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학보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질문에 한 독자로서 나는 학보만이 보일 수 있는 고유한 정체성이라 답하겠다. 기사의 완성도는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그것은 우선 독자가 기사를 읽기 시작한 이후의 이야기다. 기성 언론이 비추지 않는 곳을 향하는 시선, 투박할지라도 화두에 대한 ‘성대신문다운’ 통찰을 담으려는 시도는 곧 독자가 ‘굳이’ 성대신문을 펼칠 이유가 된다. 그런 면에서 보도면이 보이는 시선은 날카롭다. 보도 1면의 기사는 소재가 인상적이다. 소재가 신문을 찾아온 경우가 아닌, 기자가 소재를 찾아 나선 경우로 보인다. 앞
필자가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는 다양한 경험과 건강 발달 간 상호 관련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련성을 연구할 때 많이 사용되는 이론이 생애 과정 이론 (Lifecourse perspective)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언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전 생애에 걸쳐 발달의 터닝포인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동기와 청소년기 문제 아동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후 성공했다는 사례를, 매체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경험
곧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다가온다. 국회의사당을 지나던 나는 문득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는 선거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졌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나부터 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우리 모두의 작은 관심으로 첫 단추를 채워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스코틀랜드는 인구 약 550만 명의 작은 국가이다. 영국 본섬의 일원이지만, 아무래도 그 섬의 중심은 잉글랜드인 탓에 우리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는 유럽 지성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은 다양한 지적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유럽 계몽주의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이는 수도 에든버러가 “북구의 아테네”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가졌던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은 “세상 그 어느 곳도 에든버러와 경쟁할 수 없다. 잉글랜드와 미국의 대학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던가. 첫 기사로 ‘정부의 노동개혁’을 소재로 한 사회부 기획기사를 발간했다. 고백하건대, 세상을 바꾸겠다는 고귀한 사명으로 쓴 기사는 아니었다. 기성언론도 아닌 어느 대학의 언론사에 갓 입사한 신입 기자가 명쾌하게 다루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였으며, 원고지 20매 분량 남짓의 기사로 세상을 바꿀 리도 만무했다. 첫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기계적으로 썼던 것은 아니지만 글자 하나하나마다 진심을 담았냐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긍정할 수 없다.해당 기사의 마지막 문단은 아직도 선명히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연애를 꿈꾼다.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취향과 관심사가 같아 언제나 대화가 즐거운 사람.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많은 연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싸우고, 고통받는다. 그럴 바에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인공 지능과 사귄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2014년 개봉한 SF 로맨스 영화 는 이 발칙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잔잔하게 풀어낸다.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서비스 회사의 직원이다. 그는 하루 종일 남들을 위해 아름답고 따스한 말을 써 내려가지
바쁘게 달려온 당신, 잠시 멈춰 쉬다 가세요.
글쓰기란 자해다.이 한 문장을 쓰고 한 시간째 의자에 앉아 있다. 엄청난 취재후기를 쓰고 싶어 예쁘고 멋진 단어들을 찾다 내 머릿속에 문득 든 생각이다.다소 이상주의자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내가 신문사에 입사한 것도, 끙끙 앓으며 기사를 쓰는 것도, 늦은 시간까지 회의하는 것도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다. 시인 안도현이 삶을 타인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 했던 것처럼 사랑을 위해서 때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깎고
최근 독서붐이 일어나며 책을 읽고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문학은 멀리 떨어져 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칸에 가보면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단연 경제와 관련된 것들. 아무래도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인문학의 한 분야를 전공하길 바라는 입장에서 요즘 서점은 너무 차갑다. 쓸데없고 어려워. 언제부턴가 생겨버린 선입견에 사람들은 이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간을 갖고 천천히 살펴본다면 인문학은 결코 쓸데없지 않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일상적이다. 친
‘지정학적 SF’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는 어떤 작품이 있는지 수시로 찾아보고 있다. ‘아프리카 합중국 United States of Africa’라는 가상 개념도 이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됐다. 54개국으로 분할된 아프리카를 연방 국가로 통일하자는 아이디어인데, 1924년에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의 시 에서 처음 주창됐다. 는 이렇게 끝나는 시다. 만세, 아프리카 자유 합중국! / 용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 대학교를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이것은 익명 편지라서 이름도, 학년도, 소속도 밝힐 수가 없네요. 하지만 전 이예나 씨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이 편지를 다 읽고 나시면 제가 누군지 아실 것 같네요. 익명 편지를 쓰고자 하는 다른 아무개 학생이라면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를 다섯 번 정도 고민하다가 결국 다섯 장을 썼겠지만 전 바로 예나 씨가 떠올랐고, 그냥 쓰게 되었습니다. 예나 씨는 처음 봤을 때부터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알아갈수록 더 재미있는 구석이 많았습니다. 제멋대로 굴면서 배려심
