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처음 떠올렸던 때에도, 수상 소식을 알게 된 지금에도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다행이었습니다. ‘좋은 시란 뭘까…?’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시 쓰는 일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했죠. 문학이나 창작을 전공으로 배우지 않다 보니, 시를 쓰는 마음 한편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늘 간절했습니다. 이 시를 썼을 무렵에는 친구들과 창작 모임을 만들어 매주 작업물을 공유했습니다. 그때마다 한 주치의 ‘시 써도 좋아!’ 마음을 획득했죠. ᅠ지금은 잠시 휴학하고 혜화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언젠가 사진관을 정리한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23학번 인문과학계열 20살 김혁진입니다. 우선 최우수상이라는 큰 상을 주신 성대신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물아이’는 저에게 소중한 작품입니다.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 제 세상을 담아낸 첫 작품이 많은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삶에 활력이 다시금 불었습니다. 또한 평소 부모님과의 사이가 가까워 표현 가능했던 ‘감정 묘사’와 의도치 않았던 ‘남매 설정’ 등 ‘동물아이’에는 제 삶이 많이 녹아있어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성대한 상도 받게 해줬으니 더 소중해질 것 같
여성이지만 ‘여성’이 아닌 나를 해명하는 일에 집중합니다.이따금 망설였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별것 없는 글일 뿐인데, 비워 둔 문장 틈새에서 혹 미약하고 부족한 사유가 들키지는 않을까 여전히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변명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니 덧붙입니다. 앞으로 더 깊이 공부하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크게 변화할 테니 부디 너른 양해 부탁드린다고요.어리고 우스운 고백이지만, 여자와 나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일은, 어쩌면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인 것 같습니다. 저를 설명하려면 우선 제가 어떤 여자인지부터 정의해야
“마음에 털끝만한 의심도 없다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리라.”한 절의 스님이 어린아이에게 물에 젖어 거꾸로 엎어 놓은 옹기를 바로 놓으라고 한 다음 날, 그릇들은 모두 겉과 속이 뒤바뀐 채 뒤집혀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뒤집힐 리 없던 그릇의 겉과 속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아이의 털끝만한 의심도 없던 ‘순수함’이 가진 힘 덕분이었다는 이야기의 결말은 처음으로 이야기를 접했던 중학교 국어 수업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때 글 속의 아이 소운처럼 열렬한 순수함으로 가득 찬 하
언어화하지 못하는 마음들을 쌓아둔다. 세상의 문법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 하면 안 되는 일을 마주할 때가 특히 그렇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병적으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이번 여름 자연과학캠퍼스를 가득 채운 나무들이 내뿜는 초록을 보고 ‘능금’을 썼다. 싱그러움에 매료되어 내 전부를 걸고 싶었다. 이 병적인 끄적임에 이름이 붙어 과분한 상을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하고 싶지 않을 때 시를 쓴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글쎄, 들키고 싶지는 않은데 누군가는 꼭 알아줬으면 하는 묘한 바람을 담아 모호한 글을 썼던
단편 는 마감을 두고 ‘완성한’ 저의 첫 번째 소설입니다. 또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첫 번째 글이기도 합니다. 소설 작법에 문외한이라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습작에 가까운 어설픈 글로 수상을 하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구성도, 밀도도, 두루 설익은 날 것의 글을 인내심 있게 읽어주시고 평가를 해주셨다니 송구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읽는 사람은 죽기 전에 천 번을 산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쓰면서도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합니다. 이번 글은 스스로 만들었지만 낯선 또 하나의 삶을 살아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이란 언제나 쓰나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들이닥칩니다. 애써 못 본 체하고 있던 저 먼 해원으로부터 까닭 없이 밀려 들어옵니다. 나를 덮치는 파도의 유속과 수온, 그리고 파고는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기에 오롯이 자신의 소유입니다. 어찌할 도리 없이 잠겨버린 나를 앓는 시간. 그 시간이 흘러 고요해진 물결이 다시금 바다로 빠져나갈 때, 이 썰물을 우리는 망각이라 부릅니다. 그럼에도 기어코 지면에 괴여있는 물웅덩이는 기억입니다. 오직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웅덩이의 깊이는 그로 하여금 하염없는 높이
