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주는 감상은 신기하다. 새하얀 종이 한 장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펜을 잡으면 무슨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제를 잡고 글을 써내려가다가도 문득 종이를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든다. 그렇게 수많은 고뇌를 거쳐 종이에 채워진 것들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면 책이 되고, 사람들에게 지식과 감동을 전하는 매개가 된다. 필자는 어린 시절 독서를 즐겨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방학에 한두 권 겨우 읽는 수준이지만 어렸을 땐 나름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을 읽었더랬다. 독서에
여자에겐 "남친 있어요?" 남자에겐 "여친있어요?". 나는 종종 상대와 이러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어색한 정적을 무마하기도 한다. 헤테로(이성애자)의 비율이 상당한 우리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인사치레용 질문이지만 사실 이 질문에는 무모한 전제가 내포돼 있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만나야만 한다는 가정 말이다. 일상적인 언어들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될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해준 소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이다. 그중 에서는 쌉싸름한 사랑의 맛을 느낄
다시 한 번 돌아보세요
성대신문에서 보낸 1년 남짓을 되돌아보면 나에게 남은 세 가지의 소중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성대신문 취재기자로서 한 개의 기사만을 남겨둔 시점, 내가 가둬져 있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해준 것들에 대한 회고를 취재 후기로써 담아내고 싶다.처음으로 기회에 대한 감사다. 나는 욕심 많은 게으름뱅이다. 나는 관심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생각하는 속도나 일을 처리하는 속도는 남들보다 한 발짝 느리다. 그래서 첫 기사 발간 과정부터 삐걱거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부서 회의 문건을 늦게 내고, 회의에 지각하고, 인터뷰이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들 기고를 준비하며 저 이전에 기고해 주신 회장분들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다들 너무 멋있고 깔끔한 글이어서 어떤 글을 적어야 할지 고민만 한참을 한 것 같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나거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회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멋있는 회장의 글은 저에게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회장이 되기 전 가지고 있던 생각, 회장이 된 후 깨달은 여러 가지 생각 정도를 적어보려 합니다.회장이 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회장”에 대한 생각… 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로 회
“너, 내 동료가 돼라.” 인기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대사이자, 이를 오마주한 어떤 걸그룹의 노래 가사 중 일부이다. 화자는 청자에게 왜 동료가 되어 달라고 했을까? 동료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국어사전에서 동료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고,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잡다한 세상의 정보를 모아두고 있는 나무위키에 의하면 동료는, 친구와 비슷한 뜻이지만 같은 팀에 소속되어 함께 일하는 사람, 친밀감보다는 같이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뜻을 부각시킨 표현이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있나요? 아마 당신께 쓰는 마지막 편지가 이 편지가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의 이름을 떠올릴 용기도, 당신께 말을 걸 의지도 생기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고자 마무리 인사를 하고자 합니다.재작년이었죠,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던 순간, 나는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참담했던 우리 과에서 나는 언제나 외향성을 지향하는 극소수중 하나였고, 당신 역시 그것에 응해줄 수 있는 극소수중 하나였죠. 난 처음부터 당
건축가인 필자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은 무엇인가요?” 개별 건물이라면, 문묘나 비원이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삶을 의탁해야 하는 도시 차원에서 생각하면,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은 바둑판 모양의 길(어반 그리드, 이하 UG)과 그 길이 만드는 정사각형 땅(어반 블록, 이하 UB)의 관계다. 미국의 UG는 어떻게 시작해서 진화했을까? 미국 도시 대부분은 19세기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유럽보다 UG 기원을 옛 지도에서 찾기 쉽다. 독립 당시, 미국 도시는 해로와 운하를 통해 무역했기 때문에 UG는 해변이
2m가 넘는 네트 상단을 있는 힘껏 훌쩍 뛰어넘어 스파이크를 때리는 공격수. 그 앞을 촘촘하게 가로막는 두 명의 블로커. 블로커 팔 사이로 빠지는 공을 수비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선수들. 공의 움직임에 따라 모든 선수가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배구는 맹목적으로 ‘하나’를 향하는 스포츠다. 공 하나에 경기의 모든 득점이 달려있으며, 코트 위 6명의 선수들은 공만 바라보며 하나의 팀으로 뭉친다. 지난 2일부로 2023-2024 V-리그 포스트시즌이 막을 내리며 남녀 프로배구리그가 종료됐다. 챔피언의 자리를 겨루는 포스트시즌이면
작년, 내가 한창 학교 앞 헬스장을 열심히 다닐 때의 일이다. 내가 다녔던 A 헬스장은 학교랑 가깝고 요금이 아주 저렴한 대신 시설이 좋지 않고, 깔끔한 편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거의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운동을 했었는데 내 바로 전 시간에 운동을 하시는 60대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아주머니는 항상 일회용 샴푸를 쓰고 그 껍질을 샤워장 바닥에 버리고 가는 안 좋은 습관이 있으셨다. 나는 샤워를 할 때마다 그 아주머니가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워 버리곤 했었다. 그리고 매번 생각했다. ‘부끄럽지도 않나? 참 뻔뻔하다!’ 거의 잊
다름을 배려하기 위해 차이가 필요하다.
지난해 이맘때쯤 성대신문에 들어왔다. 기자를 꿈꾼 건 아니었지만 내 기사를 읽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의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거쳐 준정기자가 되고 내 이름이 걸린 기사를 쓴다는 설렘이 가득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벽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소재 선정부터 자료 조사, 인터뷰, 문건 작성까지 뭐 하나 쉬운 단계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학기의 나는 그 벽에 부딪혀 처음의 다짐은 잊은 채 나에게 주어진 지면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가뜩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