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갈 때마다 주변을 눈으로 보기보다 사진 프레임 안에 담아서 봤다. 관광지를 갔다 하면 체감상 열 걸음에 한 번씩 사진을 찍었다. 내 눈에는 이 산이 그 산 같고, 이 나무가 저 나무 같은데 매번 풍경이 달라질 때마다 사진을 찍어야 했다.그런 아버지가 속으로는 답답했다. 어쭙잖게 풍경을 찍어내는 카메라보다 내 눈이 더 정확한데 굳이 사진을 찍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반발심과 오기로 어릴 적의 나는, 사진 명소에서도 가만히 눈으로만 구경하고 서 있었다
작년 1학기 수습기자였던 나는 직전 학기에 신문사 임기를 마친 친구와 학보사 기자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친구에게 수습기자 트레이닝에서 경험한 기사 작성 과정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친구에게 토로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야, 네가 글을 과제처럼 써서 그렇게 느끼는 거 아냐?”라고 일갈했다. 그 당시에는 그 친구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어느 정도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됐다.내 전공 학과인 사회학과에서는 주로 폭넓은 주제에 대한 보고서가 과제로 주어진다.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48.56%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7.83%의 득표율을 획득했다.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두 유력 후보의 경쟁이 치열했으며, 그 결과로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0.73%포인트, 득표수로는 약 24만 표 차로 마무리 되었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는 중에도 유권자의 투표율은 77.1%로 매우 높았다. 모두가 5년마다 오는 소중한 기회에 자신의 의사를 투표로 표현하려는 열기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대선이었다. 이번 대선 결과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랗다 못해 눈부신 하늘.누워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온몸에 평화가 스며든다.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받던 러시아가 야욕의 발톱을 드러냈다. 전 세계의 눈과 귀가 한 곳으로 집중됐고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지난달 24일,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한 것이다. 군사시설만 공격하겠다던 푸틴의 공언과는 달리 러시아군은 민간인 주거지역까지 포격을 가했다. 학교, 심지어 병원까지 무차별 폭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침공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2000여 명에 이른다. 진공폭탄과 나비지뢰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평안했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사랑, 겪어보지 않은 것들에 관한 애정. 그런 삶과 사랑의 원천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지닌 예술을 보면서 나는 그런 질문을 했다. 이야기 속의 모든 것들이 현실도 사실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예를 들면 나는 무진이 그립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으며 눅진한 안개가 서린 그곳을, 윤희중이 걸었던 길을, 고향을 맞이하며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받아들
다리 없는 새. 이 새가 살면서 딱 한 번 땅에 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이 새가 죽을 때다. 아마 왕가위 감독의 을 본 사람이라면 한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장국영. 을 관통하는 주제는 결핍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 결핍이 있다. 또 그 결핍을 과시로 채운다. 주인공 아비는 엄마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의 결핍을 여자로 채우고, 아비의 엄마는 아들의 무관심이라는 결핍을 남자로 채운다. 루루는 외로움을 아비에 대한 집착으로 채운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SNS의 등장으로 과시
오지 말라고 오지 말라고아무리 외쳐봐도 언제나 다시 돌아오는 그대여….
주어진 지면을 채우는 건 정해진 시간 동안 연설하는 것과 같다. 대중이 나의 목소리를 읽느냐 듣느냐,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신문사에서의 생활은 실수하더라도 실언할 수는 없는 작은 지면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이었다.어쩌면 내 손에 들린 게 카메라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신문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곤 하는 사진을 찍는 게 내 일이었다. 성대신문 수습기자로 시작해 사진부 준정기자를 지나 뉴미디어부 정기자가 되기까지 펜을 드는 시간보단 뷰파인더에 세상을 담는 날이
저는 경상북도 월성군의 희망촌이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났습니다. 마을 이름이 예쁘기는 하지만 아마 그 이름은 희망이 너무 절실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마을은 온통 산비탈이어서 논은 많지 않았고 밭들도 좁았습니다. 집마다 축산을 하고, 산에 뽕나무를 심어서 누에를 키우는 마을이었습니다. 연말이면 인근 도시의 높으신 분들이 구호물품을 가지고와 사진을 찍고 가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의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사투리 때문에 종종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시골 출신임이 불편하기도 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방학이면
안녕, 널 긴 시간 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오랜만이네. 그래서 더 새롭고 신기하면서 설레기도 한가 봐.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 날을 떠올리면 괜스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 새로운 경험을 하면 긴장도 되고 두근거리기도 하는데, 사실 그때의 난 두근거림보단 긴장감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 선배, 그리고 동기들을 만나는 것, 내가 해야 할 일과 그를 위한 연습, 모든 게 다 새로웠으니까. 그런데 미소를 띠고 내게 다가오는 널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이 되더라. 물론 첫 만남이어서 어색하긴 했지만
취향과 방식이 달라도부딪혀 살아가는 것.
