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주는 감상은 신기하다. 새하얀 종이 한 장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펜을 잡으면 무슨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제를 잡고 글을 써내려가다가도 문득 종이를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든다. 그렇게 수많은 고뇌를 거쳐 종이에 채워진 것들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면 책이 되고, 사람들에게 지식과 감동을 전하는 매개가 된다. 필자는 어린 시절 독서를 즐겨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방학에 한두 권 겨우 읽는 수준이지만 어렸을 땐 나름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을 읽었더랬다. 독서에
2m가 넘는 네트 상단을 있는 힘껏 훌쩍 뛰어넘어 스파이크를 때리는 공격수. 그 앞을 촘촘하게 가로막는 두 명의 블로커. 블로커 팔 사이로 빠지는 공을 수비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선수들. 공의 움직임에 따라 모든 선수가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배구는 맹목적으로 ‘하나’를 향하는 스포츠다. 공 하나에 경기의 모든 득점이 달려있으며, 코트 위 6명의 선수들은 공만 바라보며 하나의 팀으로 뭉친다. 지난 2일부로 2023-2024 V-리그 포스트시즌이 막을 내리며 남녀 프로배구리그가 종료됐다. 챔피언의 자리를 겨루는 포스트시즌이면
스캔들은 대중을 현혹하기 쉽다. 가장 흔한 가십거리이자 평생 당사자를 따라다닐 꼬리표이기도 하다. 특히 연예인의 개인사가 대서특필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최근 세 명의 배우를 둘러싼 스캔들이 화두에 올랐다. 여태 그랬듯 잠시 오르내리고 사라지나 싶었던 것이 점점 그 부피를 키워 하나의 사건이 됐다. 시작은 당사자들이 SNS에 올린 글이었다. 이를 필두로 며칠 내내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다. 필자는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무감하게 뉴스를 넘기던 중, 한 기사의 헤드라인에서 눈에 띄는 단어를 발견했다. 한 배우가 다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던가. 첫 기사로 ‘정부의 노동개혁’을 소재로 한 사회부 기획기사를 발간했다. 고백하건대, 세상을 바꾸겠다는 고귀한 사명으로 쓴 기사는 아니었다. 기성언론도 아닌 어느 대학의 언론사에 갓 입사한 신입 기자가 명쾌하게 다루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였으며, 원고지 20매 분량 남짓의 기사로 세상을 바꿀 리도 만무했다. 첫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기계적으로 썼던 것은 아니지만 글자 하나하나마다 진심을 담았냐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긍정할 수 없다.해당 기사의 마지막 문단은 아직도 선명히
의대 입학정원 증원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지난달 6일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의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한 달 동안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의료계는 이미 이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하는 중이다. 우리 학교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도 전학년 동맹휴학 성명서를 발표했다.동시에 지난달 20일, 서울시 소재 종합사립대학인 A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의 폐지를 추진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A대학이 2025학년도부터 두 학과에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공개해 해당 학과의 재학생과 교수들로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걸치는 옷은 겹겹이 늘어나고 하늘에선 종종 눈송이가 내리기도 한다. 거리엔 벌써 연말 분위기가 자리 잡았고, 대학가는 기말고사 준비에 바쁜 시기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지난 시간뿐 아니라 수많은 행정이 마무리되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기가 끝나가고, 학생회의 임기가 끝났다. 성대신문도 총학생회의 공약 이행 여부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며 무사히 종간했다.이렇게 올해도 별 탈 없이 열여섯 번의 발간이 마무리됐다. 매 발간을 꼬박 정신없이 해치우다 새삼 돌이켜보니, 그동안 성대신문이
필자는 올해도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은 무료로 먹을 수 있게 됐다. 잘하면 두 잔을 먹을 수도 있다. 일부 학우는 세 잔까지도 먹는다. 방법은 간단하다.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 단과대학 학생회, 학과 학생회 선거에 투표하는 것이다. 지난주 중 사흘간 진행된 제56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한 모든 학우에게는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 증정된다. 단과대와 학과 학생회는 증정 여부와 물품이 모두 상이하지만, 상황이나 운이 따라주면 투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커피 세 잔을 받는다. 이렇게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선거 기
