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청년들의 힘찬 발걸음. 효덱스입니다!”대학생 연합 효 문화 동아리인 효덱스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2012년 어느 날이었다. 서강대 학생이던 임철웅 씨가 교양수업시간에 ‘작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기’라는 주제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2년 새 어엿한 동아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효덱스는 ‘효’와 유명 배달 업체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합성어다. 효덱스는 2013년부터 2년 연속 Univ Expo(대학생활 박람회) 우수 동아리, 신한은행 S20 우수동아리 수상 등 활동성과를 인정받았다. 꾸준히
성대신문은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저 정말 효도하고 싶어효(孝)’ 이벤트를 진행해 사연을 모집했다. 이는 성균인의 효 인식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다. 많은 사연 중에서 기자단의 마음을 촉촉이 적신 이야기가 있었다. 선정된 변준한(글리 13) 학우는 10만 원 상당의 외식상품권을 받았다. 과연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이벤트에 지원하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며칠 전, 오랜만에 원주에 있는 집에 내려갔는데 부모님과 싸우게 됐어요. 부모님은 부모님이 원하시는 아들의 모습이 있고 저는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
지난달 2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임학선 댄스 위’의 창작 무용 가 펼쳐졌다. 무용수들이 몸짓으로 새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표현할 때, 그들의 뒤에서는 이에 맞는 영상이 상영되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은 6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무용계의 중견, 우리 학교 무용학과 임학선 교수다. 무용만을 바라본 50년올해는 임학선 교수가 무용을 시작한 지 50주년 되는 해다. 50년을 한결같이 무용만 봐온 그녀지만, 무용을 하겠다고 큰 결심을 안고 시작했던 것
김두환(약 56) 동문이 며칠 전 소록도를 여행하며 쓴 시라며 내민 시의 한 연이다. 내년이면 팔순을 맞는 김 동문의 얼굴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일주일 중 하루도 빠짐없이 사무실로 나와 시에 대해 생각한다는 그는 영락없는 글쟁이였다.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도 김 동문은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사라져 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고유어들을 캐내 새 옷을 입혀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하는 ‘순우리말 시인
치지직... 치지직... 정규 편성시간임에도 정파가 됐나. 이윽고 검게 바뀐 화면에 음악이 흐르며 짤막한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 화면이 멈추면서 나오는 자막을 모두 이어도 몇 문장 되지 않는다.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프로그램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강렬하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만나봤을 ‘지식채널e’. 지난달 29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교양 프로그램을 선보인 김진혁 PD를 만나 지식의 통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어떻게 PD를 꿈꾸게 됐나.중학교 때 방송반 친구
그의 펜은 느리다. 서두르라며 재촉하는 컴퓨터 커서 역시 그에게 조급함을 갖게 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데 온 힘을 다할 뿐이다. 오롯이 체험하고 느끼며 이 세상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히 받아 적어온 그의 이름은 안수찬,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전도사다. 노동 OTL, 영구 빈곤 보고서…언론에 관심 있다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음직 한 그는 쉽게 허비되지 않고 길고 긴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기사를 추구해왔다. 기자로서의 치열한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낸다 말하는 안수찬 기자를 만나 그의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8월 초, 5명의 기자는 한강 난지캠핑장으로 떠났다. 캠핑이 처음인 우리의 목표는 저렴한 캠핑.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들이기에 저렴하면서도 알차게 즐길 수 있는 캠핑을 준비했다. 지난달 12일부터 1박2일간 초보들이 떠난 좌충우돌 캠핑체험기를 소개한다.AM 10:00 혜화역에서 대장정의 서막을 알리다텐트를 짊어지고 가방에 짐을 가득 담아 혜화역에 모였다. 냄비부터 시작해 △모기향 △보드게임 △버물리 등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획에 없던 물건들도 잔뜩 가져왔다. 들뜬 기분으로 지
캠핑전문가 김준성이 추천하는 캠핑장서울 근처 - 한강공원이나 휴양림서울 근처 캠핑장으로 유명한 △난지 △노을 △중량 캠핑장 대부분 예약이 힘들다. 최근 1박을 하지 않고도 캠핑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무박 캠핑과 자전거캠핑이 대세다. 한강공원이나 휴양림에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전국 - 가평 어비계곡, 여주 팜스퀘어, 팔봉산 유원지, 홍천 수 캠핑장시설이 깨끗하고 화장실이 쾌적해 초보캠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즐겁고 안전한 캠핑을 위해 학우들의 캠핑에 관한 궁금증을 안고, 캠핑전문가 김준성을 만나봤다.가을 캠핑할 때 팁이
특별한 유럽여행을 꿈꾸던 5명의 남자는 ‘테마 캠핑’을 떠올렸다. △담소 △설렘 △음미 △패기의 앞 글자를 따 ‘텐트 속 음담패설’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모든 게 서툴렀던 그들은 유럽 캠핑 여행에 앞서 기본적인 공부와 함께 국내에서 캠핑 경험을 쌓았다. 마침내 ‘텐트 속 젊은이(Germany)’라는 테마로 독일 캠핑을 떠났던 그들은, 그로부터 1년 뒤 ‘캠핑으로 대학 문화를 바꾸겠다’며 캠핑 동아리를 만들었다. 대학가 유일의 캠핑 동아리, 스누 텐트(SNU TENT)의 시작이었다. 스누 텐트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텐트 속 음담패설’
300만 명. 통계청이 올해 예측한 우리나라 캠핑 인구수다. 산이나 들, 바닷가 등에서 텐트를 치고 하는 야외 활동을 뜻하는 캠핑은 인기 있는 레저문화로 꾸준히 지목되고 있다.이러한 캠핑의 인기는 일차적으로 여가 시간의 증가에 기인한다. 2012년 초?중?고등학교에 주5일 수업제가 시행되며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아지자 캠핑은 여가 활용방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캠핑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 역시 사람들이 캠핑에 흥미를 갖게 했다. 실제로 ‘1박2일’이나 ‘아빠 어디가’ 방영 이후 특정 회차의 촬영 장소나 소품 등에 대한
