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시위 때문에 늦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의문을 제기하고 논리의 태를 갖추고자 했던 불만들 역시 이제는 만성적인 피로 내지 가벼운 짜증으로 변한 듯하다.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시위가 ‘일상’으로 표현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근래 사람들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두고 “또 시작이네”하는 말로 일축하기 일쑤다. 비판 의식과 권리 보장 논의를 담은 시위는 그렇게 납작한 불편이 된다. 이제는 지하철이 지연됐다는 소식만 들어도 “보나 마나 이번에도 시위 때문이겠지”하고 내뱉는
최근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많이 하락하고 있다. 사실 지난 3년간 전국 부동산은 역대급 호황이었다. 당시 영끌해서 아파트에 청약하여 청약에 당첨된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의 희비는 엇갈렸다. 그런데 이제는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그 희비가 역전됐다. 폭락한 자산만큼이나 걱정과 염려는 치솟는다. 그리고 시름은 깊어간다.집(陽宅)은 중요하다. 가족들의 삶을 의탁해야 하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땅과 집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부동산이고 투자이다. 집값이 오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지난 15일, 샌드위치의 소스를 만들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뒤 보고 후 신고가 이뤄지기까지는 10분이 걸렸다. 야간조 동료들은 배합기에서 소스를 퍼내고 피해자를 직접 수습해야 했다. 주간조 동료들은 몇 시간 뒤 흰 천으로 덮어둔 사고 현장 옆에서 일을 해야 했다. 피해자의 빈소에는 그가 근무하던 회사의 봉지빵 두 박스가 답례품이랍시고 덩그러니 놓였다.회사가 직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느 곳에서도 사람에 대한 존
2017년 9월 방탄소년단은 노래 ‘고민보다 GO’를 발매했다. 해당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티끌 모아 티끌 탕진잼 다 지불해 / 내버려 둬 과소비 해버려도 / 내일 아침 내가 미친놈처럼 내 적금을 깨버려도’ 노래 후렴에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자는 뜻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준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해당 노래의 가사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드러지는 청년들의 소비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노동시장의 위축이라는 현 상황에서 청년들은 불확실한 미
Do It Yourself: DIY! 무엇이든 한번 스스로 해보자는 말입니다.익히 들어봤을 대부분의 밴드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범한 학생, 직장인, 교사, 엔지니어가 악기를 잡고 멋진 곡을 써내어 성공했다는 것이죠! 영화 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던 밴드 ‘퀸’도 대학원생, 교사, 디자이너와 같은 범인(凡人)들이 모여 결성한 밴드입니다. 유명한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 역시 악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노동자 계층의 형제가 주축이 되어 성공한 그룹이고요,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엎질러진 불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열심히는 하자. 내가 벌린 일에 책임을 져야지.” 처음 신문사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되뇌었던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열정이 빛을 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수습기자 시절 처음으로 참여한 편집회의에서 열정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기자님들을 보며 3학기쯤 되면 내 기사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넘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하곤 했다. 마지막 부서 기사 발간을 마무리한 시점에서 그런 추측이 낯 뜨거운 생각인 것을 잘 알고 있다.기사를 쓸수록, 다른 기자들의 훌륭한 글을 읽을수록, 내
문화예술 분야 곳곳에서 훔치고, 엿보고, 자기 것으로 주장하고, 심지어 훔치고도 시치미를 떼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그릇된 행동에 시치미로 일관하는 것은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전략일까?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고질병. 이러한 일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대중들의 비난과 질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때로는 비난받는 이들에 대한 동정표가 몰리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저지른 ‘훔친 전력’이 지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학자로서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는 명백히 잘못된
어느 날 나는 ‘자연스럽다’는 말이 새삼스러워졌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친한 언니의 고민을 들으면서.“뭐든 여유롭게 툭 던지는 사람들이 부러워. 일도 인간관계도 별 탈 없이 유연하게 해내더라고. 근데 나는 그러질 못하거든. 이제 좀 자연스러워지고 싶어.” 고민을 털어놓는 언니의 말에 나는 아무런 위로도, 조언도 못했다. 내가 아는 자연스러움은 사진 찍을 때의 ‘그게 뭐야, 자연스럽게 웃어봐’나 삐죽 나온 잔머리를 굳이 정리하지 않는 일 정도였으니까. 그 의미가 풍부해진 건 작은 한지 공방을 다니면서다.인사동 골목을 돌아 한적한 샛길로
대학에서 수학은 왜 배우는 것일까? 대부분의 수학 전공이 아닌 학과 학생들은 대학교에서 수학의 필요성에 대하여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본교에서는 1학년 때 필수과목으로 미분적분학 과목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대학에서까지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어린 시절 수학을 처음 접할 때 수학을 배우는 이유 중 하나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을 10년 이상 배운 현재 대학생들은 사고력과 창의력이 늘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아주 먼 옛날 수학을 모르던 시기에도 사냥과 채집을 통해서 수학을 의지
꽉 차면 언젠가는 속 터집니다.
