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한 장면. 길을 잃고 울상을 짓고 있던 앨리스는 체셔 고양이에게 묻는다. “고양이야, 내가 어디로 가면 좋을까?” “넌 어디로 가고 싶은데?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면 넌 아무 데도 못 가.” 건방지지만, 고양이치고는 꽤 제법인 조언이다. 또 다른 장면. 2013년 12월 12일 호암관 3층에서 한참을 길을 잃은 듯 서성이던 나는 성대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입…입사 지원서 가져왔는데요.” “네, 주세요. (2초 정적) 네, 가세요.” “아, 예&hellip
선택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점심은 무얼 먹어야 하나부터 전공 진입 신청까지 정보의 양과 상관없이 선택은 늘 힘들다. 하지만 가끔 기회를 보면 어렵지 않게 당장 잡게 되는 기회들이 있다. 내게 성대신문도 그랬다. 지난 한 해간 나는 학교 일에 무관심했다. 하고 싶은 동아리 활동 하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게 편하고 즐겁게 지냈기 때문이었는지 학교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레 생겼고, 학교를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법도 여러 가지 있었지만 학교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
처음 성대신문을 지원할 때 가졌던 생각은 ‘배우자’였다. 학교의 일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싶었다. 물론 이것은 신문사를 들어오지 않아도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에겐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신문사에 배우기 위해 들어왔다. 처음 트레이닝을 받던 날, 많이 당황스러웠다. 같이 트레이닝 하는 형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때 의견을 듣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되었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참가한 첫
대학생 1학년이 돼서 활동하고 싶었던 동아리는 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동아리와 토론을 기획하고 참가하는 동아리였다.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서 1학기 때 성대신문에 지원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신문기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정확히 몰랐고 기사 논조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떨어지고 말았다. 단순히 기자라는 직업이 굉장히 멋있어 보이고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를 하는 것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만 가지고는 기자활동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5월 달부터 학생회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
나는 성균관대학교에 인문과학계열 학부생으로 입학했다. 1학년에 전공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근 2주간을 매우 후리하게 보냈다. 전공 과목이나 학점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에 입학 직후에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대학의 유흥 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같은 과 동기를 통해 수습기자를 모집한다는 팜플렛을 보았고, 한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에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신문기자에 대한 뚜렷한 포부나 목표는 없는 상태였다. 대학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보자는 내 목표에도 부합하고, 신문에 내 기사와 내
어렸을 때, 막연히 ‘기자’라는 직업은 멋있어보였다.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사건의 진실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많은 장래희망들과 함께 박봉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는 사실이 ‘기자’를 내 마음에서 배제시켰다.고등학교 때 어느 과에 가고 싶으냐는 물음에 ‘아무 과나 상관없어요.’ 라고 말한 것도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회계사’라는 직업엔 과가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대학 1학년이 되어 예상치 못한 사건을 여러 번 겪으며, 또 생각할 시간이 많
처음 성대신문에 수습기자로 지원했을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수습 때에는 ‘언제쯤 트레이닝이 끝나고 내 기사를 쓰게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어느덧 한 학기가 끝나 이제 성대신문의 정식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트레이닝을 받는 동안에는 많이 힘들었다. 내가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문건을 작성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것이 가끔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트레이닝 때의 경험 하나하나가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었던 것 같다. 몇 달 전의 나는 기자가 되고 싶다
벌써 트레이닝이 끝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성대신문사의 팜플렛을 보고 지원할지 말지 고민한 것이 정말 엊그제 같다.트레이닝 하나 하나는 사실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사실 이렇게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해서 진짜 기자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될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트레이닝에서 배운 것들은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여있었다.사실 이때까지 신문은 고사하고 언론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꿈꿔 본적은 이때껏 한번도 없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받은 팜플렛이 잘 만들어 진 것
처음 신문사에 지원할 때, 바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에 대한 자각은 없었다. 앞으로 내가 배우고 경험할 수 있을 것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수습기자 기간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처음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지원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처음 대학생활을 하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다니게 될 이 학교에 대한 애정을 갖고 학교에 대해 알고자 생각도 했었다.아직은 수습기자이지만, 실제로 학교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진 것 같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도 갖고, 학교의
