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경제생활은 돈을 벌고 쓰고 모으는 활동 등이다. 돈을 지출하는 것은 당장의 혜택을 위한 소비와 미래를 위한 투자로 나눌 수 있다. 슬기로운 소비나 투자 모두 지출액 대비 혜택이 큰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소비와 투자의 차이는 혜택이 당장 나타나느냐 미래에 나타나느냐의 차이이다. 이런 모든 경제활동에서 회계는 매우 유용한 지식이다. 회계를 쉽게 설명하면 돈계산이다. 여기서 돈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돈을 번다는 것은 개인은 소득,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돈을 쓴다는 것은 비용이나 원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돈이 많
나는 3월에 있는 1주일 간의 봄방학 동안 서부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LA,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까지 10일간 갈 곳을 구글지도에 저장하며 그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코로나와 함께 무산되었다. LA행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만 해도 미국에서 코로나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상황은 미국 곳곳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며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다. 봄방학에 여행을 가도 될지, 학생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게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봄방학 당일, 뉴욕시티로 가는 버스가 11시 30분 출발이었기에 11시
커피를 마시기 위해 1시간 줄을 서고, 주문 앱에는 접속 대기가 떴다. 지난달 28일 전국의 스타벅스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런 진풍경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무료 리유저블컵이다. 이날 스타벅스는 창립 50주년과 세계 커피의 날을 기념해 전국 매장에서 주문한 음료를 리유저블컵에 담아 제공했다. 소비자에게 다회용컵을 지급해 1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겠다는 나름의 친환경적인 취지에서다. 하지만 방점은 친환경이 아닌 ‘한정판’과 ‘무료’에 찍혔다.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리유저블컵이 주인을 찾아갔다. 그것들이 정말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속 10가지 원칙을 지배하는 본령은 하나인 듯하다.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라는 두 번째 원칙을 그것으로 꼽는다. 심지어 첫째 원칙인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마저도 결국은 시민을 위한 기능적 진실을 추구하라는 잠언을 담고 있다. 저널리스트는 철학에서 말하는 절대적 진실을 좇는 직업이 아니다. 시민이 자치하고, 자유를 얻는 데 기여하는 기능적 진실이 저널리즘이 좇을 목표다. “진실성(객관성)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려는 수많은 시도는 결국 공익에 탁월하게 기
떠나기 전 수십 번 들었던 질문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백신도 없던 당시에 외국에 가서 생활하겠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모하다싶기도 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로 향했다.나만한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처음 로테르담에 도착했을 때, 저녁이었지만 여름이라 해가 길어 따뜻한 햇빛을 받을 수 있었다. 로테르담은 네덜란드 안에서 그래도 나름 큰 도시이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생각보다 더 작았고 평화로웠다. 자전거를 안 타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웠고, 학교에 있는 분수에서는 백조나 거위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기숙
과제 마감 9분 전,제대로 제출하셨죠?
어렸을 때부터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처럼 맛없는 급식에도 농담 삼아 ‘다시 없을 수능 2주 전 화요일 자 급식’이라며 소중히 한술 뜨라 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그 주 내내 그러고 다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아무 일도 없는 날에 의미를 담으면 왠지 특별해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의미도, 이유도 찾지 못한 일은 너무 싫었다. 우리가 더럽힌 교실은 우리가 치우는 것이 맞지만, 교무실 청소를 왜 학생이 하지? 귀한 가르침을 청소로 보답한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기사 작성으로 밤을 지새울 때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도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작은 문제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외견상 가장 단순하고 확실해 보이는 해결책이 거꾸로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의료과오 소송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도 어렵고, 의사의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손해액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이에 따라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최근에 통과되기도 했고, 과실이 없었다는 점의 증명책임을 의사에게 지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떨어지는 은행잎에노랗게 물드는스무살의 추억.문득 스치는 바람에도그때로 돌아가고 마는그리운 시간.
