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이미 같은 얘기를 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지난 호와 지지난 호를 걱정스레 살펴보고, 없음에 안도할 정도로 굉장히 진부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5분만 더 자려고 하면 50분 넘게 더 잔다는 사실같이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것처럼 계속, 계속 나오는, 언제나처럼 새로운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얘기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이번 호에 같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6월 4일 수요일, 당신은 그 날 어디에서, 무엇을 하실
노란 리본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다. 4월 16일. 믿기지 않는 참사, 아직까지도 수습되지 않은 상황을 전해 들으며 온 국민이 함께 울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순 없겠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본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루머를 양산하고 분쟁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난무하는 참사에 관한 악성 댓글들을 보며 많은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갖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바탕
지난 4월 16일, 전 국민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세월호가 진도 부근 해상에서 불의의 사고로 침몰한 것이다. 침몰 당시 큰 사고가 아닌 줄 알았던 이 사건은, 점차 가려져 있던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우리나라 전체에 애도의 물결과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그에 따른 대응 과정에서 문제점들이 속속 대두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우리나라의 언론은 올바른 방향을 갖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언론은 정확한 사실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매체다.
2010년 봄, 대학가를 뒤흔든 사건이 벌어졌다.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학우가 대학 거부 선언을 하고 자발적 퇴교를 한 사건이다. 그녀는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대학에 사망진단을 내리고 그렇게 학교를 떠나갔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는 중앙대학교에 다니던 노영수 학우가 두산이라는 기업이 장악한 학교 재단이 주도한 학과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 농성을 벌이다 퇴학을 당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무엇이 평범한 대학생인 노영수를 목숨까지 내걸고 까마득한 타워크레인 위로 올라가게 만들었을까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구조작업이 잘 되길 기원하기 위해 어느 대학생 동아리에서 만든 문구이다. 직원들 안전 교육도 잘 안 돼 있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개조한 배는 결국 안타까운 사고를 발생시켰다. 배가 뒤집히자 선장은 피신했고 수많은 사람이 전복된 배 안에 갇혔다. 해경과 정부는 사건 해결에 있어 더디게 움직였다. 정말 안타까운 사고였다. 국민 모두가 기도하고 자숙했다. 도대체 이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며, 또다시 이러한 재난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이번 사건의 기저에
저번 달 군대에 간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편지를 꽤 썼었는데.’ 친구 생일 같은 날 편지지 하나 사서 간단하게라도 내용을 적은 뒤에 과자랑 같이 전해줬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붙어 있어서 편지에 쓸 말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편지는커녕 수업 시간 외에 펜을 잡아 본 일이 거의 없다. 과제를 할 때에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사람들과는 핸드폰을 통해서 연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지를 쓰던 때의 감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디지털화된
캠퍼스에 벚꽃이 만발하는 중이다. 예상일보다 훨씬 이른 개화에 우리는 대비도 못 한 채 속수무책으로 벚꽃과 마주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캠퍼스를 물들인 벚꽃 앞에서, 무심히 걷던 사람들은 우선 흠칫 놀란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슬며시 설렘 가득한 웃음을 베어 문다. 캠퍼스 안은 봄빛으로 가득 찬다. 바야흐로 진정한 봄의 시작이다.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밀며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무리 화사한 벚꽃도 피어나는 젊음에 대면 그저 배경이 된다. 그래서 벚꽃도 좋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 앞에 선 사람들의 들뜬 얼굴이 좋다. 벚꽃이
얼마 안 있어 4월 19일이다. 매년 이맘때 쯤 서울 북부지역 대학생들은 4.19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묘소까지 다녀오는, 이른바 ‘4.19 뜀박질’을 진행한다. 올해에도 역시 행사는 진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해 진행되는 행사 속에서, 그리고 ‘4.19정신을 계승하자’는 구호 속에서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과연 무얼 고민할 수 있을까. 당시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고민은 멀게만 보인다. 그렇다면 대학생으로서 당장에 할 수 있는 고민은 무엇일까. 오늘날 대학생에게 ‘4.19정신’이란 무엇일까.오늘날 대학생들은
"카톡! 카톡!"?집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아침잠에서 깨어나 휴대폰 화면을 본다. 팀플 조원들이 이번 주에 있을 프로젝트에 대해 단체 채팅방에서 한창 논의 중이다. 나도 내 의견을 몇 문장 보내 놓고는 다시 잠을 청한다.나는 카카오톡(이하 카톡)이 없으면 못 살 정도로 하루에 엄청난 양의 시간을 카톡 메시지 주고받기에 할애하고 있다. 카톡 아이디가 없으면 학교 조별 과제나 동아리 모임 등에 관한 것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니, 카톡 사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최근에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종자 전쟁’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봤다. 이는 신품종의 종자 개발 및 공급을 둘러싸고 국가나 기업 간에 정치적, 경제적 대립이 격화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여기에 호기심이 생겨 여러 글을 읽다 보니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첫째는 로열티가 일반적인 제작 기술이나 발명품뿐만 아니라 식물의 종자나 미생물에도 부과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나라의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외국 기업에 팔리거나 그들이 먼저 특허를 선점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농작물의 30%가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문화와 정서에서 힐링을 권고한다. 며칠 전 모임에서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일에 비하면 넌 새 발의 피야” 하며 점차 목소리를 높여 불행의 추억을 만담하는 자리가 됐다. 이렇게 말만 해도 힐링이라며. 대화가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갈 때에는 힐링이 아니라 킬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은 정말 힐링을 주고받은 것일까?아주 조금의 외로움과 아주 약간의 우울은 힐링의 귀한 재료로 삼을 수도 있을 법한데, 우리는 그것을 힐링을 통한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한 우리는 여전히 외롭고
