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도 모르던 ‘아시아성’을 예술 속으로우리가 배웠던 ‘세계미술사’를 떠올려 보자. 동양화의 육법, 인도의 굽타 양식 보단 낭만주의, 인상파, 그리고 다빈치를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우리는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미술사적 흐름이 소외된 서양미술사를 중심으로 배웠다. 서구와 아시아 문화에 상·하위 개념을 접목시키는 불균형적 시각이 강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하에서 ‘무브 온 아시아’ 프로젝트는 현대 미술이 잃어버린 ‘아시아성’을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것은 서구 문화와의 충돌도 대항도 아니다. 균형화된 바라
오늘 아침 학교로 오던 길을 생각해보자. 계단을 오르내릴 때 보이는 비상구 표시, 건널목에는 걷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파란불의 신호등, 우리 학교 경영관의 ‘금연’ 표시부터 올림픽 기호 픽토그램까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 픽토그램은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픽토그램들이 언제 처음 세상에 나타나게 된 걸까?그림에 정보를 담다 픽토그램의 시작은 오스트리아의 정치 경제학자였던 오토 노이라트와 그의 부인 마리 라이더마이스터의 아이소타이프(Isotype)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각 자료를 만들고 싶었던 노
6·25의 종군기자들, 오뚝이처럼 일어서다6월 25일 아침 국방부 장교가 방송국에 가져온 보도 자료는 너무나도 허술했다. 이에 한 기자와 방송과장은 국방부 국장을 만나 원고를 다시 작성했다. 이 원고가 바로 전쟁이 발발했음을 알리는 국내 최초의 원고였다. 이 원고를 가지고 위진록 아나운서가 최초로 전쟁의 시작을 보도한 것이다. 서울에서 남북한의 격전을 발 빠르게 전달하던 KBS 방송국은 인민군의 공세에 6월 28일 첫 피난을 시작했다. 방송국 직원들은 한강 이남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또 밀리고 밀려 대전까지. 기자들은 대전방송국의
여기, 종군기자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카파가 있다. 이전까지 보도사진은 전쟁의 애국성과 영웅성을 강조했다. 카파는 기존 보도사진에서 탈피해 ‘있는 그대로’의 전쟁 얘기를 사진으로 담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은 전쟁을 혐오하는 그를 전장의 구석구석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라는 말을 남겼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은근한 페로몬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그에 이끌려 무엇인가에 ‘한 발짝’ 더(zoom-in) 다가서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로버트
잘 먹고 잘 놀자!문화 예술계에 거센 ‘협동조합’ 바람이 수원에도 불었다. 올 4월에 설립된 이웃문화협동조합(이하 이문협)은 이웃 문화와 예술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문화 불모지’로 불리는 수원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수원 팔달구 지동에서 지역 공동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문협을 만나보자! 마음 맞는 친구들의 커뮤니티 아트, 이문협의 시작이문협은 문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 진행하던 그들만의 ‘재능나눔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 프로젝트는 벼룩시장을 운영하거나 작가들과 협업해 동네의 벽화를 그리는 등의
‘오가닉’ 하면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것은 푸른 채소, 촉촉한 갈색 흙. 그러면 오가닉에 예술이 더해진다면? 이웃문화협동조합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오가닉의 의미에 예술가들이 '공동체와 문화예술을 함께 즐기는 총천연색의 것들'을 더했다. 그래서 이문협이 재정의한 오가닉에는 예술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9월 7일 수원 화성 성곽 뒤편의 소박한 마을 행궁동. 이 마을을 축제의 현장으로 들썩이게 한 오가닉 아트 페스티벌을 찾았다. 오가닉 아트 페스티벌의 서막은 문탁네트워크 이희경 대표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주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행사 시작이 예정된 7시에 거리로 들어서자 연결돼 설치된 네 개의 소규모 무대. 순서대로 △여일밴드 △H.I. △싱어송라이터 민열과 조디 △기타리스트 정선호다. 무대를 따라 길바닥에는 행사 포스터를 이어 선처럼 쭉 붙여뒀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미리 공연 구역과 인도를 나눠 둔 것. 이전까지의 버스킹이 좁은 거리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돼 거리가 혼란스러웠던 점을 고려했다. 7시가 약간 넘자, 골무 팀장과 밴드 H.I.의 리더를 맡고 있는 우리 학교 김준섭(연기예술10) 학우가 “행사의 주최자인 골무
거리로 몰렸고, 소리가 커졌다작년까지만 해도 홍대 거리에서의 버스킹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공연을 보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고, 주변 상인들도 자연스러운 ‘홍대 문화’로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던 중 오디션 붐과 함께 불어온 ‘버스킹 열풍’을 타고 뮤지션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졌으니 긍정적 측면도 분명 있다.하지만 문제는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버스킹을 할 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쏟아져 나오며 거리는 급격히 혼란스러워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부 버스커들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그리고 ‘수운교!’ 이름부터 생소한 수운교를 체험해 보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청사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금병산 자락으로 이동하자 수운교입구가 나타났다. 수운교는 화합이다물 수, 구름 운. 수운교는 천도교를 창시한 최제우의 별호인 ‘수운’에서 비롯됐다. 수운교 본부에는 불상을 모시는 법회당과 도교의 하늘님을 모시는 도솔천이라는 성전이 모두 자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수운교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선) 3교의 화합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수운교에서 신도 교육을 담당하는 오