올레 사거리 앞에서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문득 택시가 내 앞을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간 적이 있다. '하마터면 치일 뻔했다.' 작년 겨울 한동안 나는 지하철 타는 것을 힘들어했다.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의 내부가 가끔 큰 덩어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덩어리의 속을 파악하려 하면 그림자가 불쑥 나를 옥죄어 오고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슬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슬퍼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시기의 나를 위해 써야만 했던 글을 썼다. 베를린의 카페에서 마감일이 다가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설산의 장경
올해의 끝을 기다리며 지난봄 해월과 걷던 서촌을 떠올립니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내게, 지금은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가고 싶은 길 위에 서 있다고. 그게 네게는 글인 것 같다는 말. 빈 화면을 마주하고 자기 의심이 피어오를 때면 해월이 건네준 따뜻함을 꺼내 매만지곤 합니다. 뜻밖의 연락을 받고 여러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다정에 기대어 쓰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기도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제 목소리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열어 주신 유희경 선생님, 언제나 응원
과분한 결과를 안게 되었다. 동시에 무거운 책무가 주어진 듯하다.소설을 잘 모른다. 시도 잘 모른다. 그래서 문학을 주제로 누군가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고, 죄송스럽다.다만 그저 창작을 좋아한다. 오직 나의 의지대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을 좋아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통제할 수 없는 그것이 나를 이끌게 되는 아이러니를 즐긴다.종일 글만을 고민하고 쓰던 때가 떠오르기도, 동시에 글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던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그럼에도 문학의 중요성을 환기해 준 사람들이 늘 있어 주어 감사하다.떠오르는 사람들.우리 가족 네 명
김혜순은 시를 쓸 때 자신은 기독교도도 아닌 불교도도 아닌 시교도라고 말한다. 모든 정체성이 벗어던진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에 낯선 나라의 독자들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시를 읽을 때 모든 경계를 넘어 김혜순 시인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영어도, 중국어도, 한국어도 아닌 그 어떤 명명할 수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변방에 있는 여자들끼리 만나 함께 웃고 춤을 추고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속에서 뛰어다니는 꿈을 꿨다. 일어나 보니 시를 읽은 것이다. 제 글에 코멘트를 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김혜순의 놀이에 대해 썼던 글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요즘, 문학만큼은 인간이 아닌 AI가 감히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작품으로써 뱉는,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며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에 나온 주인공 ‘해수’의 대사이기도 하죠.그렇기에 저는 문학을 사랑합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저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오는 말들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만나 느끼는 완전하지 않은 감정들과, 저마다의 삶은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입
