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코딱지를 파는 제 모습이지요’맞다. 웅크리고 있는 한 사람의 손은 코를 향해 있다. 하지만 검정과 흰색의 뚜렷한 대비, 그리고 불안한 듯 거친 붓질에 아무렇게나 흩뿌린 검정 물감. 누가 봐도 우울한 심상을 드러냈고, 작가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말은 그림을 그릴 당시에 ‘얼마나 슬펐는지’였다. 그런데 작품을 하나하나 들추며 설명해 주는 그의 입에선 ‘소년 김동기’의 유치해서 순수한 추억이 쏟아져나왔다. 그림엔 백합을 사랑했던 소년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백합 알뿌리가 심어져 있는 흙바닥에 바짝 기대 무언가를
내 고장 경기도 의정부에서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가 파한 뒤 날씨 좋은 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갈라치면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의정부 시내를 친구들과 꼭 한 번 들르곤 했다. 시내는 물론 서울보다야 덜하지만 어린 나에겐 우리 집이 있는 금오동처럼 주거지가 밀집한 의정부 다른 동네보다 볼 것도 많고 놀 곳도 많은, 별천지같은 곳이었다. 팬시점이나 옷집을 찾아다니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거리를 배회하다보면 시내와 얽혀있는 재래시장 길을 거쳐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잘 정비되지 않은 바닥에 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