1932년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한 순간은 물리학 발견 중 세상을 바꾼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강한 방사선을 노출시켜 베타 입자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중성 입자를 발견하였다. 이 발견은 원자핵 구조에 대한 이해를 혁신적으로 바꿔 놓았으며, 원자로와 핵무기 개발, 핵에너지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성자는 원자핵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견은 우리가 원자핵과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키게 되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 DNA의 구조를 결정하고 발표
의대 입학정원 증원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지난달 6일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의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한 달 동안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의료계는 이미 이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하는 중이다. 우리 학교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도 전학년 동맹휴학 성명서를 발표했다.동시에 지난달 20일, 서울시 소재 종합사립대학인 A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의 폐지를 추진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A대학이 2025학년도부터 두 학과에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공개해 해당 학과의 재학생과 교수들로
당신은 당신의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죽어가는 당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맨정신으로 눈과 혀를 뽑아 신에게 바칠 수 있는가? 질문에 답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꺼이 희생하겠노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개념들은 희미해진다. 사람들은 이것이 가족애의 힘이라고들 한다.2019년 출시된 공포 게임 에서는 80년대 대만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명 극작가인 두펑위, 가수이자 여배우인 궁리팡, 아역 스타를 꿈꾸는 어린 딸 두메이신까지. 이들
자를 땐 아파도 더 튼튼해질 거예요.
취재의 사전적 정의는 기사에 필요한 재료를 얻는 일이다. 나는 그 방법으로 인터넷 검색과 독서, 인터뷰를 이용했다. 기억과 감정이 남은 인터뷰이들이 많다. 먼저 재난관리 기사를 준비할 때 첫 인터뷰이셨던 호남대 문현철 교수님께 내 인터뷰 태도가 서툴렀던 점이 죄송하다. 첫 대면 인터뷰이셨던 정해선 안산 온마음센터장님께서 핸드폰을 안 가져간 나를 지하철역까지 차로 태워주셔서 감사했다. 군 사법체제 기사를 쓸 때, 법무법인 백상 강석민 변호사님께서 바쁘신 일정 중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는 2시간을 내게 주셨다.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는 시
누군가 말도 없이 탕수육 위에 소스를 붓는다면, 아마 난리가 나지 않을까? 중국집에서 밥 한 끼를 먹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보다도 중요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대화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 다름을 배우고, 이야기하는 한 동아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성균관대 토론동아리 SKFC다.학기 중 매주 수요일, SKFC는 경제, 정치, 법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한다. 민감한 주제도, 생소한 주제도, 복
학생들과 유교철학을 주제로 수업에서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학생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고민할 때마다 나는 유교철학을 공부해 온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이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보곤 한다. 실용적 적용력이 떨어진다고들 생각하는 인문학에서도 철학, 게다가 철학 안에서도 마이너리티라고 여겨지곤 하는 유교철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사회문제를 마주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사유 방식과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만의 특이함이 내가 공부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모르는 노래를 듣는다. 정신을 차려보면 시간이 많이 늦었고 집까진 너무 멀다. 모든 게 내일이면 전부 데포르메될 것을 안다. 어설픈 윤곽만 “여기에 외로움이 있었다” 하고 남겠다.그러나 무언가 심하게 불타고 나면 항상 자국이 생기고, 그걸 지우기는 지독하게 어렵다.이것은 끔찍할 만큼이나 지독한 외로움이다.
내가 유학생으로서 1999년 처음 도착한 베를린에서 서울은 보이지 않았다.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서울을 들어본 사람들은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길에서 누군가 다가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물어보는 경우는 있었지만, 한국인인지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독일에 유학 온 어떤 한국인 학생이 박사논문 주제를 결정할 때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학생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와 관련된 논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외국인이 그렇게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는 것을 보고 지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