 태도가 서툴렀던 점이 죄송하다. 첫 대면 인터뷰이셨던 정해선 안산 온마음센터장님께서 핸드폰을 안 가져간 나를 지하철역까지 차로 태워주셔서 감사했다. 군 사법체제 기사를 쓸 때, 법무법인 백상 강석민 변호사님께서 바쁘신 일정 중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는 2시간을 내게 주셨다.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는 시
학보사를 생각하는 기자는 있지만 기자를 생각하는 학보사는 없다.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 1년 반,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 기간은 1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느낀 소회다. 격주마다 찍혀 나오는 지면 아래 기자 개개인은 흐려진다. 어쩌면 기자들은 학보사를 구성하는 톱니바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제대로 굴러가질 않으니. 그만큼 기자 개인에게 책임감이 요구되는 곳이다.책임감의 근원지는 기자마다 다를 것이다. 투입되는 나 자신의 노력에, 함께 고민을 거듭하는 타 기자의 마음에,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서투르게 넣
나는 지금 7주차 조판에 나와 취재후기를 쓰고 있다. 원래 미리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 생각해보면 성대신문 활동 내내 시간에 쫓겼었다. 금요일 6시 마감 전에 초고를 미리 써놔야지 하다가도, 자꾸만 변하는 취재상황에 휩쓸리다보면 마감 시간에 전에 겨우 제출하기 일쑤다. 이렇게 정신없이 기사를 몇 번 내고 나니 벌써 겨울이 됐다. 연말이 되니 올 초에 쓴 내 수습일기가 떠오른다. ‘올해까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제목인데, 거기서 나는 우수기자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표는 달성했다.
‘삑, 삑’.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들어가 후반전을 준비한다. 라커룸에 들어온 선수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전반전에 했던 실수에 대한 후회도 남아있을 것이고, 멋지게 성공시킨 드리블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또 후반전은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다. 이번 성대신문 1718호에는 내 마지막 기사가 실린다. 또한 발간이 끝나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학교 단체 활동이 사실상 끝이 나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 호 발간은 내 인생의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와도 같이 느껴진다. 희미해지는 휘슬 소리를 뒤로한 채
부모님의 곁을 떠나 혼자 서울에 와 생활하면서 내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행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자신을 수없이 통제해야 하고 이는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공부가 하기 싫은 것처럼 기사를 쓰는 일도 만만치 않다. 기사가 완성된 후 취재후기를 쓰면 좋게만 써질 것 같아서 기사를 준비하면서 취재후기를 적어보려 한다.일단 소재를 정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난제다. 이전에 성대신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시의성이 있으면서도 가치 있는 소재를 찾아야 한다. 또 참고할 자료가 많아야
고백하건대,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과 쉽게 지치는 체력 때문에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저마다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감과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더 다정한 말을 건네고 친절해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성대신문의 기자가 되고자 한 것도 이 마음과 다르지 않다. 당신의 일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써서 삶을 살아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취재후기를 쓰기 전 나에게 성대신문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무엇인지 헷갈렸다. 처음 성대신문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봤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들어가고 싶었던 단체는 정말 많았지만 나는 시도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단체는 면접과 시험을 봐야했기 때문이다. 면접과 시험이 자신이 없었고 어쩌면 그만큼 단체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의 1학년 1학기는 빠르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아무 탈 없이 대학에서의 첫 학기를 보낸 것은 어쩌면 다행이지만 그만
나는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말랑말랑한 문화면이야말로 신문을 열어 본 사람들이 가장 읽고 싶은 지면일 것이라고 생각해 문화부에 지원했다. 이에 한 학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기사에 담으려 노력했다. 첫 기사인 ‘온라인 선물하기’는 친한 친구의 생일에 선물 대신 보낸 편지에서 시작됐다. 스타벅스 쿠폰이 아닌 더 좋은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고, 친구는 그에 ‘백 개의 선물보다 훨씬 큰 편지’였다고 답했다. 그 순간 카카오톡에서 무난한 선물을 관례처럼 전송하던