한 여자가 남성으로 위장한다. 그리고 다른 한 여자는 그 여자에게 속아 재혼을 결심한다. 성별을 속이는 데에 성공한 여자는 상대가 임신했다고 속이는 데에도 성공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상대 여자의 주변인과 가족에게 투자 사기를 친다. 추정되는 피해액은 최소 십억 단위가 넘어간다. 상대 여자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세상은 그렇게 좀먹혔다.최근에 실제로 일어났던 이 이야기는 명백한 혼인빙자 사기다. 그리고 혼인빙자 사기는 명백히 비극이다. 결혼을 결심할 만큼의 사랑이 배신당하는 비극, 혹은 한평생 모아온 돈을 잃는 비극일 수도 있다. 이
훌리건(hooligan)이란 축구 등의 스포츠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난동을 부리는 극성팬의 무리를 말한다. 스포츠 팬덤 문화가 비교적 늦게 시작된 우리나라에서는 이 개념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과거 유럽이나 남미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고 한다. 훌리건들은 경쟁 팀의 팬들을 향해 조롱은 물론 물리적인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고 행사한다. 이들은 크고 작은 인명피해를 낳으며, 1985년에는 이 문제로 인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헤이젤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확인하고 지키고픈 마음이, 즉 경쟁심과 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 8일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로 종합 성적 3위를 기록했다. 좋은 성적으로 메달을 따낸 종목과 선수들에게는 찬사가 이어졌다. 특히 그동안 비인기 종목으로 여겨졌던 수영에서는 14개 종목에서 6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총 22개의 메달을 따냈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종목인 축구와 야구도,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 e스포츠도 금메달을 따내며 화제에 올랐다.한편 우리나라에는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남자 선수가 메달을 딸 때마다 따라오는 또 다
에스카라 아티스트 라인업이 공개된 날 학우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인기 아이돌 그룹 뉴진스를 필두로 한 이번 축제의 라인업은 가히 ‘역대급’이라는 수식이 붙을 만큼 화려했다. 각종 SNS와 메신저, 커뮤니티에서도 에스카라의 라인업은 연일 화제였다. 축제 전부터 화제가 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총학생회 SKKUP은 축제를 맞이해 진녹색 스포츠 유니폼 굿즈를 만들어 사전판매했다. 해당 굿즈는 예쁜 디자인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그중 몇몇 품목은 일찌감치 매진되기도 했다.우리 학교는 지난해 총학생회 Spring의 사업을 시작으로 진녹색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놀라는 조앤 윌리엄스 교수의 모습은 SNS에서 급속도로 화제가 됐다. 그녀는 여성·노동·계급 등의 분야의 권위자이며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의 명예교수직을 맡을 만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우리나라를 향해 격하게 통탄했을까. 그녀는 이어서 말한다.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해당 상황은 7월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K’의 ‘인구대기획-초저출생’ 시리즈 중 한 장면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
중학교 시절, 반 대항 축구대회의 주최자로서 심판을 봤던 적이 있다. 사뭇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대회였다.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기 직전, 공이 골라인에 걸친 지점쯤에서 골키퍼에게 잡혔다. 골인지 노 골인지를 따지며 양 팀에서 어필했다. 필자가 머뭇거리자 돌연 선수들끼리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웠지만 이마에 흐른 것은 분명 식은땀이었으리라. 아수라장이 된 운동장에서 외쳤다. “노 골! 공이 라인을 넘었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대회를 시작하며 만든 한 쪽짜리 규정집의 항목 중 하나였다.중학생
