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는 당연했던 사람 사이의 교류를 많이 지웠습니다. 다같이 동방에서 공부하다 공부하기 싫다며 조잘대던 순간 같은 것들이요. ‘만나지 못함’은 일상뿐만 아니라 봉사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봉사에서 ‘사람과 사람의 시너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우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소미 내에서도 ‘타인을 돕는 보람돼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라서’ 등 각자 봉사하는 동기가 다르니까요. 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배우고 싶어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봉사에서 ‘사
처음 투고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떤 내용으로 쓸지 고민하기에 앞서 내가 글을 써도 되는가에 대한 우려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를 사학과 학생회장이라고 소개할 때면 아직까지 귀가 빨개질 정도로 그 직함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2019년 3월, 새내기들이 천천히 학교에 적응할 무렵 제72대 사학과 학생회 사(史)필귀정이 출범했습니다. 사필귀정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이름과 함께 나오면서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크고 작은 기복이 존재했던 사학과이기에 이 학생회 이름이 자칫 오해를 살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모든 것은
며칠 전 기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성대방송국 국장님…” 으로 시작한 말은 오는 금요일까지 원고를 보내주실 수 있냐는 문의 요청이었다. 겁이 났다. 남이 작성해준 방송 멘트는 분석해서 잘 전달할 수 있었지만 내가 무언갈 먼저 창작해내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사실, 이 글도 몇 번을 썼다 고치길 반복했다. 어떤 얘기를 담아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은 이에 이르게 됐다.정식으로 인사를 드린다. 평소완 다르게 드리는 게 옳을 것이다.“성대신문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색다르게 글로 인사드리는
3월이 되면서 학교에는 한 학번이 더 늘어났다. 그들을 보면서 치열한 대학입시를 뚫고 아름다운 대학의 캠퍼스를 누리는 설레는 마음이 되살아나는 시기다. 군대에서 수능을 준비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성한 나에게는 그 설렘이 크게 느껴졌다.많은 대학생들은 대학에서의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작게는 학점을 잘 받아 장학금을 받아보자 같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크게는 유럽여행이나 세계일주 등이 꼽힐 것이다. 내가 대학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외국인과의 교류였다. 세계는 넓고 사람은 많다는
4.19혁명 당시, 그리고 5.18 민주 항쟁 때,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며 폭압적인 정권에 희생된 민주화 열사들. 모두 우리가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우리에게 열사라는 말은 무척이나 낯설고 무겁다. 아마도 1991년의 평범했던 성균관대 학생들에게도 열사라는 말은 무척이나 무거웠을 텐데 그 무거운 말을 나의 동기, 나의 선배, 나의 후배에게 불러야만 했던 우리의 선배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순식간에 열사가 되어버린 프랑스어문학과 김귀정 선배는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 속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4월 11일 금요일 자연과학캠퍼스 학생회관 1층에 위치한 소강당에서 18주기 황혜인 열사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했기에 여기저기 홍보를 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같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황혜인 열사에 대해, 추모 문화제에 대해 이야기 해봤다. 여기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5년이나 학교를 다닌 고학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이었다.황혜인 열사는 95년에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로 입학한 우리의 선배님이다. 입학한 다음 해인 96년에는 동아리 연합회 선전국장을
봄기운이 울렁이며 여름 같은 날씨를 연상시켰던 4월 2일 수요일 12시 생공대 학우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달라며 한자리에 모였다. 80명도 채우지 못하고 안타깝다는 말로 결말이 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1시 반부터 시작된 학생총회는 12시에 내가 도착했을 때쯤 이미 100명을 넘어섰고 12시 40분 무렵 121명을 기적적으로 채움으로써 학생총회가 시작됐다.학생총회의 가장 주된 안건은 생공대 등록금 인하다. 등록금 산정기준도 제대로 설정하지 않고 생공대 학생들을 이과대 학생과 차별하며 더 높은 등록금을 받다가
“나는 전태일이다”. 혹시 학우분들께서는 셔틀버스 종착역 농구 코트 쪽에 걸린 거대한 현수막을 보셨거나, 자보에 적힌 “나는 전태일이다”라는 문구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이는 이번에 중앙동아리 노동문제연구회 주최로 열게 된 제11회 전태일 열사 추모제의 제목입니다. 그런데, 전태일 열사의 추모제 제목인데 굳이 “나는 전태일이다” 이라는 말이 들어가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태일 열사가 온몸에 불을 붙이고 돌아가신 1970년 11월 13일. 열사의 몸은 타들어 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마저도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
어제 2주간의 심산맏형배 축구대회가 끝나고,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내가 선수로 운동장을 뛰었던 것도 아닌데 허전함이 밀려왔다. 대회를 마친 소감보다는 나는 지금까지 부끄러워서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대회기간 동안 고생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올해 맏형배는 평년보다 이주정도 늦게 시작해 정말 추운 날씨에 맏형배를 진행하게 됐다. 매일 아침 6시, 7시에 운동장에 나와 본부석을 준비하고, 운동장에 라인을 긋고, 비가 온 날에는 삽으로 물을 퍼내고, 4강전이 있던 날엔 강추위에 운동장에 얼음이 얼어 아침부터 손이 터
최근 어느 아이돌 가수의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문득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민주화’란 어떤 의미인지 돌이켜보게 됩니다.'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처럼, 87년의 그날은 우리 사회의 방향이 민주주의로 선회한 날은 될 수 있을지언정 민주주의가 완성된 날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사캠과 자과캠의 화합을 도모하는 인자전이었던 만큼 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몇 자 적어본다.이번 축제는 법학과 소속 학우로서 지난 몇 년간 참여했던 그 어떤 축제보다도 학우들의 참여도가 높았던 만남의 장이었다. 다만 축제의 메인행사 중 하나였던 인자전의 운영방식에는 문제가 있었다. 지난해 자과캠에서 열렸던 제1회 인자전에서는 주
하나. 노동자가 숨 쉬는 세상.화단이 설치됐다. 4년 전 쌍용자동차에서 2646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 된 후 4년 간 24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죽었다. 중구청은 분향소가 미관을 해치고 시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며 그 자리에 화단을 설치했다. 24명의 죽음이 철거됐고 쌍용차 정리해고의 진실이 흙 속에 파묻혔다. '국정조사'를 실시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