기사를 쓰는 것보다 취재후기를 쓰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그 어떤 자료 조사 없이 써야 하는 글이라서 그런 것인지, 이 글 아래 내 사진이 들어가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소 부끄러운 기분이다. 그래도 누구나 채울 수 없는 여론면을 이만큼이나 차지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삼으려 한다. 내 첫 기사가 담긴 1706호부터 이번 기사가 실린 1713호까지, 신문이 8번 발간될 동안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사실 딱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기사 발간 과정에서 놓치는 것들도 많고, 바보 같은 실수도 한다. 이번 기사를 쓸 때도 첫
시작은 늘 들뜬 마음만큼 어렵다. 스물한 살 여름방학의 기억은 전부 교내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기사 준비에 있다. 학교 행정실의, 용역업체 사무실의, 노동자 휴게실의 문을 두드렸다. 양 캠퍼스 건물을 뛰어다니며 층별 휴게실의 위치를 기록했다. 자과캠 청소노동자 권 반장님의 하루를 동행하며 수세미를 들고 계단을 닦았다. 힘든 건 몸이 아니라 어찌할 줄 모르던 내 서툶이었다. 입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아 문 앞에서마다 망설였다. 친절하지 못한 답변 하나에 반나절이 서러웠다. 그리고 발간주 목요일 새벽, 몇 시간짜리 인터뷰 텍스트
1년간의 신문사에서의 여정이 끝났다. 막상 마지막이라고 하니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성대신문이라는 그릇을 내가 채우기에는 너무 컸다. 내 능력이 뒷받침 해주지 못했다. 그만큼 부족하고 어린 나였다. 다행히도 선배 기자들과 동료 덕분에 성대신문에서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선배 기자들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었다. 편향되고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던 나에게 매번 진심 어린 목소리로 내 생각을 수정해 줬었다. 또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에도 선배 기자들은 나의 그릇된 생각에 대해서 다그치지 않고 올바
제목 그대로다. 발간 주 수요일 밤, 내 방에서 시도했던 첫 번째 취재후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지금까지 써온 수많은 내 기사들처럼 편집회의를 거치지도, 체크를 받지도 않으며 단지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것인데도 말이다.자자 다시 집중해 보자. 내 취재후기의 제목이 ‘세 번째 취재후기’가 되는 건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이니까. 여느 때와 같이 발간 주 금요일이 가는 줄도 모르고 내 마지막 부서 기사를 마친 뒤에 마주한 토요일 새벽, 이는 분명히 내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다.돌이켜보면 평범했다. 하루하루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성대신문의 기자라 하면 ‘신문 잘 읽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본인은 약간의 망설임 끝에 ‘고맙다’는 답을 하곤 한다. 지면에서 드러나는 본인의 존재감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성대신문의 뉴미디어부 기자들은 글을 쓰지 않는다. 지면에 자신의 글을 실을 기회는 있으나 대체로 몇 명의 기자들이 함께 글을 쓰며 그마저 사진이 주류인 기사다. 글을 쓰지 않는 기자는 실로 아이러니하다. 글이 아닌 매체들로 기사를 만들며, 다른 기자들의 글을 피드백하지만 정작 본인은 글을 쓰지 않는다. 우리의 주 무대는 유튜브와 인스타그
내가 쓴 기사를 잘 읽지 않는다. 애정이 없어서도,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 기사들은 사실 내 기사가 아니다. 첫 기사를 쓰던 때를 기억한다. 열정 가득한 모습만이 떠오른다. 문화인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설렘을 느꼈고,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다움을 느꼈다. 기사를 쓰는 건 그런 내 세상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내 세상을 잘 담아낸 만족스러운 기사가 나왔고 성취를 느꼈다. 자부할 수 있는 내 기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기사를 쓰던 때를 기억한다. 열심히 탐사한 내 세상을 기사에 잘 담았다. 필요한 내용을 잘 다룬 좋은
취재후기를 쓰기 위해 수습일기를 다시 읽는다. 수습을 거치며 내가 설정했던 목표가 얼마나 이뤄졌을지 확인한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 바뀌었는가.바뀐 것은 없다. 그저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을 뿐이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소중한 생각들을 한 학보사의 기자에게 나누는 다정함을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기사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던 말을 기억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글이 기사라 했다.
자수할 것이 있다. 그것에게 애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의 움직임을 내 손으로 멈추게 한 적이 있다. 살아있는 것을 기계처럼 대했다. 나는 기사를 죽인 적이 있다.기사는 살아있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생각의 움직임, 취재의 움직임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숨을 쉬게 된다. 부끄럽게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 게으름이라는 오만한 핑계에 애써 지기를 자처하며 숨을 멎게 했다. 기계처럼 기사를 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처음 신문사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