취재 후기를 작성하기 위해 수습일기를 다시 열어봤다. 내 수습일기는 이미 준정기자분들의 수습일기들에 밀려 저 아래에 있었다. 신문사에서 제대로 활동한 기간은 한 학기밖에 되지 않지만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다. 몇 년 전에 써놓고 까먹은 일기를 구경하듯 나의 거창했던 포부를 읽어내려갔다. 내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 그것을 나의 이름를 쌓아가는 첫 단계로 생각하고 내 이름에 실례가 되지 않도록, 내 이름에 걸맞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이 적혀있었다.성대신문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총 16개의 기사가 나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그것은 언제인가?예상컨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진짜로 소중한 추억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혹은 이런 오글거리는 도입부는 뭐냐며 진저리를 떨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벌써 이 페이지를 나가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적자니 다소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소리사랑에 대한 글을 쓰며, “반짝이는 순간”이라는 말을 뺄 수는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 바로 소리사랑과 함께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눈부신
나는 실패가 두렵다. 막상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아직까지 상처로 남을 만큼의 실패 경험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렵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혼자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문득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실패는 내가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도전적인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얻었을 때도 항상 그 속에서 의미부여를 했다. 내가 실패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의 싯다르타는
2018년 12월 10일, 2인 1조 근무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어두운 발전소에서 24살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10일, 법원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던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사망사고에 대한 첫 판단을 내놨다.1심 법원은 원청의 전 사장이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원·하청 관계자들에게는 유죄가 인정됐으나 이 역시 모두 집행유예에 그쳤다. 고인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주장하던 그들 가운데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
참으로 오랜만에 올려다 본 하늘은 온전한 하늘이 아니었다. 나뭇가지들이 애끓는 마음으로 서로 닿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서로 맞닿으려는 그들의 마음이 나에게도 똑바로 부딪혀왔다.우리의 마음도 저들처럼 서로와 접선하고자 하는가. 닿고자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보다 먼저 올해 우리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을 환영합니다! 여느 대학과 달리 2월 말에 개학을 하여, 다들 선잠에서 깬 듯 약간 힘들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영국 속담처럼, 우리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입학식도 제대로 못하는 요즘 같은 시절에 도대체 무슨 기회?” 이런 반문을 하는 이도 있을 법합니다. 실제로 학생들과의 “안녕?”이란 인사가 이토록 절실한 때가 없었고, “잘 지내느냐?”는 물음조차 가끔 공허하게 여겨집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본인이나 가족의 건강이 걱정
“국어국문학과면 글 잘 쓰겠네?”학과 소개를 하고 나면 꼭 듣는 한 마디였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항상 있었지만, 많이 써본 적도, 원하는 만큼 잘 써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두려움이기도 했다.그래서인지, 나에게 글은 항상 ‘언젠가는 차근차근 풀어나가야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기자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여러 경험 끝에 직업으로는 나와 맡지 않겠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보사라는 곳에 들어오게 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글을 구성해내는 기사의 매력을 느껴서였다.기사
성대신문 일러스트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보사 활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친구의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기자 지원까지 하는 선택은 정말이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곧 4학년을 바라보는 입장으로서 3학기를 무조건 채워야 하는 단체에 지원한 것은 휴학을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면접 때문에 떨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합격 후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글기사는 안 쓴다고 해서 지원했지만, 스스로 뉴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즐거울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원래 sbs나 kbs 등에서 따로 독립 채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