캠핑이 대세다. SNS에 올라온 캠핑 사진에 ‘좋아요’는 눌렀지만, 막상 떠나려니 경비부터 장소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 왜 이리 많은지…짐을 한가득 챙겨 모험을 떠나야 할 것만 같아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캠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각종 방송에서 도심형 캠핑이 소개되고, 캠핑 컨셉 가게들과 글램핑이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캠핑은 점점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은 여유로운 9월,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에 훌쩍 캠핑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캠핑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제 페이스대로만 열심히 운동했어요.” 2013년, 프로야구팀 SK 와이번스에서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이적해 당당히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찬 모창민(스포츠 04) 동문. 아기공룡의 비상을 이끄는 그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만났다. 대학리그 간판타자, 프로 무대의 높은 벽에 부딪히다 지난 2004년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후 신인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한 모 동문은 우리 학교 스포츠과학과에 진학했다. “성대는 일찍 결정해 놓았어요. 이연수 감독님이 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이었거든요.” 지금도 우리 학교 야구부를 이끌고 있는 이연수 감독의
예술가들이 서바이벌 형식으로 경쟁을 펼치는 TV 프로그램인 . 내로라하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예술계의 ‘사이코패스’라 불리며 심사위원의 혀를 내두르게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신제현(미술 02)동문이다. 평소에는 침착하고 얌전하지만 작업을 시작하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그는, 대학 시절 ‘작업 오타쿠’라 불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사회 모순을 조명하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한 그는 2002년 우리 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학교 커리큘럼이 좋아 사진, 영상, 비디오 아트 등 다양
최근 오랫동안 성대신문의 배포대가 비어있어 슬퍼하는 독자들을 위해 본지에서는 16일부터 20일까지 깜짝 이벤트를 진행했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빈 배포대를 채워준 독자 6명을 선정했다.[학생회관 3층]"성대 신문은 내게 롤리타의 마성이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도 내 몸은 자동적으로 배포대에 이번 주 신문이 있는지 확인하고, 한 부를 집어 주머니에 넣는다. 배포대가 비어있으면,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성대신문, 내 대학생활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대학생활의 영혼이여. 벌써 창간된지 60주년이나 되었군요. 앞으로도
성대신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기자의 꿈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학내 사안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고 따뜻한 글을 쓰기 위해 등. 이처럼 성대신문에 들어오게 된 사연은 모두 다르다. 창간 60주년을 맞아, 성대신문에서 꿨던 기자의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 어엿한 언론인이 된 선배들을 만나보려 한다. 동아일보 윤완준 기자와 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이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현장 이야기와 기자가 말하는 기자의 삶을 들어봤다.동아일보 윤완준(독문 95) 기자 인터뷰“진실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기사
성대신문에는 총 5개의 부서가 있다. 어느 부서의 높고 낮음 없이 △문화부 △보도부 △사진부 △사회부 △학술부는 모두 힘을 합쳐 성대신문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부서마다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어 각자가 그리는 이상적 모습이, 겪고 있는 고충이 모두 다르다. 평소엔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속내를 한 번 들여다보자.보도부,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금요일 밤, 보도부 기자들은 막차시간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매주 월요일 오후 6시, 양 캠 중앙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도부 기자들의 한 주는 시작된다. 처음
학술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초창기, 그리고 뜨거웠던 학생 운동의 시기 등 총 50여 년의 세월을 거친 성대신문은 어느덧 200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종전과 다르게 다양한 매체가 생겨나며 그만큼 종이 신문의 입지도 좁아졌고, 대학생들은 예전만큼 학교 신문을 찾아보지 않는다. 멀어진 관심 속에서 성대신문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며 노력하고 있다. 베를리너 판으로의 전환, 그리고 증면2000년대 중후반 성대신문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판형의 변화와 증면이다. 성대신문은 2011년 제1512호를 기해 대판에
흔히들 1994년부터 2003년은 학생 운동이 저물어 가는 시기로 여기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당시는 학생운동을 하는 세력과 소위 ‘비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분리되는 시점이었다. 80년대 학번의 경우 대학생이 학생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면, 90년대는 IMF 등 국가적인 상황이 겹치며 각자의 현실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그런 와중에 “아직 사회 정의가 더 필요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학생들과, 개인적인 생활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대신문도 바로 그 중심에 있었다.90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자보가 붙었다 떼이길 반복했던 어수선한 80년대 중반. 학원자율화 국면과 함께 민주화와 학생 운동을 향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내에서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사회 현실에 고뇌하는 교수들의 고민이 가득했다. 살아난 목소리, 꿈틀거리는 펜 끝성대신문 역시 대학 사회를 가득 채운 민주화의 물결과 사회 변혁에 관련된 사안을 주로 다뤘다. 김규성(유학 88) 동인은 “그간 신문에 실릴 수 없었던 담론을 논하는 것에 대해 학교 측에서도 포용하는 개방적인 분위기였어. 노동자의 권익이나
이 시기 성대신문은 평온했던 초창기와 달리 중후반에 들어서며 학내외 사건들로 인해 큰 변화를 맞이한다.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성대신문은 학술적 측면이 강한 신문이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성대신문도 그 움직임에 발맞춰 변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의 뜨거운 외침을 담아내며 성대신문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학내 소식과 학술적 측면이 강했던 초창기이 시기의 성대신문은 총 2백 58호가 발행됐다. 1976년에는 제700호를 기점으로 기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