원고지 8매. A4 용지로는 절반이 조금 넘는 분량. 신문에 사용하는 베를리너판에서는 한 손바닥으로 충분히 가릴 정도의 크기. 지금 읽고 계신 편집장의 글이 갖는 물성입니다. 이것을 시간으로 치환하면 어떨까요. 재빠르신 분들이라면 1~2분 만에 다 읽으실 수 있으시겠지요.그렇다면 기사는 어떨까요. 이번 학기 성대신문은 호외를 제외한 8개의 호를 발행했습니다. 열여섯 면일 때도 있고 열두 면일 때도 있지만, 확실히 한 권의 책보다 얇은 두께입니다. 8개의 호를 쌓아야 그만한 두께가 될까 말까 하지요. 신문이 갖는 물성입니다. 이것을
2주에 걸친 축제가 막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올해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교정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양 캠퍼스에서 각기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학우가 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행사에 뛰어들었다. 곳곳에서 녹색 옷이나 소품으로 무장한 이들을 찾는 일 역시 어렵지 않았다. 지난 6일, 입하(立夏)와 함께 초여름의 시작을 알렸던 녹음은 우리 학교의 색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개강 후 다소간의 시간이 지나 한결 한적해졌던 캠퍼스에도 다시금 활기가 맴돌았으며, 공연을 보거나 부스에 참여하기 위한 긴 줄에도 학우들은 서로 장난치고 웃으며
지난달 25일, 작은 돼지 한 마리가 화두에 올랐다.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 이슬람사원 건축을 둘러싸고 지속되던 갈등 탓이다. 이슬람사원의 건립을 막고자 하는 의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의 교리가 이용된 것이다.이 충격적인 모습은 단지 이번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2021년 2월에 공사 중지 행정명령이 내려진 이후, 대구에 위치한 이슬람사원 건축 부지는 줄곧 법적 공방의 무대였다. 이슬람사원을 건립하고자 하는 신자들과 이를 막고자 하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지난해 9월에 이르러 공사를 막지 말라는 대법원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또래 친구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단연 ‘개그콘서트’였다. 일요일 저녁이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개그콘서트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고 싶으면 반드시 시청해야 하는 필수 프로그램이었다. 한 주라도 건너뛰는 때에는 월요일 아침에 쏟아지는 친구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그 시기를 거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음이 곧 문화라는 걸 이해할 터다. 이야기를 나눌 소재, 공감대의 형성, 파생되는 요소들에 대한 향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타이밍에 웃음을
더 좋은 글감이 있을 듯해 종일 뉴스를 뒤적였다. 한 학기에 8개의 신문을 펴낸다는 건 필자에게 허락된 지면의 기회도 8번뿐이라는 의미다. 편집장직을 맡으며 필자는 감사하게도 8번이나 글문을 열 수 있게 됐다. 문장 하나하나가 치열하게 쓰여야 하는 지면 위에 개인의 의견을 담는 일은 과분하면서도 애틋하다. 그렇기에 주어지는 기회마다 단 한 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됐든 지금 하려는 말보다 나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더 심각하고, 보다 시의성 있고, 훨씬 중요한 말이다. 이 글을 펴내고 싶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누군가 답한다. “아니오.” 부정의 대답 앞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의문을 표하면 가지각색의 이유가 쏟아진다. 시끄러워서. 철이 없어서. 말을 안 들어서. 공감하는 사람이 반, 그리고 어떤 답을 내놓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반이다.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처럼 아이를 사랑하거나 미워한다.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들조차 저보다 어린 아이를 싫어하고, 어른들은 더 쉽게 이들을 미워한다. 모르는 아이에게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간절한 외침은 이제 구닥다리 광고가 된 모양이다.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아이를 하나의 기호로 여
단지 주소지를 이전하는 것만으로 이 큰돈을 준다니? 이 수상쩍은 제안은 인터넷을 떠도는 불법 사이트 광고 문구 같은 게 아니다. 특별한 것도 없었던 2021년, 필자가 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매일같이 들여다봤던 포항시의 공문이다.지난 2일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개강을 선언함에 따라 거리에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 다들 어디에 그리 꼭꼭 숨어 있었는지 신기할 만큼이나 많은 학생이 학교를 오간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새내기부터 다시 돌아온 학교가 낯선 복학생까지, 도시는 새 학기를 맞이해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