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성의 월경’을 주제로 기획 기사를 쓰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원래는 대학 내 생리공결제에 관해서만 다루고자 했었다. 사전 취재를 위해 생리공결제에 관한 일간지 기사를 참고하던 중 그 어디에도 생리공결제의 근본적인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성의 월경에 관련된 제도를 다루면서 여성의 월경이 어떤 경험인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차피 학생은 성균관대 학생이고 그분들의 입장이 되는 건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진짜로 그분들의 삶을 사는 게 아닌데 어떻게 그들의 삶을 이해하나요?” 신문사 선서식에서 선배로부터 이 질문을 처음 받았다. 그때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지만 한 학기 동안 고민해 본 결과 지금 내가 내린
기적의 책꽂이 취재를 정신없이 마치고 신문사로 가는 길에 돌이켜봤다. 포이동과 의경부대. 별생각 없이 고른 두 취재장소가 오묘한 대립를 이루고 있었다. 정부의 철거에 맞서 마을을 지키려는 포이동 주민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물리적으로 하는 의경 대원. 극과 극이다.그러나 이상하게도 포이동 주민이나 의경 대원들 중 그 누구에게도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
2회에 걸친 새내기 문화생활 특집기획이 끝을 맺었다. 웬 특집을 2회에 걸쳐서까지 연재했냐고? 당신이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의 인사캠, 자과캠은 각각 서울과 수원에 따로 존재한다. 정문의 대학로와 후문의 북촌을 다루는 특집을 개강호에 내놓았으니 그 다음 호는 자과캠 새내기들이 즐길 만 한 문화공간을 소개해야 했다. 자과캠의 문화생활이라, 학교 근처
먼 곳을 간 것도 아닌데 험난한 여정이었다. 정류장을 세 번이나 지나치고 말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초침이 계속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럴 때면 정말이지 애가 타는 것이다. 건널목을 가려면 신호등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10분을 제자리에 있기도 했다. 나는 좋은 기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게다. 이번 취재에서 나는 길치라는 것을 깨달
벌써 일 년. 내가 사진기자 직함을 달고 인터뷰에 동행한 때로부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당시 DSLR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고 1시간 동안 대략 400번의 셔터를 눌러댔다. 인터뷰 도중 사진을 찍지 않을 때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인터뷰이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여댔다. 너무나도 설렜던 나머지 당시 인
지난 23일 금요일, 정말 때려치고 싶었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많은 대학생들이 충격에 빠졌다. 대부분 친구들은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니 뽑고 싶은 후보가 없다” 등의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나도 사퇴 소식을 듣자마자 충격과 멘붕에 휩싸였다. 성대신문 대선팀장으로서 진행하던 2P의 대선특집 기사가 모두 물거품이 된
어느덧 ‘성대신문 사진부 기자’ 타이틀을 달고 지낸지 2년이 다 돼간다. 이번 호에 내가 쓰게 된 기사는 대선 후보에 대한 설문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 기사. 이 분석 기사는 내 4학기 신문사 활동에 가장 힘든 기사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통계 자료만 나열하는 이 기사에 무얼 취재할 것이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인터넷
이번에 채식주의를 체험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왜 그들은 고기를 먹지 않을까? 체질상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가 간다. 고기가 몸에 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동물과 환경을 생각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다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채식을 하면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물론 내 자신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라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우선적으로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셨다. 아들이 채식한다고 당신께서 제 눈치를 보며 찌개 종류를 선택하실
“영브르 바퀴벌레 좀 퇴치해 줘!”소위 바퀴벌레 기사를 쓴다고 하자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곤충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나였다. 어렸을 적 흔히들 채집하는 잠자리와 매미 한 마리 만져본 적 없던 나였다. 유년 시절 나비 체험관에서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엉엉 울던 기억도 어렴풋하다. 그런 내가 졸지에 영브르가 돼 버렸다. 궁금
인터뷰 컨택은 한마디로 ‘똥줄이 타는 일’이다. 인터뷰이의 연락처를 어렵사리 얻어낸다 해도 “바빠요” 한 마디면 기사 하나가 엎어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그래픽 노블 번역가 이규원 씨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셨다. 그런데 댁이 경상남도 거창이라고 하셔서
9월 5일,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내 생애 첫 인터뷰다. 사진기자로서 다른 부서 기자의 인터뷰는 수없이 동행해봤지만, 이번엔 나의 인터뷰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의 세포가 쫄깃해지는 기분이 든다. 성대신문의 기자라는 직함에 앞서 개인적으로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정윤 동문은 한없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사회부가 갖는 치명적인 매력 중 하나다. 치명적인 매력은 너무 많으니 오늘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현장의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직접 나가보면 말이 공격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특히 이번 취재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기사의 주제가 대학로
J에게 ... J가“비교과 활동에서 본인만의 키워드를 찾아 캐릭터화해보세요”리더십 전형으로 입학한 이후 출신 고교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을 때 숱하게 했던 조언이다. 올해 리더십 전형으로 우리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있다. 그는 우수한 봉사실적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상을 휩쓸었다. 논문 작성대회에 제출된 그의 논문에는 치열하게 진로를 탐
1. 고등학생 시절,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 또한 대입을 위해 논술을 공부했다. 2시간 남짓한 수업시간 동안 친구들은 원고지를 빼곡하게 채우고 집으로 향했지만 학원 문이 닫을 시간까지도 나는 애꿎은 연필만 문지르며 몇 글자를 썼다 지웠다 할 뿐이었다. 글 쓰는 것이 수능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싫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
나에게 5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중간고사도 끝나고 날은 더워졌는데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겉돌았다. 공부도, 노는 것도, 동아리 활동도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낸 것이 없이 시간만 빠르게 흘렀다. 친구와 마주 앉아 슬픈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학기가 끝나면 일상을 벗어나 어디라도 떠나볼 생각으로 종강 날짜만 세고 있었다. 그러다가 특집기사를
토요일 아침, “아…망했다…” 전날 밤부터 기사 자료도 보이질 않고 설상가상으로 사진칼럼에 쓸 사진까지 언제 없어졌는지 컴퓨터에서 날아 가버렸다. 인사캠에서 이뤄지는 조판작업을 뒤로하고 자료와 사진을 찾기 위해 자과캠으로 향했다. 전철과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이번학기 들어 유독 많이 다니게 된 이 길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또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수많은 고민 끝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아마 큰 용기를 내 도전한 뒤에 찾아오는 성취감을 잊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신문사 일도 마찬가지였다. 면접을 볼 때 선배들이 ‘힘들 수도 있다’, ‘신문을 제작하다 보면 밤을 새는 경우도 생긴
성대신문에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 지 벌써 2학기가 지났다. 1학년 새내기 시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려 이곳, 저곳의 문을 두드렸었고 그 중 한 곳이 성대신문이었다.결과적으로 지금 내가 가장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은 신문사일 것이다. 취재 약속이 생기면 대부분의 다른 선약들은 뒷순위로 밀리고 토요일 새벽은 기사를 쓰기 위한 밤샘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기
나는 아직 멀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부서장이라는 타이틀에 정기자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자리에 앉아 있다. 아니, 내가 언제 이렇게 된 거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신문이라는 것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약 한 달 전,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란 여자, 신문 같은 여자”라고.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캐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