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이 이룬 성과가 기쁘다기보단 슬프고, 안타까운 결과를 남겨서 일 것이다.’ (내레이션) 요즘 아주 ‘핫’한 케이블 채널 tvN의 주말드라마 의 주인공인 ‘장그래’의 나레이션이다. 기쁘다기보단 슬프고, 안타까운 결과를 갖게 된 이 ‘성과’는 무엇일까. 바로 회사 내부에 있었던 비리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하지만 비리사건이라면 명백히 윤리적으로 어긋난 일이기에 공개돼야 함이 마땅하다. 옳은 일을 해야 한 그들이 왜 슬플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영업 3팀이 한 일은 단지 팀 차원의 태만한 사람을 혼내준 것이 아
지난 13일 제47대 총학생회 선거 인사캠 정책공청회가 진행됐다. 공청회에는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선 ‘SKK 人 Ship(스킨십)’과 ‘SHOW ME THE 성대’ 두 선본이 참여했다. 각 선본별 소견을 발표하고 언론 3사 및 참관인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올해 정책공청회에는 작년과 다르게 적지 않은 일반 학우들이 참관했다. 본지를 포함한 언론 3사 및 일반 학우들의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공청회는 약 4시간가량 진행됐다. 두 선본은 △교육 △등록금 △복지 △총여학생회 △학생 자치 및 소통 △회칙개정 등 우리 학교 학생
지난주 금요일 제47대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등록이 마감됐다. 이번 선거에서는 ‘SKK 人 Ship’과 ‘SHOW ME THE 성대’ 두 선본이 후보로 확정됐다. 선거운동기간은 10일부터 27일까지 총 15일간 진행되고 투표 기간은 25일부터 27일 3일이다. 투표일이 50% 미만인 경우에는 28일까지 연장 투표를 실시한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는 경선으로 치러진다. 그간의 총학생회 선거를 돌아보면, 선거가 항상 순탄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선거철마다 각종 의혹이나 논란이 생겨 학우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작년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선
얼마 전 고려대학교에서는 총학생회 선거의 비리를 내부자가 고발한 사건 때문에 파문이 일었다. 학칙을 초과한 분량의 선거 홍보물을 인쇄하였고, 합의한 바와 다르게 sns와 전화를 통한 투표 독려를 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2013년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선거 독려 물품으로 고구마가 지급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단선으로 이루어진 선거인데도 학생 식당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고구마를 주게 한 일은 선거에 대한 학교의 과도한 개입과 금권 선거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던 것이다.이처럼 선거 독려 물품을 제공한다거나
요즘 학내에서는 학우들의 학업 능력 향상 및 진로 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한 각종 행사와 강연들이 많이 진행된다. 교양을 쌓기 위한 일반교양 관련 강연도 자주 마련되고, 때로는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핫’한 인사들을 초청해 학우들의 흥미를 끌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일까. 지난달 우리 학교가 중앙일보에서 주최한 ‘2014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종합대학교 1위를 달성했다. 전체 순위 역시 포스텍과 카이스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졸업생의 활동과 일반인의 인식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평판·
날씨가 쌀쌀해졌다.어느덧 10월 중순. ‘개강’이라는 두 글자가 무겁게 우리의 어깨를 누르던 시기도 어느새 휙 하고 지나버렸다. 그와 동시에 ‘중간고사’라는 한 학기의 중반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시험이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한 학기의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학기 초에 기대했던 수많은 것들을 제대로 이루고 있을까. 착실하게 계획한 바를 하나씩 달성해 가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다수는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개강 초의 분위기에 취해, 아니면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쫓겨서 바쁘다는 핑계로 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세상을 살다 보면 나와는 참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매일 대면하는 수많은 사람이 다 서로 제각각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이 아닌 이상, 우린 성장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까지는 같다. 하지만 이를 인지한 후부터, 그 사람이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은 다양한 갈래로 나뉘고 그 사람의 사고 방식의 폭이 결정된다. 수많은 다양한 생각이 존재함을 알지만, 그래도 옳은 것은 ‘내 생각’뿐이라고 생각하는 사
지난 학기 우리 학교 인사캠 셔틀버스 정류장에 근처에 붙어있던 ‘현수막 게시 준수사항’ 안내 표지판의 일부다. 학교 본부는 어떤 내용의 현수막이 게시될 것을 우려한 것일까. 학우들로부터 어떠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두려운 걸일까. 저번 주 수요일 우리 학교 인사캠에서는 ‘ 불허한 성균관대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간담회를 위해 유학/문과대 행정실에 강의실
학술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초창기, 그리고 뜨거웠던 학생 운동의 시기 등 총 50여 년의 세월을 거친 성대신문은 어느덧 200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종전과 다르게 다양한 매체가 생겨나며 그만큼 종이 신문의 입지도 좁아졌고, 대학생들은 예전만큼 학교 신문을 찾아보지 않는다. 멀어진 관심 속에서 성대신문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며 노력하고 있다. 베를리너 판으로의 전환, 그리고 증면2000년대 중후반 성대신문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판형의 변화와 증면이다. 성대신문은 2011년 제1512호를 기해 대판에
흔히들 1994년부터 2003년은 학생 운동이 저물어 가는 시기로 여기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당시는 학생운동을 하는 세력과 소위 ‘비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분리되는 시점이었다. 80년대 학번의 경우 대학생이 학생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면, 90년대는 IMF 등 국가적인 상황이 겹치며 각자의 현실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그런 와중에 “아직 사회 정의가 더 필요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학생들과, 개인적인 생활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대신문도 바로 그 중심에 있었다.90년
