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주소지를 이전하는 것만으로 이 큰돈을 준다니? 이 수상쩍은 제안은 인터넷을 떠도는 불법 사이트 광고 문구 같은 게 아니다. 특별한 것도 없었던 2021년, 필자가 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매일같이 들여다봤던 포항시의 공문이다.지난 2일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개강을 선언함에 따라 거리에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 다들 어디에 그리 꼭꼭 숨어 있었는지 신기할 만큼이나 많은 학생이 학교를 오간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새내기부터 다시 돌아온 학교가 낯선 복학생까지, 도시는 새 학기를 맞이해 분주하다.
연말이라는 설렘이 가득했던 지난해 말, 나는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연극 를 감상했다. 연극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원로배우 이순재 씨가 고전 명작인 를 연출했다는 소식에 예매해 두었던 것이다. 연극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소유진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는 것이었다. 소유진 배우가 중년 여성 아르까지나를 능청스러우면서도 깊이 있게 연기하자 모든 관객의 이목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뿜어낸 에너지가 극장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소유진 배우가 연기한 아르까지나 역할의 영향으로 ‘
우리는 모두 빛을 내는 존재입니다.
자수할 것이 있다. 그것에게 애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의 움직임을 내 손으로 멈추게 한 적이 있다. 살아있는 것을 기계처럼 대했다. 나는 기사를 죽인 적이 있다.기사는 살아있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생각의 움직임, 취재의 움직임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숨을 쉬게 된다. 부끄럽게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 게으름이라는 오만한 핑계에 애써 지기를 자처하며 숨을 멎게 했다. 기계처럼 기사를 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처음 신문사에 들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는 말은 단지 비유뿐인 말이 아니다. 백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보면 자연 머리가 하얀색으로 가득해진다. 허공을 채워야 할 것 같은 압박 속에서는 아주 작은 생각 하나도 써 내리기 어렵다. 무언가를 써야 하는 모두가 겪는 일이고, 특히나 이 글을 읽고 있을 성균관대 학우들을 포함해 모든 학생들이 흔히 겪을 일이다. 나 역시 백지 위에서 차마 헤매지도 못하고 가만히 멍만 때리는 일이 잦다. 특히나 입시를 막 끝낸 신입생 때가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쓰기를 아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신입생 시절
요즘 무척이나 똑똑한 AI가 등장해 세간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다.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인 챗지피티(ChatGPT)가 그것이다. 챗지피티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사용자에게 받은 입력을 기반으로 텍스트를 생성한다. 즉 사용자의 질문에 대해 사람과 같은 응답을 생성하도록 도와주는 대화형 인공지능이다. 단순히 정보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시나 에세이 그리고 그동안 프로그램 개발자가 했던 코딩까지도 해 준다.이런 챗지피티의 등장은 우리에게 인공지능 발전의 경이로움과 지식 획득의 편리성을 선사해 주는 반면, 부정적 측면
스물셋이 되기까지 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자주 익숙한 길을 택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 선택에 충분히 만족한다며 합리화하고 안주하는 데에 도가 튼 지 오래였다. 스위스로 교환학생을 가야겠다는 결심은 처음으로 다른 길로 발을 돌린 거였다. 지금이 아니면 못 가는 이 길을 포기하면 두고두고 뒤돌아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방향을 튼 것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따랐다. 비자 심사부터 기숙사 계약까지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출
성균관대학교는 2016년부터 신입생 대상으로 코딩 교육을 교양필수로 운영하고 있다. 그 이후 2021년부터 ‘AI 기초와 활용’, 2022년 ‘데이터 분석 기초’ 과목까지 교양필수로 추가되며 코딩 교육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강의 평가에서 학생들의 의견 중 ‘문과인데 왜 코딩을 배우라 하느냐!’ 심지어는 ‘과목을 폐지하라!’ 라는 평가의 글을 남긴다. 물론 수업 중 과목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또한 코딩 교육에서 프로그래밍 기술이 아닌 문제해결을 이해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나, 학생들 전부가 동의해주지는 않은 것 같다.요즘 Cha
‘하루에 이렇게 많은 결정을 내려도 되나?’ 성대신문 부편집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드는 생각이다. 발간과 행정, 학교 측과의 조율, 기자 복지... 조직의 다방면이 데스크의 한순간의 결정에 좌우된다. 나는 성대신문에서 단지 ‘선행(先行)’했기 때문에 책임자가 되었다. 4·5학기 이상 성대신문에 몸담은 기자가 편집장, 부편집장, 차장을 비롯한 데스크가 되어 1~3학기에 해당하는 기자들을 이끄는 시스템이다.우리 학교, 문화, 사회, 학술 속 이야기를 가져와 지면과 뉴미디어 컨텐츠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큰 가치를 지니나 또 얼
가족은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은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족으로 정의한다. 대부분 사람이 떠올리는 가족의 양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혼인, 혈연, 혹은 입양으로 이뤄진 형태이자,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숙명적 관계. 그게 흔히들 말하는 가족이다.하지만 생각해보자. 연인 혹은 혈육이 아닌 누군가와 인생을 같이하며 돌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떠올려보자. 평생을 함께 자란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는지. 혹은 주위를 둘러 물어보자. 함께할 수 없는 사이와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고통받은 적은 없
가던 방향이 편하다고 밀기만 하면 되겠나요.익숙함에서 잠시 벗어나, ‘당기세요.’
처음 학술부에 들어왔을 때는 내가 학술부 기자로서 어떤 소식을 기사로 전해야 하는지 몰랐다. 첫 방중 회의 때 ‘학술부스럽지 않은 기사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던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처음 썼던 문건에서 소재를 바꾸고, 첫 학술부 기사로 게임 물리엔진의 원리를 다뤘다. 물리엔진이 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다루며 ‘이게 학술부 기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준정기자 생활을 보내면서는 보고서와 학술부 기사가 무엇이 달라야 할지 생각했다. 두 개 다 원리를 설명하지만 기사는 더 쉽게 원리를 전달한다는 것이 다른 점일까? 기사만이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