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던 소녀에서 식물분류학 전문가로식물분류학의 매력,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발아하는 어린 시절, 호기심 많은 소녀전남 나주의 시골에서 자란 이 동문은 서울을 동경했다. “6살 때 서울에 처음 갔는데 너무 인상적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서울에 다녀온 후로 부모님께 서울로 보내달라고 계속 졸랐어요. 그 당시에 오빠도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에서 공부하도록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셨어요.” 상경한 그는 공부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중학교 때 그는 동경했던 국사 선생님을 보며 사학을 공부하고 싶었
탐험, 과학을 표현하는 좋은 채널생생한 콘텐츠로 흥미 끌어내야어릴 적부터 과학에 흥미가 있었나.난 과학포기자였다. 수능 당시 과학 과목은 모두 4번으로 찍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별을 보며 자랐지만, 대전으로 전학을 가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시험지의 작은 지문에 지구를 담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컴퓨터공학과를 간 이유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보다 수학과 과학 지식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했던 프로젝트가 아리랑 위성 관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쏘아 올린 위성이 지구
우리나라 탈모 환자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탈모환자는 2015년에 20만 8534명, 2016년에는 21만 2916명으로 그 수가 매년 5% 정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탈모환자의 43.5%는 20~30대였으며, 2012년보다 20대 탈모환자가 7.5%나 증가했다. 미디어 여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조사를 보면 25~45세 사이 남성 801명 중 탈모를 겪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30세 이전에 처음 탈모를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탈모는 더 이상 나이 든 사람들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젊은 사람들
탈모 전문의약품으로 해결해야정확하고 빠른 진단 필요해 탈모 유형마다 원인과 치료법이 다른가. 사람들이 중요하게 알아야 하는 탈모 유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남성형 탈모는 M형, C형, L형, Vertex V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의 영향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남성형 탈모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탈모의 영역이고 전문의약품도 나왔기 때문에 치료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원형탈모는 동글동글한 동전 크기의 모양이 여러 군데 생기는 유형이다. 원형탈모는 후천적인 요인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원형탈모는 특히 적극적인 의학
탈모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서 5학년 때 치료되지 못하고 완전히 다 빠져버렸어요. 어린 마음에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해서 모자를 써서 가리려고 했죠. 남성형 탈모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어린 나이 때부터 시작된 원형탈모가 눈썹까지 다 빠지는 전신 탈모로 이어져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죠. 당시 겪었던 심리적 고통은 어땠는가.대인관계가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놀림을 많이 당했는데, 가까운 친구들이 놀릴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친한 친구라
‘관람하는’ 취미에서 ‘만드는’ 직업으로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 만들고파 애니메이션, 취미에서 전공으로어린 시절 황 동문은 때로는 외향적이고 때로는 내성적이었다. “다니던 교회에서 연극반을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중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내성적으로 변했어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주된 취미였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꾸준히 방송이나 광고홍보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신문방송학과와 광고홍보학과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전공은 다름 아닌 ‘영상학과’였다. “우리 학교 영
공대생에서 늦깎이 화가로 데뷔남을 위한 창작 아닌 나를 위한 창작 하고파 소년, 꿈을 스케치하다단칸방을 전전한 유년 시절 박 동문은 생각 많은 관찰자였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만 여덟 군데를 다녔죠. 사회성이 길러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는 자연스레 두꺼운 세계문학 전집을 벗 삼게 됐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지만 두세 번 읽다 보니 의미를 깨우치게 되더라고요.” 동화 속 ‘피터 팬’을 꿈꿀 나이에 소년은 사람들 사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소설 ‘파리 대왕’ 같은 일이 아이들 세상에도 일어났
한국과의 따뜻했던 첫 만남친절했던 사람들 잊지 못해다름을 인정하고 귀 기울이는 게 중요 파키스탄에서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저는 파키스탄 북쪽 히말라야 산이 있는 곳에서 자랐어요. *스카루두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훈자 마을에서도 자랐죠. 사실 마을이 고산 지대여서 발전된 지역은 아니었어요. 전통적인 생활을 했었는데, 전통 스포츠는 *폴로였어요. 그런데 저희는 말이 없으니까, 뛸 때 말처럼 뛰고 이렇게 놀면서 자랐습니다. 축구도 좋아했었고,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어요.한국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한국에 관심이 생긴 계
어릴 적 어떻게 자랐나.굉장히 독특하고 낭만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어요. 말하자면 ‘아티스틱하고 철 없는 보보스’셨죠. 감성 충만하고 비현실적이셨어요.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은 흥했다 망하기를 반복했고 가계는 안정되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생활비를 아껴 먹을 것을 준비하는 대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날씨가 좋으면 꽃을 사는 등 자유롭게 사셨죠. 그런 자유로움이 부모님께서 우리 다섯 형제에게 물려주신 가장 큰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생활방식과 예술적 감성 덕에 지금 형제들 대부분 예술 쪽 일에 종사하고 있죠.우리 학교에서 패션과
전국 최초로 소방 관련 자격증 3개 분야에서 전부 1급을 취득해, 이름하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소방관으로 불린다. 어떤 계기로 이 같은 도전을 했는가. 시민들은 잘 모르지만, 소방관은 사실 구급대원, 구조대원 그리고 화재진압대원 총 세 개의 전문 분야로 구성돼 있어요. 현장에 나갈 수 있는 전문 대원들의 수가 분야별로 모두 많다면 가장 좋겠지만, 소방 인력은 현실적으로 많이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현장에 있는 소방관으로서 골고루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예를 들어 구급대원이 출동했을 때 화재가 잇따라 일어나거나
