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면서 중독예방과 연구에 대한 대학가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을지대에서는 중독문제에 관심이 많은 교수들이 힘을 모아 국내 유일의 중독재활복지학과를 만들었다. 2004년도에 학과 개설승인을 받아 2007년 제1기를 배출한 을지대 사회복지학과는 2008년 중독재활복지학과로 개명됐다. 중독재활복지학과 최삼욱 교수는 “사회에 수많은 중독문제가 있는데 국가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며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지원하고, 실무자를 양성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학과를 특화한 이유를 설명했다.중독재활복지학과
6·25의 종군기자들, 오뚝이처럼 일어서다6월 25일 아침 국방부 장교가 방송국에 가져온 보도 자료는 너무나도 허술했다. 이에 한 기자와 방송과장은 국방부 국장을 만나 원고를 다시 작성했다. 이 원고가 바로 전쟁이 발발했음을 알리는 국내 최초의 원고였다. 이 원고를 가지고 위진록 아나운서가 최초로 전쟁의 시작을 보도한 것이다. 서울에서 남북한의 격전을 발 빠르게 전달하던 KBS 방송국은 인민군의 공세에 6월 28일 첫 피난을 시작했다. 방송국 직원들은 한강 이남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또 밀리고 밀려 대전까지. 기자들은 대전방송국의
예술을 접하기 위해서 그동안 우리는 전시장을 찾아 가야만 했다. 그 공간까지 들어가야 비로소 예술은 우리를 만나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예술과 만나려 전시장을 찾아가기만 할 텐가? “관객이 찾아가서 보는 예술은 공간에 갇힌 예술이에요.” 손한샘 작가는 예술이 사람들의 공간으로 찾아가길 원했다.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삶에서 가출한 예술을 사람들 품으로 돌려보내는 ‘예술장돌뱅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예술장돌뱅이라는 이름은 과거 우리네 옛 장터를 누비며 물건을 팔던 ‘장돌뱅이’에서 따왔다. 다만 과거의 장돌뱅이와 다른 것이 있다
‘오가닉’ 하면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것은 푸른 채소, 촉촉한 갈색 흙. 그러면 오가닉에 예술이 더해진다면? 이웃문화협동조합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오가닉의 의미에 예술가들이 '공동체와 문화예술을 함께 즐기는 총천연색의 것들'을 더했다. 그래서 이문협이 재정의한 오가닉에는 예술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9월 7일 수원 화성 성곽 뒤편의 소박한 마을 행궁동. 이 마을을 축제의 현장으로 들썩이게 한 오가닉 아트 페스티벌을 찾았다. 오가닉 아트 페스티벌의 서막은 문탁네트워크 이희경 대표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주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이번 본지 관상특집에서는 관상에 대한 학우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온라인 64명, 오프라인 63명으로 총 127명의 학우가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 결과에 대해서는 부산가톨릭대의 최필진 교수에게 자문했다. 그녀는 관상 전문 포털 ‘페이스인포’의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최 교수는 50년간 관상을 연구한 아버지 구봉 최형규 선생의 대를 이어 관상학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립하고자 활동하고 있다. 관상을 본 적이 없어요설문조사에 응한 127명의 학우 중 단 13.4%인 17명의 학우만이 관상을 본 적이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그리고 ‘수운교!’ 이름부터 생소한 수운교를 체험해 보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청사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금병산 자락으로 이동하자 수운교입구가 나타났다. 수운교는 화합이다물 수, 구름 운. 수운교는 천도교를 창시한 최제우의 별호인 ‘수운’에서 비롯됐다. 수운교 본부에는 불상을 모시는 법회당과 도교의 하늘님을 모시는 도솔천이라는 성전이 모두 자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수운교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선) 3교의 화합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수운교에서 신도 교육을 담당하는 오
어렸을 때, 막연히 ‘기자’라는 직업은 멋있어보였다.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사건의 진실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많은 장래희망들과 함께 박봉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는 사실이 ‘기자’를 내 마음에서 배제시켰다.고등학교 때 어느 과에 가고 싶으냐는 물음에 ‘아무 과나 상관없어요.’ 라고 말한 것도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회계사’라는 직업엔 과가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대학 1학년이 되어 예상치 못한 사건을 여러 번 겪으며, 또 생각할 시간이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