고즈넉한 산사에서 새벽예불에 참가하는 천주교 신자의 모습. 민족종교 수운교의 바라춤을 추는 원불교 신자. 상상이 가는가? 올 여름, 각 종단에서 모인 신자들이 서로의 종교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색다른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로, 사람들은 다양한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적 가치관이 상충할 때 갈등이 발생하고 이러한 갈등은 국민 화합을 저해시킨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웃종교화합’의 가치며, 이를 도모하기 위해 ‘이웃종교화합주간’이 시작됐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사무총장 변진흥·이하 KCRP)
아름다운 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2년 4월 설립된 프리포트는 △네팔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한국 출신 문화예술가 11명이 결성한 문화예술단체인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AMC Factory)가 운영하는 이주민문화예술센터다. 평소 프리포트에서는 주변 문화 및 예술 단체들의 공간 대관과 아시안 티 판매, 전통 수공예 제품 판매가 이뤄지지만 아직 재정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며 후원회원은 공간 이용료 인하 등 혜택을 받는다.자신을 ‘문문’이라고 밝힌 프리포트 상근 근무자는 이주민과 선주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마붑 알 엄은 99년에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는 공장에서 일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주민 문화를 위한 단체와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 전문가이기도 하다. 전공했던 회계학도 그만두고 한국에 귀화할 만큼 그 일이 좋다고 한다. ‘한국 사회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당
탁 트인 풍경이 아름다운 한적한 충청도 시골. 체험학교는 멀리 대천해수욕장이 보이는 한가로운 전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서각진흥협회장 정지완 서각가는 이곳에서 개인 작업장 겸 서각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서각을 배우고 싶다면 5명 단위로 팀을 구성해 정 서각가에게 연락을 취하고 방문하면 된다. 작업장 내부의 넓은 작업대와 갖가지 공구, 정지완 서각가의
서각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돌 등에 새기는 것이다. 중국의 갑골문 등 고대인의 유물에서도 그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 공예품부터 비천당 현판, 그리고 광개토대왕릉비까지 모두 서각 공예 작품이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목판 인쇄본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서각이 시작된 시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측된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에서 열린 '주디스 버틀러의 연합의 정치학으로 이해하는 젠더'전은 여성주의 목소리를 다뤘다. 전시는 곽은숙, 홍현숙, 원 세 미디어 아트 작가가 영상으로 담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전시를 보기에 앞서 주디스 버틀러에 대해 알아보자. 주디스 버틀러는 1990년대 처음으로 ‘퀴어 담론’을 제시한 미국의 페미
대안 문화, 언제부터 시작됐나대안(代案): 어떤 안을 대신하는 안.우리나라에 ‘대안’이라는 단어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대안 문화는 △대안 교육 △대안 미디어 △대안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리 잡았다. 대안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하는
자립음악생산조합, 그 시작을 알리다2009년 12월 24일 홍대 앞 동교동 삼거리. 칼국수집 ‘두리반’이 강제철거 될 위기에 처했다. 가게 주인이 이에 맞서 시작한 철거반대농성에 몇몇 뮤지션들이 뜻을 같이하면서 두리반에서는 토요일마다 ‘토요자립음악회’라는 공연이 기획됐다. 철거반대농성이 계속 이어지던 2010년 5
예술인은 정말 베짱이인가? ‘예술가들은 배고프다’는 말은 이제 너무나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명제다. 하지만 왜 예술가들은 배고파야 하는가. 민정연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의하면 이것은 예술활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예술이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고귀한 일’ 혹은 &ls
지난 1일, 온라인 음악 감상 서비스가 정액제에서 ‘종량제’로 일제히 전환됐다. 음악이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음악계 내외부에서 협력한 결과였다. ‘쓰레기도 종량제다.’ 음악가들이 정액 스트리밍 서비스에 반대하며 들고 나온 구호다. 음악가들은 왜 자신의 창작물이 쓰레기보다도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조
음악 저작권에 관한 논의는 ‘음원 종량제 시행’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도 다른 논의와 대안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화제로 떠오른 것 중 하나는 음악 저작권신탁단체 복수화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음악 저작권 신탁 독점 방지를 위해 신탁단체 신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음악 저작권에 관련한 부분을 담당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