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는 축제의 물결이었다. 지난 3일에서 4일은 자과캠에서 성균제가 열렸고 7일과 8일은 인사캠에서 대동제가 열렸다. 성대신문 제1711호에서 보도면은 양 캠퍼스의 축제를 다뤘으며, 문화면에서도 대학축제의 현주소를 짚었다. 보도면의 ‘다시 분리된 대동제 콘셉트, 성균관 어떻게 담아냈나’에서는 지난해와 달라진 축제의 컨셉 전반을 다뤘다. 이번에 양 캠퍼스가 다른 컨셉으로 축제를 전개한 이유와 각 컨셉의 의미에 대한 학우들의 의문을 해소해 준 기사라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축제 뒤 숨겨진 땀방울’에서 숨겨진 실무단과 학교 측의 노력
지금은 즉문즉답의 시대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질문하고 답도 바로 얻을 수 있다. 잘 발달된 인터넷과 우수한 검색 엔진들, 그리고 최근에는 챗GPT라는 생성형 인공지능 덕분에 원하는 답을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듯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식이 폭발하는 시대를 살면서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 되어 버렸으며, 대량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면서 주어진 정보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현재를 4
처음 만나던 날을 종종 떠올립니다. (3,-1). 공책을 펴고 좌표평면을 그려 당신의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그때 작게 그려 넣은 검은 점이 작도의 시작이었다면, 어쩌면 모든 건 늦여름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분주하고 소란스러운 공기 속에서, 당신은 책상 아래로 살짝 꼬은 다리를 늘어뜨리고는 통-통, 느린 속도로 발 리듬을 탔습니다. 목이 짧은 양말을 신은 탓에 리듬에 맞추어 복사뼈가 사라졌다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의 모든 차림은 계획되어 있었고, 차림새에 있어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실수를 만들지 않
2023년 성균관대학교 대동제(大同祭)는 자과캠 ‘성균제-유록화홍(柳綠花紅)’과 인사캠 ‘해방, 금지함을 금지하다’라는 각각의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었고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유록화홍(柳綠花紅)’은 소동파가 읊었던 바, 버들은 푸르고 꽃[복숭아꽃]은 붉다는 뜻이다. 조금도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즉 청춘의 순수함과 생명력을 상징한 슬로건이라고 생각된다. 인사캠의 ‘해방, 금지함을 금지하다’는 프랑스 68혁명의 구호인데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던 혁명처럼, 역사의 중심인 성균관에서 다시 한번 해방감을
2주에 걸친 축제가 막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올해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교정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양 캠퍼스에서 각기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학우가 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행사에 뛰어들었다. 곳곳에서 녹색 옷이나 소품으로 무장한 이들을 찾는 일 역시 어렵지 않았다. 지난 6일, 입하(立夏)와 함께 초여름의 시작을 알렸던 녹음은 우리 학교의 색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개강 후 다소간의 시간이 지나 한결 한적해졌던 캠퍼스에도 다시금 활기가 맴돌았으며, 공연을 보거나 부스에 참여하기 위한 긴 줄에도 학우들은 서로 장난치고 웃으며
선선한 초여름을 뜨거운 젊음으로 가득 채우는 대학 축제 시즌이 다가왔다. 화려한 축제 시즌의 포문을 여는 건 다름 아닌 우리 학교다. “요즘 축제하지 않니?” “나 학생 때도 싸이가 왔는데.” 흐뭇하게 과거를 추억하는 어른들의 초여름에도 축제의 기억이 배어있나 보다. 풀 내음이 풍겨오면 잔디밭에 슬슬 설치되기 시작하는 무대장치처럼 우리 삶은 변치 않는 것투성이다.변치 않는 것은 오랜 친구처럼 안락함을 준다. 이맘때가 되면 벚꽃이 피겠지, 여름이 오면 하루하루가 맑아 기분이 좋겠지. 당연히 오리라는 믿음과 함께 기대도 설렘도 찾아온다
춥고 두꺼운 벽을 뚫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올라오다.
세차게 비가 오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쨍쨍한 날씨가 이어진다. 변덕을 부리는 봄날의 날씨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태도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요즘이다. 어느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찾아오다가도, 때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갈증이 샘솟기도 한다.변덕스러운 날씨, 오락가락하는 내 기분과 다르게 시간은 진득하리만큼 정직하게 흘러간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 강사 알바를 하러 지하철에 올랐다. 그때부터 꽤 긴 시간을 가야 했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1년간의 신문사에서의 여정이 끝났다. 막상 마지막이라고 하니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성대신문이라는 그릇을 내가 채우기에는 너무 컸다. 내 능력이 뒷받침 해주지 못했다. 그만큼 부족하고 어린 나였다. 다행히도 선배 기자들과 동료 덕분에 성대신문에서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선배 기자들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었다. 편향되고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던 나에게 매번 진심 어린 목소리로 내 생각을 수정해 줬었다. 또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에도 선배 기자들은 나의 그릇된 생각에 대해서 다그치지 않고 올바
요즘 넷플릭스에 방영되는 “나는 신이다”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음의 질문을 하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필자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높은 자살률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종교가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서구의 많은 연구 결과들은 대체로 종교가 자살 생각이나 행동을 줄여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종교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종교별 차이는 있는지, 그리고 종교를 가진 사람이 낮은 자살률을 보이는 구체적인 이유
'이 세계는 작은 보물로 넘쳐난다. 이 사실을 의식하며 지낸다면 삶에는 늘 보물찾기의 설렘이 함께할 것이다.'-모리사와 아키오『사치스러운 고독의 맛』 중.
‘정중동’은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운 한자성어이다. ‘정’은 조용함을 의미한다. ‘동’이야 모두 알테지만 움직인다는 뜻이다. 정중동 – 조용함 속에 움직인다는 뜻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정중동'을 요란하지 않되 깊게 흐른다는 뜻으로 새긴다. 사려가 깊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함부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정중동의 사람이 반드시 과묵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중동'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필요한 가치이다. 평소에 말이 많고 떠들석한데 중요한 판단과 결정에서는 사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