마약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유명 연예인이 마약을 했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사람들이 놀라는 방점은 이제 ‘마약을 했다는 것’에 찍히지 않는다.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약이 주는 충격에는 무뎌졌다는 얘기다.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숏폼 컨텐츠를 넘기다 ‘코카인 댄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음악에 맞춰 ‘코카인’이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코카인 댄스 특유의 몸짓에 ‘코카인보다 더 중독적이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마약’이라는 말이 들어간 워딩도 흔히 쓰인다. 마약김밥, 마약옥수수, 마약떡볶이는 학교
뼈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뼈를 통해 뼈 주인의 나이부터 생활 환경까지 추측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아동의 뼈는 성인보다 많다. 태어날 때 약 270여 개인 뼈는 나이가 들고 자라남에 따라 206개로 줄어든다. 물렁한 뼈가 달라붙어 단단해지는 과정은 인간의 성장을 대변한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암매장 추정지의 시굴 조사에서 유해가 발견됐다. 아이의 뼈였다.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운영된 선감학원은 부랑아 수용을 목표로 한 기관이었다. 국가 체면 손상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전국
이번 호의 시각면을 끝으로 나의 마지막 지면 기사가 끝이 났다. 이번 시각면은 뉴미디어부로 입사한 나에게 가장 긴 지면 기사였다. 시각면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주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카메라 한 대, 노트북, 녹음용 핸드폰, 그리고 작은 메모지를 들고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집 옆 가게의 사장님, 매일 환승하던 지하철 역사 속 공방의 작가님, 성대신문의 이름을 빌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해보지 못했을 귀한 경험이었다. 인
이제는 진짜 쉬어야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끊임없이 내가 선택한 길을 후회하고, 의심하고, 고민하게 된다. 결국 놓아주는 것도, 여유를 가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도망치듯이, 정답을 찾아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미국에 도착한 지 어느덧 두 달 반,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던 것들에도 익숙해져 간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게 더 어색하고, 팁 계산도 어렵지 않게 해낸다. 절대 예정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않는 버스에도 익숙해져 5분씩 늦게 계산하는 것도 익숙하다. 어느 날은 캠퍼스 배수 통
지난달 30일 명륜캠퍼스에선 건학기념제, 에스카라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고있었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열린 양 캠퍼스 통합축제여서인지 아니면 볼빨간사춘기, 쌈디 등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등장한 탓인지 아무튼 명륜동 밤하늘은 몹시 번쩍였고 북악산 봉우리들도 우렁찬 함성에 들썩였다. 교수회관 한쪽에서 그 젊은 에너지를 흡수하다 더 이상 감당이 안돼 축제의 불꽃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갔다.다음날 아침 캠퍼스는 전날 밤 축제의 맹렬함을 보여 주듯 평소보다 더욱 조용하고 깨끗했다. 수선관 4층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다. 그
숙이고 걷는 사람들을 위한 별은암부 되어 나타난다.
대학의 여러 기능 중 핵심은 학생에 대한 교육이다. 교육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교육이 단순히 지식과 기술의 전달에 그치지않고 삶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게 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활동이라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여러 해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여 왔다. 여러 비교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활동을 하게 된 것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교육을 위한 경험의 장(場)으로서 대학의 변화는 분
며칠 전 열린 에스카라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다양한 국적의 성균인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에도 경영관 앞을 지나거나, 강의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여러 언어가 귀에 꽂힌다. 영어부터 중국어, 일본어, 가끔은 어느 나라의 언어인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생소한 언어도 들려온다. 올해 우리 학교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4,751명이다. 대면 수업이 늘어난 요즘, 우리 학교에 외국인 학생이 많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체감하고 있다.외국인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공수업과 교양수업 모두, 한국인 학생
지난달 30일, 인사캠 대운동장은 건학기념제 아티스트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필자 또한 그들 중 한 명으로서 끝까지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이 끝나고 썰물처럼 빠르게 공연장을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필자 또한 서둘러 출구로 나가려는데, 바닥에 떨어진 빈 물통들이 자꾸 발에 챘다. 뒤를 돌아보니 공연장 바닥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힐끗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공연장에서 나가기 바빴다. 필자 또한 바닥에 떨어진 비닐봉지와 물병들을 보고 망설였지만, 결국엔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