성대신문에 지원한 건 지금 생각해도 충동적이었다.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가 멋있어서. 그런 단순한 이유로 지원했고 면접을 봐서 덜컥 붙었다. 또 면접에서 만난 편집장이 멋있어 보여서 성대신문에 입사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수습 트레이닝을 거치고 나와 달리 진지한 동기들을 보며 몇 번이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기자가 꿈이라 입사했다는 동기 언니의 말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온 내가 진중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그래도 어쨌든 계속하고 싶었다. 인터뷰 컨택이 성공했을 때의 쾌감
항상 내 생각과 글이 정리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대학 입학 직후만 해도 이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문제 삼을 여유가 없었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시간에 휘둘렸고 걱정과 고민, 망설임으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니 정돈되지 않은 생각은 정돈되지 않은 글로, 마음으로, 생활로 이어지는 꽤 심각한 문제다.집 안에 틀어박혀 얌전한 방황을 지속하던 중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누구보다 분명하고 정확한 언어로 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면 이 혼란스러운 상태에
어쩌면 가장 솔직한 수습일기일지도 모른다. 특히 신문사에서 함께 일하는 기자들이 읽기에 더 불편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수습 기간을 거치며 더는 기자의 꿈을 꾸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고3 수험생활이 시작될 즈음 ‘사회적인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기자의 꿈을 꾸게 됐다.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2학년 끝 무렵에 있었던 촛불집회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생활기록부 진로희망란을 채웠다는 안도감과 함께 진로 고민은 나중에 시간 많을 때 하겠다고 미뤄둔 채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수습, 학업이나 실무 따위를 배워 익힌다는 뜻이다. 닦을 수, 익힐 습 두 한자로 이어진 단어다. 동음이의어로 어수선한 사태를 바로 잡음이라는 뜻의 수습이 있다. 그 단어는 거둘 수, 주울 습 두 한자로 이어져 있다. 내 삶은 사실 뒤에 이어진 수습으로 가득 차 있다. 하고 싶은 일에는 참을성을 보이지 못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뒤로 미루고 나중에 얼기설기하게 수습하기 일쑤다. 당연히 대학에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더 해졌다.스스로 ‘대학에 왔으니까 놀아야지’라는 핑계를 댔지만 실은 살면서 놀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고등학생 때까지 평생 써온 일기는 ‘기록’ 그 자체였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어 일기장을 펼쳤던 어느 날, 몰아치는 감정을 담아낼 표현을 찾고 글을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마침내 내 인생에 새로운 출발선을 그었다. 그날부로 과학 전문 기자를 꿈꾸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기는 ‘대화’로서의 의미를 얻었다. 언제고 불러낼 수 있는 대화상대가 생긴 것이다.그런 내가 수습기자가 되어 처음 써 본 기사라는 글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대화는 철저히 걷어내고 오로지 사실과 자료를 기반
내 이름은 昰(옳을 하)자, 辰(별 진)자를 써 옳은 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辰이 다섯째 지지, 용이라는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 항상 마지막의 설명까지 들으면 옳은 별, 옳은 용이라는 이름에 부응하는 삶을 꾸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는 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고심해 지어준 이름이니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나를 온전히 나타내주는 단어는 내 이름 석 자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등학교 2학년 때, 생활과 윤리 선생님이 유서를 써오라고 과제를 내주신 적이 있다. 그래도 내 인생의 마지
생각은 자유나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문자로 기록해 지면에 남기는 경우는 더 그렇다. 한번 종이 위에 잉크로 찍고 나면 정정하기 어려운 게 글이다. 그래서였을까, 한 학기 동안의 수습 활동과 한 달에 걸친 방중 활동 동안 설렘과 고됨보다 먼저 찾아온 건 책임감이었다.수습 기간은 말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일의 연속이었다. 모르는 용어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낯선 절차에 익숙해지기 위해 발버둥 치며 보낸 나날들이 기억에 선명하다. 이 지난한 과정도 언젠가 지나갈 테지, 그리고 나면 길이 보일 테지, 하며 자신을 위로했지만 이름 석 자
성대신문에 지원할 때의 마음은 가벼웠다. 뭔가 유의미한 활동을 하고 싶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좋아하는 미드에서 주인공이 학보사에서 일하던 것도 떠올렸다. ‘프레스증이 생기면 나도 멋있어 보이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첫 수습 트레이닝을 진행했을 때도 그랬다. 표기 준칙을 받아들고 괜히 멋져 보여서 종이가 닳도록 넘겨보았다. 그때의 나는 성대신문이라는 이름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그래서인지 수습기자 트레이닝은 당황의 연속이었다. 당장 소재로 뭘 써야 할지부터 ‘문건’이 무엇인지, 8매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신
창간 이래 68년의 긴 시간 동안 다져진 신문사의 체제는 견고하다. ‘문보사사학’ 명확히 나뉜 부서는 위상에 맞춰 기사를 작성한다. 그리고 발간 주엔 매번 같은 미션들을 완수한다. 편집회의, 조판회의, 웹업로드, 카드뉴스 제작 … 언제부터인지 별다른 지시나 논의 없이 척척 진행돼왔다. 개혁에 대한 갈망엔 “이게 최선이야”라고 외치는 견고한 체제는 꽤 든든해 보이기까지 했다.본지 1682호와 1683호 보도면에서 다룬 ‘학생자치기구 중간공약점검’도 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코너다. 해당 코너의 기사는 매년 분량과 구성이 유사하다. 그렇
구조주의라는 철학 사조를 유튜브에서 처음 접하고 기뻤던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로 드디어 사람들에게 ‘철학을 공부할 가장 확실한 이유’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둘째로 내가 그동안 세상을 인식해온 방식이 옳았음을 인정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우리는 ‘포스트 구조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것의 이후를 뜻하는 ‘포스트(post-)’가 붙은 포스트 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구조주의가 상식이 돼 ‘권력’으로서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습관처럼 쓰는 “그럴 수도 있지”
인간의 성장을 개구리의 삶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올챙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될 때, 대학생에서 취업 준비생이 되고 신입 사원이 되는 순간 말이다. 그런데 힘들게 개구리가 되었는데 올챙이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너무 급격한 변화였을까? 올챙이로 돌아갈 때 우리는 마치 넓디넓은 우주에 혼자 던져진 기분을 느낀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고, 아무도 모르는데, 그런 곳에 적응해서 다시 개구리가 되어야 한다니. 절망적일 만하다.그런데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