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매우 중요한 법이다. 물론 필자가 헌법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택한 주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헌법이 ‘객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법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600개의 법률 혹은 약 5,000개의 법령이 있는데, 헌법은 이들의 성립과 효력을 뒷받침하는 원천이다. 일반법이 국가로부터 만들어져 국민을 규율한다면, 헌법은 그 반대로 국민으로부터 만들어져 국가를 규율한다. 일반법이 국가작용의 산물이라면, 그 국가작용은 바로 헌법의
중학교 시절, 반 대항 축구대회의 주최자로서 심판을 봤던 적이 있다. 사뭇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대회였다.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기 직전, 공이 골라인에 걸친 지점쯤에서 골키퍼에게 잡혔다. 골인지 노 골인지를 따지며 양 팀에서 어필했다. 필자가 머뭇거리자 돌연 선수들끼리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웠지만 이마에 흐른 것은 분명 식은땀이었으리라. 아수라장이 된 운동장에서 외쳤다. “노 골! 공이 라인을 넘었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대회를 시작하며 만든 한 쪽짜리 규정집의 항목 중 하나였다.중학생
어떤 종목의, 또 어떤 선수를 응원하든 스포츠팬이라면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말 한 마디가 있다. “이제 저 선수는 한물가지 않았어?” 이같이 날카로운 문장들은 의외로 사실에 근거를 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응원하는 선수가 예전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기록할 때 곧바로 들려오는 비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선수들의 활약은 물론 그들의 모든 이야기까지 사랑하는 팬들의 거부감을 야기한다. 때때로 선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객관적인 시각을 잃기도 하며, 불가능할 것을 알지만 응원하는 선수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만을 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기사를 쓰는 것보다 취재후기를 쓰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그 어떤 자료 조사 없이 써야 하는 글이라서 그런 것인지, 이 글 아래 내 사진이 들어가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소 부끄러운 기분이다. 그래도 누구나 채울 수 없는 여론면을 이만큼이나 차지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삼으려 한다. 내 첫 기사가 담긴 1706호부터 이번 기사가 실린 1713호까지, 신문이 8번 발간될 동안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사실 딱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기사 발간 과정에서 놓치는 것들도 많고, 바보 같은 실수도 한다. 이번 기사를 쓸 때도 첫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한 스무 살의 나는 로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동아리에 대한 로망이 가장 컸다. 교내 동아리에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동아리 홍보 부스를 통해 풍물패 얼을 알게 되었고, 얼의 화목한 분위기에 이끌려 가입했다. 그렇게 나는 로망의 대부분을 풍물패 얼에서 이루었다.장구를 제대로 쳐 본 적도 없이 무작정 들어온 동아리였지만, 가을 정기 공연을 진행하면서 풍물놀이에 점점 빠져들었다. 다 함께 만든 공연은 풍물놀이와 풍물패 얼에 많은 애정을 갖게 하였다. 힘들었던 순간들
“대표님, 대표님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대표님이 그렇게 질문하시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다시 하셔야 합니다.”나는 20년 넘게 국내 굴지의 유통회사에서 바이어로, 또 MD 전략팀장으로, 그리고 점장으로 일했다. 대표이사에게 중요한 보고를 하다가 답답해진 마음에 내뱉은 저 말 한마디로 회의실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앞뒤 안 가린 내 태도가 문제인가?우리 시대(?)는 겸손(shy)이 미덕이었다. 아니, 겸손을 강요당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세월
아침이 되면 하루 여행을 시작한다.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여행의 맛을 알고부터 공간 이동에 시큰둥해졌다. 나이가 들어 몸이 고단해진 탓이 클 테다. 대신 시간의 마디마다 나름의 의미를 챙겨 보는 이 노릇도 꽤나 근사하다. 똑같은 일상이 마냥 똑같지 않다는 것도 똑같은 일상을 맞는 것 자체가 은혜로운 일임도 깨닫는다. 어떤 여행도 나를 키우지 않는 건 없다.
요즘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 GPT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는 점에서 이전 챗봇들과 다르다. 사람처럼 대화도 하고 에세이도 쓰고, 심지어 시와 신문 기사도 쓴다.현재의 챗GPT는 초거대 언어모델인 GPT-4(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version-4)를 사용한다.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언어를 생성하고 추론할 능력을 지녔다. 생성형(Generative)이란 문자열, 그림, 음악, 음성 등의 답변을
고등학교 내내 언론인을 꿈꾸며 공부해온 나는 경험의 한계가 있었다. 항상 매체에만 갇혀 사회를 바라봤을 뿐 내가 직접 뛰어들어 볼 기회도, 그 기회를 만들 용기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뒤에 서 있기만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이런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그렇다. 난 어쩌면 세상에 더 뛰어들고 싶었던 것 같다.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성대신문에 들어오고자 결심했다. 내가 직접 주제를 찾고, 기사를 쓰고, 인터뷰이를 찾아 인터뷰하고, 그 기사가 학교 내에 퍼진다는 것이 나에겐 큰 매력이었다. 세상에 뛰어들고자 했던
대학교에 들어온 후의 일상을 돌아보면, 나는 점점 도피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부정이 두려워 시작조차도 않고 무조건적인 안정과 현상 유지만을 추구하였다. 잉여로운 방학을 보내던 중,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통해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그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 때문에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지금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성대신문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결과물에 대해 계속해서 평가를 받아야 하고, 평가를 바탕으로 더
힘들다. 주말을 제외하고 10시까지 학교에 출근하는 것도, 게다가 방학에. 매일매일 생각하고, 쓰고, 찍고, 편집하고, 수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는 게.미래를 차츰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시기인 3학년 1학기에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하고 있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나는 문득 조급해졌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 학과에서 해오던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대신문 뉴미디어부에 지원했다. 사실 나는 항상 저지르고 후회하는 스타일이었다. 최근에는 저지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