이 시기 성대신문은 평온했던 초창기와 달리 중후반에 들어서며 학내외 사건들로 인해 큰 변화를 맞이한다.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성대신문은 학술적 측면이 강한 신문이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성대신문도 그 움직임에 발맞춰 변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의 뜨거운 외침을 담아내며 성대신문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학내 소식과 학술적 측면이 강했던 초창기이 시기의 성대신문은 총 2백 58호가 발행됐다. 1976년에는 제700호를 기점으로 기존
2학기 개강을 맞아 평소보다 더욱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을 개강호. 하지만 몇몇 학보들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지 못한 채 씁쓸한 개강을 맞이했다. 국민대학교 학보사 의 경우 제910호 보도면을 배치하는 데 있어 주간교수와의 마찰이 있었다. 특정 학내 사안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기사를 재배치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단은 주간교수와의 협의를 통해 기사를 재배치했고, 원래 발행일보다 이틀 늦게 배포될 수 있었다. 일단은 신문이 발행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기자단 내부에서 편집권에 대한 이
학생회는 우리 학교 학생을 대표하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의 ‘정부’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린 그들을 우리 손으로 뽑는다. 총학생회는 학생을 위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학생에게 가만히 있으라 해서도, 그렇게 있게 해서도 안 된다. 명색이 총‘학생’회지 않은가. 이런 분위기 속에 학교 마저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한다. 2013년, 시국선언2013년 국정원 사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후 서울대 총학생회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대학가에 국정원 사태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 학교 양
‘너무나 당연히’ 취소되는 문화예술공연 지난달 16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건 이후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희생자를 애도하고 실종자가 구조되기를 기다렸다. 국가 전체가 슬픔에 빠진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예정됐던 문화예술공연은 대부분 취소, 혹은 무기한 연기됐다. 그리고 어느새 문화예술공연은 ‘취소되는 게 당연한’, 더는 취소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됐다. “지금도 오면서 또 취소 전화를 받았어요.” 가야금 싱어송라이터인 정민아 씨도 마찬가지다. 정민아는 다른 홍대 음악가와는 조금 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동. 지상 5층, 지하 4층 규모의 삼풍백화점 5층에서 심각한 붕괴의 조짐이 감지됐다. 운영진은 영업을 계속 하기로 결정했다. 1천여 명에 이르는 손님과 직원들이 백화점 내에 있었다. 그러던 오후 5시 52분. 딱 20초였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건물은 사라졌고, 남은 건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숫자뿐이었다. 20초라는 짧은 시간이 우리에게 남긴 결과였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7시. 가수 김광석은 자신의 고별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조
우리나라 성우의 시작우리나라 성우의 역사는 방송의 역사와 함께한다. 1927년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시작됐고, 텔레비전 방송은 1956년이었다. 연출자도, 연기자도 모두 방송에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다. 말 그대로 그 날 만들어 그 날 바로 내보내야 했던 시기. 이런 환경에서 방송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연극을 하던 연극인이 주로 이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전문적인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방송사는 공채로 성우를 뽑게 됐다. 우리나라 정식 성우들은 각 방송사에 의해 공채로 선발된 후 일
지난달 16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총 476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진 세월호에서 지난 3일 오후 7시 기준 174명이 구조됐고 236명이 사망, 나머지 66명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다. 국가적인 슬픔에 빠진 상황에서 우리 학교 조성룡 교수와 그의 제자들인 디자인대학원 건축디자인학과 원우들이 세월호 구조에 도움을 주고자 모형을 만들어 전달했다. TV 속보로 우리에게 세월호 소식이 알려졌을 때 즈음, 배는 이미 기울어 갔고 순식간에 뒤집혔다. 조 교수는 구조 활동이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하는 전문대 구조조정 지난 2월 19일 교육부에서는 ‘전문대학 육성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 사회를 주도하고, 매력적인 전문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특성화 전문대학’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올해는 1차적으로 70개교를 선정하고, 2017년까지 84개교를 선정해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특성화 사업은 △단일산업 분야 특성화(Ⅰ유형) △복합산업 분야 특성화(Ⅱ유형) △프로그램 특성화(Ⅲ유형) 등 3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 과정에서 연차별 정원 감축계획(3점)과 지난 3년간의 학과
이번에 서일대 예체능계열 학생들이 학교로부터 일방적으로 ‘통폐합’이라는 통보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같은 예술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방주환 : 우리가 직접 해당 사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서일대학교 연극과고, 후배가 더는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하면 정말 막막할 것 같다. 앞으로 학생 정원을 점점 줄여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내가 서일대 학생이라면 너무 답답할 것 같다. 한동수 : 예술대학 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인문대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