훈장을 꿈꾸던 소년, 꿈에 한 발짝 다가가다“어렸을 적 꿈도 훈장이었어요.” 훈장이던 조부의 가르침 하에 한학(漢學)을 배운 박 동문은 어린 시절 수많은 동양고전을 접하며 자연스레 고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학창 시절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훈장이라고 답하곤 했다. 입시 준비에 한창이었던 고등학생 때에도 고전을 향한 애정은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우리 학교 동양철학과에 진학했다.“저는 정말 흥이 많은 학생이었어요.” 박 동문은 ‘흥’을 ‘관심사에 대한 열정’이라고 이야기한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동양
과학에 호기심 많았던 유년시절“어렸을 때부터 로봇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충청북도 청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 동문은 원래 로봇 분야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 동문은 당시 프로그래머나 공학자가 유망한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어 막연하게 생각이 있었는데, 우연히 친척집에서 쓰던 컴퓨터를 집에서 쓰게 된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어떻게 이런 물건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기했죠. 특히 ‘버추어 파이터’라는 게임
송준민(수학 10) 학우 "나에게 그루밍이란, ‘자신감의 원천’이다"셀프케어나 스타일링의 범위는.기초적인 피부 관리와 더불어 피부과에 꾸준히 다니고 있다. 화장은 평소에는 거의 하지 않지만 특별한 날 BB크림으로 베이스 메이크업은 하고 있다. 헤어는 파마를 하고 드라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교내 잡지 동아리 ‘맵시’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 셀프케어나 스타일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패션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전반적인 스타일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맵시에서 활동하면서 뷰티
그루밍족은 마부(Groom)가 말을 꾸미는 데서 유래한 말로 패션과 미용에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투자하는 남성을 일컫는 신조어다. 오늘날 남자가 꾸미고 관리하는 것은 더는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듯 따가운 눈길을 보낼 일이 아니다. 여권(女權) 신장으로 인한 남성의 사회적 영향력 감소로 관리하는 남자, 그루밍족이 등장했다. 과거보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갈수록 활발해지면서 남성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남성도 신체 자본이라고 표현되는 외모를 잘 가꾸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고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실제
남자가 화장을 해?얼굴에 분을 찍어 바르고 있는 거울 속의 본인을 대치하고 있노라니 허망했다. 남자가 화장이라니. 화장은 여자들만의 권리이거나 의무 그사이 어디쯤일 것이라 생각해왔다. 민낯을 벗어날 수 있는 무기로써, 혹은 민낯을 가려야만 하는 족쇄로써 화장은 여자들만의 그 무엇이라 여겨왔다.하물며 남자의 화장이랴. 기자에게 화장하는 남자란 성소수자이거나 영업 전략에 충실한 남자 아이돌 스타 정도였다. 이들은 영육일치(靈肉一致) 사상에 따라 외모를 가꾸었다던 신라 시대 화랑과 같이 고대 적 먼 나라 이야기 속 인물들처럼 느껴졌다.운
인터뷰어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1990년대 후반에 웹진 를 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 2000년 에 칼럼을 연재하던 중, 우연히 ‘인터뷰 글’을 쓰게 됐죠. 얼떨결에 다른 기자의 인터뷰에 동행했는데, 그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인터뷰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2001년엔 7개월 동안 여성 주간 신문 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어요. 이후 직장을 그만두면서 전문 인터뷰어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인터뷰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면서 자
위의 시조는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주제로 한 윤선도의 시조이다. 자연은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부터 사람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이자 풍경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풍류의 장소이기도 했다. 또한 수백 년 전 조상들에게 자연은 관리의 수탈과 세금 부담으로 생긴 삶의 비애를 극복할 수 있는 치유제였다.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는 들과 바닷가에 있던 사람들의 거처를 ‘건물 숲’으로 옮겼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밥을 먹고 따
전봉석(51), 오경순(56) 부부가 운영하는 초가 민박집은 강원도 영월 공기리에서도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는 외딴곳에 있다. 대중교통으로도 닿지 않는 외딴 곳이라 전 씨는 트럭을 몰고 터미널로 손님을 데리러 온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 산에서 사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전 씨는 “도시에서는 늘 쫓기는 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돈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기자는 전 씨를 만나기 전까지도 마감 전 제출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오후 2시경, 탈탈
허 씨의 집은 강원도 깊은 산골에 위치하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을 달렸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에서 푸르른 나무와 산으로 바뀌어갔다. 차에서 내려 아직 채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와 진흙으로 덮인 비포장도로를 15분가량 걸어서야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핸드폰 통신은 두절되었고 울창한 나무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서울생활만 30년, 자연인으로 다시 태어나다허 씨의 고향은 강원도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 밑에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어렸을 때부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자연에 사시는 분들 대부분이 IMF세대이다. 여러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기인’으로서 이런 분들을 많이 만났다. 이분들을 한데 모아 사회적으로 조명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실험적으로 시도해본 것이었는데 시청자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정규프로그램으로 제작하게 됐다.프로그램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시국과도 어느 정도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답답하고 각박한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 살아가는 자연인들의 모습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