아침 7시 45분, 잠결에 몇 번이나 끈 알람이 다시금 나를 깨운다. 아침 8시 트레이닝에 가기 위해 깼지만 15분밖에 안 남았다. ‘아 그냥 늦잠 자고 사유서 쓸까’ 하는 생각이 잠깐, 아니 아주 많이 들지만 그래도 겨우 눈곱만 떼고 기숙사를 뛰쳐나와 미친 사람처럼 경사길을 오른다. 수습기자로서 이런 정신없는 아침들은 내가 기자가 되기엔 너무 게으른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그런가 하면 저녁때는 어땠는가. 수습 시절 막판, 선배들의 편집회의에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각자가 가져온 기획들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그
사실 성대신문사에 들어오기 전 홈페이지의 수습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궁금했다. 성대신문의 수습기자들은 도대체 무얼 ‘수습’할까. 6주간 ‘수습기자’라는 아주 매력적인 수식어를 부여받고 트레이닝에 임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일정, 매번 주어지는 과제, 지하철 공기마저 탁했던 아침 트레이닝, 그리고 도착도 하기 전에 지쳐버린 자과캠 원정까지. 사실 기자라는 직업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간 기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가치중립적인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기에. 그에 비해 난 너무 감성적이었고, 그러한
수습기간이 끝난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성대신문에 지원을 망설였던 당시 내 모습이 생각난다. 신입생이 되어 홍수처럼 쏟아지는 동아리 소개 속에서 과연 내가 후회하지 않을지 무척이나 고민했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성대신문에 지원한 후에도 성대신문은 논술 시험으로 나를 수렁에 빠뜨렸고 숨 막히는 면접으로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더랬다. 그렇게 성대신문은 참 쉽지 않은 곳이었다. 입사 후에도 나는 나를 위한 자리 하나 마련되지 않은 그 곳에서 멀게만 느껴지는 기자생활을 홀로 꿈꿔야 했다. 그리고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 곳에서 내
딱 예상했던 것만큼 힘들었다. 트레이닝 과제, 머나 먼 자연과학 캠퍼스, 아침 트레이닝, 저녁 트레이닝, 편집회의, 그리고 조판도 말이다. 학보사가 얼마나 고달픈 곳인지 대학신문 기자인 언니를 통해 익히 봐왔다. 수험생인 나만큼이나 밤을 새우고 고생을 하던 언니를 보며 함께 회의했다. 때려치우겠다고 씩씩대다가도 그날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 언니의 눈이 빛났다. 나는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언니의 빛나는 눈빛을 편집장님에게서, 그리고 트레이너 선배님들에게서도
처음 성대 신문사에 합격했을 떄,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또한 대학 신문 기자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에 신문사에 지원해서 합격까지 했던 나는 정말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그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첫 트레이닝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트레이닝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취재에 임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취재에 앞서 어떤 방식으로 준비를 하며, 취재에 적절한 질문이나 인터뷰 방식이 무엇인지 배웠다. 취재 대상으로부터 가치 있는 정보를 뽑아내
3월 24일 오후 11시 3분, 성대신문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통보받았다. 합격 소식을 밤늦게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며, 왜 이렇게 늦게 문자를 보내나며 투덜댔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매우 좋아했었다. 걱정, 근심 하나도 없이 즐거워했다.아무것도 모르고 성대신문사에 지원한 내게는 어려움이 바로 찾아왔다. 글쓰기라 해봤자 수리논술이 전부였기에 트레이닝 과제도 벅찰 때가 있었다. 체크를 받을 때는 항상 두려웠다. 장시간의 회의들과 조판은 나의 하루를 모두 가져갔다. 컷과 기획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금정에서의 12시 5분 막차를
2013년 3월, 한 학생이 신문사실 앞에서 서성인다. 문을 열지 못한다. 몇 번이나 찾아가지만 문에 귀를 대고 나서는 다시 돌아간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지 못한다. 일주일이 지난다. 모 아니면 도다. 남자는 한방이지. 문고리를 돌린다. 문을 연다. 널려 있는 신문들, 지저분한 바닥, 빈 책상들, 어지러이 널린 종이들. 한산하다. 어디선가 여기자 한 분이 나오더니 굉장히 반가워한다. “무슨 일이세요?” 왜 온지 알고 있는 눈치다. “…수습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왔습니다.”이렇게 나는 성대신문과 인연을 맺게 됐다. 어느새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을 때마다 나는 늘 자신 있게 기자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에게 이어지는 질문들을 하고는 했다. “기자 왜 하고 싶은데?”, “기자 하려면 뭐 해야 돼?”, “기자 되려고 준비하는 거 있어?”, “근데 왜 경제학과 갔어?&
도대체 뭘 수습(修習)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부편집장은 나에게 수습일기를 쓰라고 재촉하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뭘 수습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땐 삶이 어떻게 채워지고 있었는지 감지 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지탱하고 있었다. 오히려 2월 동안의 수습기간 동안 나는 신문사 일을 수습(修習)했다기보다 신문사를 통해 내 짧은 삶을 수습(收拾)했다고 말하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지원한 신문사 일까. 나에게는 선배 기자들이 말하는 대학신문의 정체성, 부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보다 내가 신문사에 지원한 이유에 대한 의문이 가장 앞선다. 지난 한 학기 같이 활동했던 8명 중 절반에 가까운 3명의 동기 수습기자들이 신문사를 떠났다. 모두가 아마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거나 혹은 그 의문에서 얻은 대답이 만족스
처음 성대신문의 문을 두드렸을 때가 생각난다. 논술 시험 보던 날, 간단할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을 깨고 나에게 주어진 논술 시험지는 몇 페이지. 그때 그 당혹스러움. 시험지 속 쉽지 않은 논술 문제들을 보면서, 역시 성대신문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1학년 신입생 때 성대신문에 지원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거였다. 그때 내가 막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