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취재는 그렇게 특별하지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보도부 기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장소 중 하나인 600주년 기념관에서 교무팀 직원과의 인터뷰였다. 보통 학우들은 교직원들과 이렇게 많이 교류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대신문 보도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내게는 익숙한 일이 됐다. 이번 호에서 내가 맡은 기사는 우리 학교에서 최초로 도입되는 하계 집중학기제에 대한 내용이다. 우연히도 내가 성대신문에서 기획부터 기사 작성까지 모두 해냈던 첫 기사가 당시 도입할 예정이라 발표된 하계 집중학기제에 관련된 것이었다.
‘*PIR(Price Income Ratio), 85년 이래 지속적으로 하락’, ‘약 6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내 집 마련’ 두 문장 중 어느 것이 사실일까. 모두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전자의 뉘앙스처럼 한국의 집값이 저렴하지도 않지만 후자처럼 비싸지도 않다. 그러나 두 문장 모두 사실이다. 우리 모두 ‘사실에 기반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사실의 이중적 측면은 우리가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방해한다. 이는 성대신문의 모든 기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일 것이다
지난 주 금요일, '조금다른밴드'의 멤버들을 만나기 위해 이음센터를 찾았다. 사실 그들을 만나러 가기 전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혹시나 나의 질문이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지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만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멈칫하는 기자에게 다가와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먼저 자신들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 밴드 연습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쉽다고 하니, “여기 에어기타로 보여드릴까요?”라며 재치 있게 허공에 연주하는 손동작을 보여주기도
여행을 다닐 때 꼭 누구와 함께 가면 비가 온다는 미신 아닌 미신이 존재한다. 스포츠 기사를 쓸 때만은 내가 그 주인공이 되는 것 같다. 2015년 12월 8일, 내가 생애 첫 스포츠 기사를 위해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았을 때는 강풍을 동반한 가랑비가 경기를 기록하는 나를 괴롭혔다. 2016년 5월 6일, 스포츠 팀장이 되고나서 서울대학교를 찾았을 때도 먹구름이 나를 따라왔다. 취재 두 번 모두 우리 학교가 승리를 거둬 기사를 쓰기에는 완벽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되더라도, 추워서 손이 얼더라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안도감이 항상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냐, 인정받는 길을 갈 것이냐. 어려서부터 늘 주위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고, 또 그에 너무 익숙했던 나는 처음으로 마주한 진짜 갈림길에서 한참이나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4년 전의 나는 무대 연출이 하고 싶었다. 비록 나에게 걸린 기대를 저버릴 자신이 없어서 예술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을 허무하게 포기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꿈만은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고민한다. 괜찮은 대학에 왔으니 그럴듯한 직장에 들어가서 평균치의 연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진 기자는 매주 여론면에 사진 칼럼 ‘모모이’를 싣는다. 이번 호의 모모이는 방학 때 기획을 먼저 잡았었다. 사진은 ‘해변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의 발을 클로즈업하고 그 뒤로는 앞으로 가야 할, 아무 발자국이 찍혀지지 않은 해변이 보이게’ 찍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말해 이번 모모이의 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진에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물은 엉망이다. 처음에 기획에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학교 근처 초등학교를 찾아다녔다. 서울에서 바닷가를 찾을 수는 없으니 비슷한 모래 놀이터라도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지난해 1학기에 성대신문사에 들어와 벌써 기자 활동을 한지 1년이 흘렀다. 작년 1학기에는 수습기자로서 신문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기사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 배우는 단계를 거쳤다. 본격적인 신문사 업무를 시작한 건 준정기자로 활동했었던 2학기 때부터였고 내가 소속된 부서가 보도부인만큼 내가 쓰고 싶은 기획이나 직접 준비한 기획보다는 축제나 연석중앙운영위원회 등 연례적으로 주어지는 기사만 썼었다. 또한 준정기자 때는 학우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제나 학교의 제도적인 문제들을 짚어주는 문제기사도 써야했다. 학교의 문제점을 취재해
사람을 통해 만나는 학문은 참 매력적이다. 학구적이지도 성실하지도 않기에 시험이 눈앞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좀처럼 책을 펴보지 않는 학생이었지만, 누군가를 취재하러 갈 때는 달랐다. 누군가의 말을 통해 듣는 학문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몇 마디의 말 속에 담긴 활자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을 두드렸다. 만나는 이들의 말주변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어떤 이가 정의하는 학문에는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공부한 바를 요약해 말해준 한 마디에는 그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년, 수십 년의 노력이 배어있었다.
‘스윙’이 제48대 총학생회(이하 총학)에 당선됐다. 마지막 하나 남은 투표함까지 개표가 끝나고 스윙의 당선이 확정되자 스윙 선본 측에서 ‘와~’하는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2016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총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지면의 구석에서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권위 뒤에는 항상 책임이 뒤따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견디기’ 이전에 먼저 ‘기억’
대학생 정당원이 받을 수 있는 편견에 대해 기사를 쓰면서, 숨어있는 당원들을 다 찾을 수 있길 바랐다면 기자의 욕심일까? 부탁하는 사람도 거절하는 사람도 미안한 마음에 말이 길어지기를 여러 차례, 결국 메시지 창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간신히 최 학우를 만나 인터뷰하면서는 당원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기자가 오히려 투정을 부릴 지경이었다.지금껏 했던 어떤 인터뷰보다도 어려운 컨택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힘들 것 같지도 않았는데.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해온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언제나 대학신문 기자에게 친절했다. 해주고
“무슨 학과랬죠?”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과 2학년도 이해하기 어려운데..”인터뷰를 마치며 교수님으로부터 기특함, 그리고 우려가 섞인 질문을 받았다. 아인슈타인 시대 때에는 단 몇 명밖에 이해하지 못했던 상대성 이론에 대해 과학이라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운 지식이 전부인 인문계 학생이 쓴다고 하니 그럴만하다. 무슨 기사 쓰냐는 말에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에 대해 쓰려구요”라고 대답할 때마다 느꼈던 사람들의 반응은 나와 과학 사이에 더 큰 벽을 쳤다.인문사회캠퍼스 경영학과에 입학한 순간, 아니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를 선택한
약속에 늦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차가 너무 막혔던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친구에게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친구는 내 이유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 아니었다. 친구는 ‘일찍 출발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 했다. 그 순간 내 ‘이유’는 ‘핑계’로 바뀌었다. 그랬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했던 말을 지키려고 했지만 상황이 문제였다. 그럴 때 마다 난, 이유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이유는 정당하다고 되뇌며 어쩔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결국 핑계를 늘어놓은 꼴이 돼버렸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까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