작년 이맘때의 나는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동안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 있었다. 비록 2012년 2학기 종강 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다시 개강을 맞아야 했지만, 전혀 새로운 곳, 그것도 자유의 땅 미국에서의 생활이라는 설렘과 흥분으로 그 정도는 개의치 않았다.하지만 그런 기분은 얼마 가지 않았는데, 곧 과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 3일 매 수업마다 교재를 요약해서 제출해야 했던 과목도 있었고, 거의 2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에세이를 써야 했던 과목들도 있었다. 공부나 학점관리보다는 경험과 어학에 초점을 맞추
개강 후 바쁜 날을 보내다 햇볕의 따스함에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봄의 품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랑에 빠진 우리들이 있다. 나는 며칠 전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남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예쁘냐고? 내가 볼 땐 예뻐. 아이유 닮았어. 학교는 ㅇㅇ여대! 키는 165 정도 되는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훈훈하게 생긴 것 같아. 학교는.. 아! 키는 적당해. 평균이야!”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연애 얘기를 할 때엔 거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과제가 많아도, 시험이 어려워도 왠지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저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온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갑작스레 얻은 자유의 쾌감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꿈꾸던 대학생활의 모습은 민주적이고, 학구적이었다. 그러나 앞으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2주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3주 전부터 한 학기가 시작된 것 같았다. 새터를 준비하고, 새터를 가서 미친 듯이 놀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는 것을 시작해서 또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마치고...이제서야 큰 행사들이 점점 정리돼서, 신문사의 동기가 마련해 준 기회를 계기로 그간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바쁠 때마다 정신없다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요즘같이 정신없다는 표현이 적확한 적도 없었다. 여러 행사를 준비하면서 마음고생도 하고, 쓸데없는 걱정도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에 몰입한다. 그 중에는 물론 공부처럼 누가 봐도 ‘쓸데있는’ 일도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쓸데없는’ 일도 있다. 주변 친구들을 둘러봐도 다양한 ‘쓸데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어떤 가수의 무대를 질릴 정도로 보기도 하고, 자막이 올라오기를 기다려 해외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보기도 하고, 새벽에 알람 맞춰 일어나 해외에서 경기하는 축구 경기를 시청하기도 한다. 게이머가 게임하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러 다니기도 하고, 엄청난 돈을 들여 각종 페스티벌에 모두 참가하
우선 대학에 온 여러분 공부하느라 너무나 수고가 많았어. 잘했다고 궁디 팡팡 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많은 걸 인내하고 견디는 과정에서 힘들게 대학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박수 쳐주고 싶다. 그것이 부모님의 뜻이었건 우리 후배님들의 뜻이었던 간에 여러분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그것에 대해서는 우선 축하하고 싶다. 여러분은 운 좋게도 승자의 축배를 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잘 산다는 것(그러니깐 행복하게 산다는 것, 즉 인생의 만족도)은 대학 순이 아니고. 여러분의 행복은 공부를 잘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는 봄이 옴을 알리고, 올 것 같지 않던 대학생활도 드디어 시작됐다. 사실, 대학생이 되는 것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한편 이제는 나의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에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 말을 어렴풋이 느끼는 요즈음이다. 내가 선택한 학교에서 내가 선택한 강의를 듣고, 각자가 만든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각자의 일정을 짠다. 더 이상 고등학생 때처럼 주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고 옆 친구가 하던 숙제와 똑같은 숙제를 하는 일은 없다. 이전에는 선택권이 없었다면 지금은 너무 많은
작년 12월 기말고사 준비로 한창 바빴던 시기 학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러시아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하던 시절 길거리에 설치돼있던 소치 동계 올림픽 D-day 전광판을 바라보며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러시아 올림픽 때 우리나라를 위해 뭐라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는 숙식과 비행기 왕복티켓을 지원해 준다는 공고내용을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1차 서류와 면접에 합격한 후 2주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지난달 24일 소치로 출국하게 됐다.
‘시나브로’라는 순우리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고 돼있다. 개인적으로 단어가 지닌 어감 자체도 너무 좋고 의미도 마음에 들어서 실제 생활에서 자주 쓰지는 않지만 매우 좋아하는 단어다. 특히 이제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요즘 들어서는 종종 ‘시나브로’가 주는 감성에 젖어들기도 한다.대학교 입학 후 첫 강의가 있던 날, 강의실을 찾지 못해서 30분을 헤매면서도 사람들이 귀찮아 할까봐 전화조차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댔던 그 때의, 스무 살의 나는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