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자기를 버리고 간 보호자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의 실수로 보호자를 놓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5일, 작은 돼지 한 마리가 화두에 올랐다.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 이슬람사원 건축을 둘러싸고 지속되던 갈등 탓이다. 이슬람사원의 건립을 막고자 하는 의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의 교리가 이용된 것이다.이 충격적인 모습은 단지 이번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2021년 2월에 공사 중지 행정명령이 내려진 이후, 대구에 위치한 이슬람사원 건축 부지는 줄곧 법적 공방의 무대였다. 이슬람사원을 건립하고자 하는 신자들과 이를 막고자 하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지난해 9월에 이르러 공사를 막지 말라는 대법원
너무도 당연해 그것이 일상이라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너무 당연했던 것이었기에 그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 당장 내일부터 내 모든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에 직면한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앞으로의 삶을 위해 어떤 선택을 내릴까.영화 의 주인공 윌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다. 그가 사랑하던 모든 일들은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일상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사랑하던 자신의 일, 즐겨하던 운동 등 그를 채워온 당연했던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삶을 채우지 못했다. 그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악기로 서로 다른 음을 내고 그 음들은 하나의 곡으로 수렴한다. 엉망진창이던 첫 합주에서 몇 번의 합주를 거쳐 완벽하게 들어맞는 박자와 음정을 몸소 느낄 때면 짜릿하다. 밴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2년 전에 동아리에 들어와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처음 베이스를 잡았다. 처음 베이스를 잡았을 땐 내가 맞는 소리를 내고 있는지, 제대로 된 자세를 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악보가 지시하는 대로 손을 프렛에 가져다 댄 채 줄을 튕겼다. 나는 그럴듯하게 연주는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였다.작년
제목 그대로다. 발간 주 수요일 밤, 내 방에서 시도했던 첫 번째 취재후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지금까지 써온 수많은 내 기사들처럼 편집회의를 거치지도, 체크를 받지도 않으며 단지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것인데도 말이다.자자 다시 집중해 보자. 내 취재후기의 제목이 ‘세 번째 취재후기’가 되는 건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이니까. 여느 때와 같이 발간 주 금요일이 가는 줄도 모르고 내 마지막 부서 기사를 마친 뒤에 마주한 토요일 새벽, 이는 분명히 내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다.돌이켜보면 평범했다. 하루하루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저는 지난 30년간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학의 경이적인 발전을 지켜보았습니다. 짧은 전공지식으로만 알고 지내던 정보들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영역까지 진보하는 공학의 성취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경지로 발전해가는 추세입니다. 이런 추세는 공학자와 과학자를 자신의 직업적 영역에 좀 더 깊숙하게 매몰시킵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은 성공적인 직업적 성취만이 인생의 성공이나 행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직업
"Light of Korea"
대학가에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점이 시험공부로 바빠지는 때와 매년 겹쳤다. 올해 벚꽃은 중간고사 한참전인 3월말에 폈고, 꽃이 거의 진 다음에야 때늦은 벚꽃축제를 진행한 지자체들도 있었다. 동해에서 잡은 명태는 밥상에서 사라졌고, 겨울날 개천에서 썰매 타던 추억도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일상의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장기적인 기온상승의 원인은 무얼까? 지구에 엄청난 에너지를 보내주는 태양의 활동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과거 1만 년 전부터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또래 친구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단연 ‘개그콘서트’였다. 일요일 저녁이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개그콘서트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고 싶으면 반드시 시청해야 하는 필수 프로그램이었다. 한 주라도 건너뛰는 때에는 월요일 아침에 쏟아지는 친구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그 시기를 거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음이 곧 문화라는 걸 이해할 터다. 이야기를 나눌 소재, 공감대의 형성, 파생되는 요소들에 대한 향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타이밍에 웃음을
본 칼럼은 영화 의 내용과 결말을 담았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영화 은 감상 직후에는 그 여운이, 다른 매체를 통해 전문가의 해석을 들은 뒤에는 해석에 의한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아빠한테는 뭐든지 말해도 되는 거 알지? 아빠도 다 해본 거니까 뭐든 얘기해도 괜찮아. 그런 일 있으면 말해줘, 알았지?” 두 부녀가 떠 있는 아름다운 바다와도 같이, 부모의 아량은 한없이 넓다. 이 장면을 보며 나의 삶에 절대적인 지지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말을 남긴 뒤 아빠가 떠나버린다면
음악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면이 주어졌다. 음악에 대해 쓸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음악이 왜 멋진지 설명해보도록 하자.음악은 어떤 시간을 붙잡아버린다. 지금 핸드폰을 들어 음악을 틀어보자. 3분이든 5분이든 8분이든, 일정한 시간이 제시되고 그 시간 동안 음악은 재생된다. 지정된 시간 동안 지정된 속도로 펼쳐진다. 글을 읽거나 그림을 보는 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음악에는 ‘속도’라는 속성이 내재해있다. 글이나 그림은 감상자 자신이 임의로 정하는 속도에 맞추어 흘러가고, 이를 통해 작품이 감상자의
조급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