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에 걸친 축제가 막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올해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교정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양 캠퍼스에서 각기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학우가 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행사에 뛰어들었다. 곳곳에서 녹색 옷이나 소품으로 무장한 이들을 찾는 일 역시 어렵지 않았다. 지난 6일, 입하(立夏)와 함께 초여름의 시작을 알렸던 녹음은 우리 학교의 색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개강 후 다소간의 시간이 지나 한결 한적해졌던 캠퍼스에도 다시금 활기가 맴돌았으며, 공연을 보거나 부스에 참여하기 위한 긴 줄에도 학우들은 서로 장난치고 웃으며
지난달 25일, 작은 돼지 한 마리가 화두에 올랐다.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 이슬람사원 건축을 둘러싸고 지속되던 갈등 탓이다. 이슬람사원의 건립을 막고자 하는 의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의 교리가 이용된 것이다.이 충격적인 모습은 단지 이번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2021년 2월에 공사 중지 행정명령이 내려진 이후, 대구에 위치한 이슬람사원 건축 부지는 줄곧 법적 공방의 무대였다. 이슬람사원을 건립하고자 하는 신자들과 이를 막고자 하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지난해 9월에 이르러 공사를 막지 말라는 대법원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또래 친구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단연 ‘개그콘서트’였다. 일요일 저녁이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개그콘서트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고 싶으면 반드시 시청해야 하는 필수 프로그램이었다. 한 주라도 건너뛰는 때에는 월요일 아침에 쏟아지는 친구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그 시기를 거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음이 곧 문화라는 걸 이해할 터다. 이야기를 나눌 소재, 공감대의 형성, 파생되는 요소들에 대한 향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타이밍에 웃음을
더 좋은 글감이 있을 듯해 종일 뉴스를 뒤적였다. 한 학기에 8개의 신문을 펴낸다는 건 필자에게 허락된 지면의 기회도 8번뿐이라는 의미다. 편집장직을 맡으며 필자는 감사하게도 8번이나 글문을 열 수 있게 됐다. 문장 하나하나가 치열하게 쓰여야 하는 지면 위에 개인의 의견을 담는 일은 과분하면서도 애틋하다. 그렇기에 주어지는 기회마다 단 한 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됐든 지금 하려는 말보다 나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더 심각하고, 보다 시의성 있고, 훨씬 중요한 말이다. 이 글을 펴내고 싶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누군가 답한다. “아니오.” 부정의 대답 앞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의문을 표하면 가지각색의 이유가 쏟아진다. 시끄러워서. 철이 없어서. 말을 안 들어서. 공감하는 사람이 반, 그리고 어떤 답을 내놓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반이다.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처럼 아이를 사랑하거나 미워한다.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들조차 저보다 어린 아이를 싫어하고, 어른들은 더 쉽게 이들을 미워한다. 모르는 아이에게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간절한 외침은 이제 구닥다리 광고가 된 모양이다.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아이를 하나의 기호로 여
단지 주소지를 이전하는 것만으로 이 큰돈을 준다니? 이 수상쩍은 제안은 인터넷을 떠도는 불법 사이트 광고 문구 같은 게 아니다. 특별한 것도 없었던 2021년, 필자가 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매일같이 들여다봤던 포항시의 공문이다.지난 2일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개강을 선언함에 따라 거리에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 다들 어디에 그리 꼭꼭 숨어 있었는지 신기할 만큼이나 많은 학생이 학교를 오간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새내기부터 다시 돌아온 학교가 낯선 복학생까지, 도시는 새 학기를 맞이해 분주하다.
가족은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은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족으로 정의한다. 대부분 사람이 떠올리는 가족의 양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혼인, 혈연, 혹은 입양으로 이뤄진 형태이자,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숙명적 관계. 그게 흔히들 말하는 가족이다.하지만 생각해보자. 연인 혹은 혈육이 아닌 누군가와 인생을 같이하며 돌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떠올려보자. 평생을 함께 자란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는지. 혹은 주위를 둘러 물어보자. 함께할 수 없는 사이와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고통받은 적은 없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지면을 빌려 인사드립니다. 캠퍼스를 색깔로 물들였던 단풍잎도 어느새 발치에 쌓여가는 때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학교의 논술 고사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슬슬 기말고사 기간에 돌입하는 학우들을 보고 있자면 온 학교가 올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성대신문도 이번 지면을 마지막으로 올해 발간을 마칩니다. 한 학기에 8번, 올해 동안 총 16번의 신문을 발간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학교와 사회를 담기에는 적은 발간 횟수일지 몰라도, 그만큼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기사로 지면을 채우기 위해 기자
애도는 종용당하는 순간부터 그 의미를 잃는다.지난달 29일,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을 찾은 사람들 중 157명이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늦은 밤 SNS에서 접한 동영상과 뉴스는 믿기 힘들었다. 5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고, 많은 문화예술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잠시 8년 전을 돌아본다. 세월호 사고는 2014년, 필자가 열네 살 때 발생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나에게도 믿기 힘들고 어려울 정도로 슬픈 일이었다. 좋아하던 가수의 앨범 발매가 줄줄이 연기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친구들은 사고가 일어난 것보다는 기
지난 15일, 샌드위치의 소스를 만들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뒤 보고 후 신고가 이뤄지기까지는 10분이 걸렸다. 야간조 동료들은 배합기에서 소스를 퍼내고 피해자를 직접 수습해야 했다. 주간조 동료들은 몇 시간 뒤 흰 천으로 덮어둔 사고 현장 옆에서 일을 해야 했다. 피해자의 빈소에는 그가 근무하던 회사의 봉지빵 두 박스가 답례품이랍시고 덩그러니 놓였다.회사가 직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느 곳에서도 사람에 대한 존
마약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유명 연예인이 마약을 했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사람들이 놀라는 방점은 이제 ‘마약을 했다는 것’에 찍히지 않는다.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약이 주는 충격에는 무뎌졌다는 얘기다.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숏폼 컨텐츠를 넘기다 ‘코카인 댄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음악에 맞춰 ‘코카인’이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코카인 댄스 특유의 몸짓에 ‘코카인보다 더 중독적이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마약’이라는 말이 들어간 워딩도 흔히 쓰인다. 마약김밥, 마약옥수수, 마약떡볶이는 학교
며칠 전 열린 에스카라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다양한 국적의 성균인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에도 경영관 앞을 지나거나, 강의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여러 언어가 귀에 꽂힌다. 영어부터 중국어, 일본어, 가끔은 어느 나라의 언어인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생소한 언어도 들려온다. 올해 우리 학교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4,751명이다. 대면 수업이 늘어난 요즘, 우리 학교에 외국인 학생이 많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체감하고 있다.외국인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공수업과 교양수업 모두, 한국인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