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담아내길 좋아한다.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 내 감정이나 말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 한다.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말을 다듬어 하나의 장에 꾹꾹 눌러 신중히 표현할 수 있는 글이 좋다.너저분히 나열되어 있는 많은 생각들을 다듬다 보면, 나조차도 다 알기 어려운 나를 살피게 된다.그래서 자주 짧게, 때로는 길게, 대개 적당히 글을 쓰며 나를 담아낸다.좋아하는 글과 사람이 모인 성대신문의 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그리고 이곳에 지원할 당시에 가장 큰 기대를 품고 있던 나의 부서, 뉴미디어 부원으로서의 삶
수습기자 때 웹기사를 발간 하기 직전, 글을 그렇게 많이 고쳐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 싶다.내 주변에는 글을 한 큐에 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끼리는 '작두를 탄다'고 표현한다. 나도 사전적 의미를 몰라서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단다.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황홀경에 빠져서 일을 할 때 생각보다 더 힘이 나고, 에너지가 솟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는 상태.길게 표현할 필요도 없다. 두 글자로 몰입이다. 대체로 몰입은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작두를 타서 쓰는 글은 종종 놀랍도록 매끄럽고 유려하다. 그러나 기사는 에세이도, 비평도,
처음 신문사에 들어와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그건 내 자부심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메리트라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펐다. 누군가 칭찬받을 때, 나에게는 날카로운 피드백이 쏟아지니, 어쩌면 내가 여기서 제일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참 자신감이 떨어져 있을 때, 도망치고 싶어졌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보다 뛰어난 사람들한테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그 마음 내려놓고 보면 이제 넌 그렇게 배우
2학년 1학기가 시작된 나에게 성대신문의 입사는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쏜살같이 흘려보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헤맸고 나에게 중요한 결정들을 회피하고 있었다. 자신이 정한 목표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다른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자리에 멍하니 멈춰 서있는 듯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수습 일기를 쓰기 위해 성대신문의 수습기자 지원서 파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그동안 왜 다른 활동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변명하는 듯한 지원서의 내용에
잘 써야지 다짐하고 쓰는 글은 항상 불편하고 부자연스럽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수습일기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이는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닫는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도 부족하다. 초등학생 때 토론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이후로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전개하는 일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학보사에서 일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사실 학보사에 입사하는 것은 내 대
내 메모장에는 몇 번이고 쓰다듬은 문장들이 있다. 그것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집의 한 구절도 있고, 무언가를 보며 느낀 감정을 직접 담아낸 문장도 있다. 이걸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글이 매우 불친절하고 유려하지 않다는 것을 알 거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는 여태 이러한 글을 써왔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문장들을 뱉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성대신문사에 그저 글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입사했다는 거다.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대범한 도전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누구에게나 그렇듯 도전은 두렵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는 도전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한 번도 내 의지로 다른 동아리나 학생단체를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나 과외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성대신문은 숨어있던 내 도전정신을 이끌어주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려 영상 제작 및 기사를 작성하는 매 순간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새로 접하는 일이 많았기에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고, 엄청난 업무량에 퇴근 시간을 넘길 때면 괜한 도전을 했나
지난 3월 성대신문에 속하게 됐고 지금은 8월이다. 성대신문에 지원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작년 2학기에 이전에 퇴임한 성대신문 선배로부터 성대신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때부터 여기에 들어오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성대신문에서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체계가 잡힌 단체라는 점도 한몫했다. 성대신문 기자가 되려면 먼저 지원서를 제출하고 논술과 면접을 봐야 한다. 3월 면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부적절한 말을 많이 했다. 언론 쪽으로 진로를 정했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고,
지금 당장 할 것은 많은데 하고 싶은 건 없었던 잉여롭던 2학년 말미. 다만 조금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겸한, 절대적인 자유를 느끼던 나에게 새로운 자극제는 성대신문 지원이었다. 너무나 자유분방했기에 단지 ‘지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대학생 2학년이라면 해야할 소명은 다 한 것과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나에게 성대신문 지원은 뭐라도 했다는 말도 안되는 안도감을 줬다. 덜컥 신문사에 합격하고 약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수습트레이닝을 받았다. 사실 별 생
올해의 목표를 정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올 A+받기’, ‘책 100권 읽기’ 같은 허황된 것이었는데, 대부분 이루지 못했다. 이뤄지긴커녕, 벚꽃이 피기도 전에 벌써 구석에 처박힌 다이어리를 펼쳐보고는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있었지’ 하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고 내년을 기약했다. 매년 이러다 보니, ‘올해의 목표’를 정하고 까먹어버리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쁜 습관을 그만두기로 했다.대신 ‘꼭 올해까지만 할 수 있는 것’의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내 생각은 아니고, 인스타그램 어디선가 본 거
