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편이고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히 끝내려고 하는 편이지만, ‘해야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한없이 게을러진다. 1학년을 보내며 느낀 점이었다. 끊임없이 할 일이 주어지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교 생활은 온전히 나의 선택의 연속이었다. 크게 엉망으로 산 것은 아니었지만 별다르게 바쁜 일 없이 1학년을 보내며 남은 대학 생활은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생하더라도 조금 바쁘게 살면 뭐라도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성대신문에 덜컥 지원하게 됐다.성대신문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
폭풍 같던 새내기 시절이 지나고 2학년으로서의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성대신문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다짐이 필요했다. 혼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책 읽고, 일기 쓰며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새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되어있었고, 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자’의 피상적인 이미지는 평생 공부하면서 세상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직업이었고, 이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완전하게 부합하기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기자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멋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나는 쉽게 얻어지는 것들만 얻으며 살았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애를 쓰는 걸까? 추하게 버둥거리며 애쓰는 것이 ‘노력’이라는 빛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내가 무언가를 위해 힘껏 노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됐어.’ 부끄럽지만 지금도 내가 정말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 에너지가 많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해 보면 1년 동안 대학에 다니면서 한 번도
"만나이로 23살이니깐 우리는 아직 젊은거야". 올해 초, 같이 밥을 먹던 대학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꽤나 안심했었던 기억이 든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학교에 입학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렇다 할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졸업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항상 고민했었다. 그런 와중에 우린 아직 젊다는 친구의 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여럿 보면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젊을 때 하고싶은 일에 도전하라는 조언
나는 글을 담아내길 좋아한다.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 내 감정이나 말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 한다.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말을 다듬어 하나의 장에 꾹꾹 눌러 신중히 표현할 수 있는 글이 좋다.너저분히 나열되어 있는 많은 생각들을 다듬다 보면, 나조차도 다 알기 어려운 나를 살피게 된다.그래서 자주 짧게, 때로는 길게, 대개 적당히 글을 쓰며 나를 담아낸다.좋아하는 글과 사람이 모인 성대신문의 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그리고 이곳에 지원할 당시에 가장 큰 기대를 품고 있던 나의 부서, 뉴미디어 부원으로서의 삶
수습기자 때 웹기사를 발간 하기 직전, 글을 그렇게 많이 고쳐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 싶다.내 주변에는 글을 한 큐에 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끼리는 '작두를 탄다'고 표현한다. 나도 사전적 의미를 몰라서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단다.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황홀경에 빠져서 일을 할 때 생각보다 더 힘이 나고, 에너지가 솟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는 상태.길게 표현할 필요도 없다. 두 글자로 몰입이다. 대체로 몰입은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작두를 타서 쓰는 글은 종종 놀랍도록 매끄럽고 유려하다. 그러나 기사는 에세이도, 비평도,
처음 신문사에 들어와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그건 내 자부심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메리트라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펐다. 누군가 칭찬받을 때, 나에게는 날카로운 피드백이 쏟아지니, 어쩌면 내가 여기서 제일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참 자신감이 떨어져 있을 때, 도망치고 싶어졌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보다 뛰어난 사람들한테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그 마음 내려놓고 보면 이제 넌 그렇게 배우
2학년 1학기가 시작된 나에게 성대신문의 입사는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쏜살같이 흘려보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헤맸고 나에게 중요한 결정들을 회피하고 있었다. 자신이 정한 목표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다른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자리에 멍하니 멈춰 서있는 듯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수습 일기를 쓰기 위해 성대신문의 수습기자 지원서 파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그동안 왜 다른 활동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변명하는 듯한 지원서의 내용에
잘 써야지 다짐하고 쓰는 글은 항상 불편하고 부자연스럽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수습일기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이는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닫는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도 부족하다. 초등학생 때 토론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이후로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전개하는 일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학보사에서 일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사실 학보사에 입사하는 것은 내 대
내 메모장에는 몇 번이고 쓰다듬은 문장들이 있다. 그것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집의 한 구절도 있고, 무언가를 보며 느낀 감정을 직접 담아낸 문장도 있다. 이걸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글이 매우 불친절하고 유려하지 않다는 것을 알 거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는 여태 이러한 글을 써왔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문장들을 뱉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성대신문사에 그저 글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입사했다는 거다.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대범한 도전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누구에게나 그렇듯 도전은 두렵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는 도전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한 번도 내 의지로 다른 동아리나 학생단체를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나 과외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성대신문은 숨어있던 내 도전정신을 이끌어주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려 영상 제작 및 기사를 작성하는 매 순간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새로 접하는 일이 많았기에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고, 엄청난 업무량에 퇴근 시간을 넘길 때면 괜한 도전을 했나
지난 3월 성대신문에 속하게 됐고 지금은 8월이다. 성대신문에 지원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작년 2학기에 이전에 퇴임한 성대신문 선배로부터 성대신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때부터 여기에 들어오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성대신문에서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체계가 잡힌 단체라는 점도 한몫했다. 성대신문 기자가 되려면 먼저 지원서를 제출하고 논술과 면접을 봐야 한다. 3월 면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부적절한 말을 많이 했다. 언론 쪽으로 진로를 정했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