나의 파란 역사김하경(경영 18) 얼마 전 나는 눈앞에 버스 정류장을 입 안에 넣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아니 그보다도 그곳을 오가던 사람들의 앉은 자리들을 한 입에 삼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다 실수로 파란색 마을 버스를 같이 삼켜버렸다이것 참 잘못되었구나 싶어서 일단 잘근잘근 씹었다 푸른 단물이 나올 때까지 씹었다한때 나는 나도 모르게 바다를 삼킨 아이기를 은근히 바란 적이 있다그러나 푸른 단물이 나올 때쯤 나는 그대로 파란색 버스가 되었다이름은 5-3이었다모서리가 유달리 둥글고 몸체는 작은 그래서 종종 등원 버스로 착각되기도
능금차해원(자과계열 23) 초록아 어서 이리 와이리 와서 나를 죽여줘내 머리카락을 뜯어다 울창하고 빽빽한 뿌리를 만들어가장 우월한 유전자를 가져다 핏빛의 열매를 낳아줄래여름은 초록 너 하나의 계절 너 말고는 모두 다 질식해 죽어간다는 뜻이야 과포화 상태의 공기, 침수가 일어나는 장마에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메말라 간다는 건거대한 찜기에서 보내는 95일보드랍고 촉촉하게 익어갈 사람, 새, 고양이, 버섯, 느티나무 같은 것을 떠올렸었어96일째 되는 날에야 손끝 첫 번째 마디를 구부려 가며 기어이 감각을 되살려 내겠지만
사슴의 기분장지영(러문 18) 기도하는 두 손에아무도 모르는 이름이 담겨 있다나는 서투르고 흔들리는 숲을 사랑했다숲의 끝에 간다는 건나무의 마음으로 무릎을 드는 일 사슴들이 같은 잎을 씹을 때 입술 대신 이마가 부딪힌다 달아나기 위해 제 몸을 부서뜨리는 것 같다 빛이 쏟아지고 조각나고 흩어지다가마침내 검은 숲에 안겨 있었다풀숲 사이에서 동물의 춤을 추다 가끔 들키고 싶었다안개 속을 서성이면 잎사귀에 눈물이 고일까 호흡과 맥박 바깥에서 골몰하면 어른이 되는 걸까 사슴의 심장으로 뛰어도 뿔이 자라지 않는다목덜미가 서늘해질 때는 몸을 둥
올해는 123명의 학생이 278편의 시를 응모하였다. 시를 써보려고 언어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언어와 열정이 시적 형식을 얻지 못하고 산만해지는 것이 아쉬웠다. 예년에는 자기감정에 도취되어 내면을 토로하는 데 그치는 시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넋두리 같은 발화는 현격히 줄었다. 그만큼 정신력으로 세상을 버텨내며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자세로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감정이나 감각으로 서정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사유를 통과하는 통찰의 시가 되기를 바란다. 동화적이고 만화적이고 풍자적인
동물아이김혁진(인과계열 23) 때는 2022년 10월 4일이었다. 피곤한 기분마저 다름없는 평범한 아침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첫째 딸 아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맞춰 놓은 알람소리나 잠에서 깨어난 둘째 아들 재송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났을 텐데, 오늘은 기묘하면서도 거슬리는 낯선 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언뜻 들으면 오합지졸의 오케스트라가 불협화음을 내는 소리 같다가도, 또 언뜻 들으면 여러 대의 유람선이 동시에 출발하는 소리 같았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 소리
봄은 돌아오지 않는다윤성빈(사과계열 23) —입주를 환영합니다. 완만한 언덕 위, 둔덕진 길을 따라 줄지어 세워진 아파트 건물들을 몇 번이고 올려보았다. 언덕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이편까지 건물의 높이는 점점 낮아져, 각 건물의 꼭대기는 같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곳은 언덕이 아니라 고른 평지에 세워진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질적인 모습. 두연 그 건물들이 언덕 위에 뿌리내린 거대한 말뚝처럼 느껴졌다. 무딘 흙바닥에 깊이 뿌리내려 이내 나무를 가장한 철근들. 그렇게 나무
인간식물김민석(국문 17) *종이컵 바닥에는 진득한 커피 덩어리가 남아 있었다. 윤 욱은 종이컵 테를 시계방향으로 돌려 씹었다. 절반 정도 씹고 나서 보니 시계는 오후 여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천에 이십오라. 이 실장은 연신 눈썹만 긁어댔다. 짙은 눈썹과 동그란 눈, 돌출된 아랫입술. 군인 머리. 괜히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천에 이히 시힙 오호. 이 실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박자에 맞게 수첩을 넘겼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는 이십오만 원.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윤 욱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선을
신선한 발상의 사고실험이 돋보이는 를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아이들이 온갖 종류의 동물로 변신하는 재난이 닥친다. 인간과 동물의 거주, 서식 구역은 구획 불가능한 상태로 뒤섞인다. 인간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물질, 기계로 동물을 간주하던 시대의 종말을 그려낸 의 세계에선, 서구 철학사를 관통해 온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은 아동학대, 방임, 심지어 살인에 준하는 일로 엄정한 제재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더 이상 ‘동물’과 ‘동물 아이’의 구분조차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