의식하는 글쓰기는 참 두렵다. 늘 하는 생각이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도 날카로운 눈 아래 문장들은 더없이 너절해진다. 내 얄팍한 생각을 담아내야 할 때면 마음은 더 졸아든다.단연 글쓰기만이 아니다. 보통 자기반성적인 글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시점에서 써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모자람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두렵다.부끄러움을 없애는 방법은 제법 간단하다. 피하면 된다. 왜, 삼십육계 줄행랑 – 도망치는 게 상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비상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나는 내가 강해지는 줄 알았다.사실 정말로 강한 사람은 자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후회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진정한 나를 알아간다. 2022년 9월 나는 또 한 번 후회하기 위해 성대신문에 지원했다. 전역을 하고 이전의 패기가 사라진 내 모습을 보며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자신감은 떨어져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 국어 하나는 잘할 수 있었기에 국문과에 진학했고, 국어강사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가질 내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후회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나 이전에도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할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시간이 흐르면 하나라도 느는 것이 배움이고 경험이라, 그저 흘러가게 두는 것만으로도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세상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할 줄도 균형을 잡을 줄도 아는 그런 어른, 제법 현명하게 제 삶을 꾸려나가는 법을 아는 그런 어른 말이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날수록 모르는 것이 더 커지는 느낌이 든다.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몰랐는지 새롭게 깨닫는다. 어차피 공부란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라지만, 배우고 익힐수록 ‘드디어 알겠는
제일 좋아하는 것은 칭찬이요, 극도로 피하는 것은 비판이라. 혹자는 비난과 비판을 구분하라 말하지만, 그런거 모르겠고 그 둘을 싸잡아 싫어한다. 그런 내가 성대 신문에 들어왔다. 처음 문건과 초고를 체커에게 넘기고 우수수 달린 수정 요청 메모들을 보고 괜히 우울했다. ‘그렇게 별로인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메모들을 모두 반영하면 글이 더 매끄러워졌다. 누군가 좋은 글이란, 아무 문장이나 하나를 삭제하면 나머지 문장 전체가 우수수 쏟아진다고 말했었다. 이는 모든 문장이 필수적이며, 앞 뒤 문장이 서로를 야무지게
글 쓰는 과제를 마주할 때면, 항상 남모르게 미소 짓곤 했다. 적당한 참고 자료를 뒤적거리며 정리하고, 내 생각을 담아 글을 마무리하는 일은 계속해오던 일이라 그런지 실패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글 쓰는 데 성공과 실패가 어디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지금까지 써온 글이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일한 기준만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가?’ 따라서 글 속의 참고 자료도, 글의 배치도 내 생각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게 써왔다. 내 글을 읽을 사람은 선생님 아니면 교수님으로 정
삶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은 인연이다. 나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 인연은 우연을 가장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와 성대신문, 성대신문의 모든 기자님들이 인연이였나보다.2022년 겨울, 멀게만 느껴졌던 서울에 올라왔다. 많은 게 낯설고 모든 게 신기했다. 대학교라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공간에서 성균관대학교 학생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처음이여서 많은 부분들이 어려웠지만 모두 다 그렇듯이 나도 대학교에 점차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업도 듣고, 기숙사에도 살아보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다
저는 감성적인 글보다 분석적인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성대신문 면접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감성적인 글보다 분석적인 글을 더 잘 쓴다고 생각했기에 기사를 쓰는 것도 비교적 수월할 줄 알았다. 이런 생각에 갇혀 서점에 가도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감성 에세이’는 나와 결이 맞지 않으리라 여기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나의 오만이었다. 내 오만은 편자주의 존재로 깨졌다. 편자주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어 나 홀로 편자주 없는 수습 기사를 작성했으며, 기획회의에 낼 문건도 편자주가 없는 상태로 제출했다. 불현 듯 편
수습일기를 써야 하니까 다른 분들 것들을 좀 읽어봤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다 있어서 할 말이 없어졌다... 아마 고등학생 때의 나에게 이런 글을 쓰라고 하면 하고 싶은 말로 한 페이지는 금방 썼겠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은 평소에도 별생각이 없는 것 같다. 좌우명을 ‘기대하지 않기’라고 정해서 재원이가 웃었지만, 이 말은 어떤 상황에도 쓸 수 있어서 좋다. 안 좋은 결과가 있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나를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에도 신문사에 들어와 배울 것이라 예상했던 것들보다는 그 외
다른 친구들이 쓰는 블로그나 간단한 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왜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좋으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이 쓴 글들을 읽으면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 우리는 평소에 많은 대화를 하지만 거기서 드러나지 않는 각자의 생각들이 직접 쓴 글에는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렇기에 나는 글의 힘을 실감한다. 그리고 신문과 기사, 기자의 펜 끝에 매달린 의미들을 생각한다. 나아가 글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를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뷰파인더 속에 담긴 시선에도 나
언론인이 되고싶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나의 언론인이라는 꿈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다. 멀리서 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가까이 다가서 잡으려 하면 어느새 저 멀리서 반짝반짝 흩날리고 있다.성대신문은 나의 깃털이 멀리 도망갈 것을 알면서도 지원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언론인이 너무 되고 싶어서, 날 깃털로 인도할 나의 바람이 되어주길 바랐다. 생각보다 치열한 경쟁률에 기대를 놓고 있었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동경해왔던 단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성대신문의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