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1 _ Age Of Myth [신화의 시대] 입구를 넘어 어두운 전시장을 해치고 들어가면 표정을 알 수 없는 한 남자와 마주친다. 칙칙한 피부와 비정상적으로 곧은 몸, 감은 듯 반개한 눈을 가진 이 남자는 지하철역 정 중앙에 서 있다. 남자 주위의 사람들은 창백하고 어딘가 불만에 차 있다. 그림 안에 6명은 아무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1940년대 지하철역은 공허하고 차가우며 지금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하다. 마크 로스코의 초기작인 이 ‘지하철 환타지’는 세계 2차 대전 시기의 미국을 상징한다. 전쟁
지난달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 ‘NO. 10(1953)’이 8,190만 달러(약 896억 원)에 낙찰됐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전에 전시된 작품의 총평가액은 2조 5천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로스코의 빨간, 노란 향연 속에서 그런 천문학적 금액의 근거를 찾지 못한다. 아무리 애를 써 해석하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가의 미술 작품은 마크 로스코뿐만이 아니다. 모처럼 미술관을 찾은 우리를 한순간에 바보로 만드는 현대미술, 왜 이렇게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걸까? 현대미술은 매우
마크 로스코 전의 도슨트를 맡았다. 부담스럽진 않았는가. 전시에 따라 도슨트가 관람객에겐 힘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마크 로스코 전의 도슨트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엔 전시에 독이 될까봐 거절했다. 나는 침묵을 깨고 말을 하는 순간 작품에 담긴 추상이 형태를 갖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을 좋아하고 자기만의 감상법이 있는 소수는 그 침묵이라는 추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을 느끼는 것조차도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마크 로스코와 같은 심오한 작가의
흔히들 대학은 2호선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말을 한다. △서강대 △연대 △이대 △홍대 등 여러 대학이 밀집해있는 신촌은 단연 대학의 지성과 젊음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무분별한 상업화로 신촌 또한 대학 고유의 문화와 개성을 잃어버린 상업지구가 된 지 오래다. 이에 맞서 청년 예술가들의 발전과 신촌 지역의 고유한 개성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신촌문화기획단체인 ‘청출어람’이다. 지난 16일에 있었던 축제 준비로 바쁜 그들을 만났다.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 해도 마땅한 장소가 부재하는 현실에 부딪힌 청년
다이나믹 듀오와 자이언티로 성균인이 하나 됐던 지난 금요일. 축제의 열기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주말에 신촌 연세로 아스팔트 위에는 시민들과 학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바로 ‘신촌대학문화축제’다. 올해 행사의 주제인 ‘아스팔트 스튜디오’는 차와 어두운 매연으로 가득했던 회색빛 아스팔트를 청년 예술가의 공연과 작품으로 가득 채운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자는 지난 16일 청년 예술가들과 대학생 동아리, 시민들의 참여로 꾸며진 신촌 연세로를 찾았다. 연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독수리약국 쪽으
대화하기보단 카톡 하기 바쁜 요즘, 나의 옷보다도 또 너의 말보다도 우리를 더 잘 표현하는 것이 있다. 21세기의 감성을 담은 언어, 이모티콘이다. (부끄)를 입력하면 발그레한 복숭아가, (하트뿅)을 치면 사랑에 빠진 강아지가 말을 한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하트)를 보내는 지금은 이모티콘 시대다. 이모티콘, 누구냐 넌 이모티콘의 처음을 기억하는가. ‘ㅇㅅㅇ’부터 ‘;;’까지, 그 시절 이모티콘은 10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런 인기도 잠시, 이모티콘은 인터넷 게시물에서 ‘가장 싫은 남·여
대한민국을 이토록 깜찍하게 만든 고양이 ‘네오’와 강아지 ‘프로도’는 누구의 손에서 탄생한 걸까. 카카오톡의 대표 이모티콘 ‘카카오프렌즈’를 만든 호조(본명 권순호) 씨는 캐릭터 디자이너다. 게임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처음 시작한 호조 씨는 2002년도부터 웹툰 ‘호조툰’을 연재했고, 나만의 캐리커처를 만들 수 있는 앱 ‘모두의 얼굴’도 만들었다. 지난 8일, 개화동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카카오프렌즈는 어떻게 탄생한 건가. 취미로 그린 건 아니고, 카카오톡 측으로부터 대표 캐릭터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를 받았다. 모든 연령층을
무리의 ‘양복쟁이’들이 출현했다. 양복을 입고 도로를 질주하는 70여명의 청년들. 그들의 발아래 놓인 건 스케이트보드였다. 스케이트보드샵 ‘롱로드’에서 주최한 ‘선데이 시티크루징’ 행사에서 보드 라이더들은 이날의 드레스코드 ‘맨 인 블랙’을 갖춰 입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종로까지 달렸다. 스케이트보드는 대체 어떤 매력을 가졌길래 한여름 태양 아래 이들을 사로잡은 걸까. 스케이트보드(이하 보드)는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땅에서도 서핑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으로 시작됐다. 당시 보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
19살 조기 졸업한 소녀, 32살 대학원생, 네덜란드에서 온 외국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학교 스케이트보드 동아리 ‘알리’의 멤버라는 것이다. 알리는 보드 뒷부분을 차 높게 뛰어오르는 기술이다. 알리라는 기술처럼 비상하자는 의미를 지니는 동아리 ‘알리’, 그들을 만났다. 알리는 매주 모여 크루징을 하는 동아리다. 보드 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놀던 것이 그 시작이 됐다. 학교에서 보드 타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레 말을 걸어 친해졌고, 인사캠에서도 이야기를 듣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찾아왔다. 박
어딜 가나 패션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많다. 유명한 패션 블로거들의 하루 방문자 수는 백만 명이 넘고, 평범한 사람들도 인스타그램에 ‘#봄날’ 같은 해시태그를 붙여 옷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린다. 이들을 위한 각종 패션잡지, 스트리트 패션 사진집,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추천해 주는 앱 등의 패션 전문 매체도 늘어나는 추세다. 패션에 제한이 어디 있겠냐만 아마 이중 가장 패션에 관심이 많은 계층은 이제 막 교복을 벗어 던진, 새로움에 눈을 반짝이는 대학생들이 아닐까. 전국대학생패션연합회 ‘O.f.f.’(회장 김유경)는 이렇게 패션에
간단히 자기소개 해달라.저는 COMPATHY에서 디자인하고 있는 송승렬이라고 합니다. 대학생 때부터 쭉 패션일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패션 쪽에 관심 있었던 건가.학생 때부터 옷을 좋아했어요. 생소한 브랜드들을 가져와서 애들한테 알리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그런 거 있잖아요.(웃음) 그 와중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란 드라마를 보게 됐어요. 장동건이랑 김남주 나오는 거요. 제목은 모델이지만 디자이너가 굉장히 멋있게 나오는 거예요. ‘그 디자이너, 나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의상디자인과에 대해 찾아보니까 입시 미술을 해야
패션쇼를 기획하는 대학생,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만 패션에 열정이 있는 게 아니다. 패션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옷 입는 걸 즐긴다면 당신도 충분히 패션을 논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패션에 대한 열정을 뽐내기엔 새 학기 대학생의 지갑은 너무 가볍다. 옷은 사고 싶지만 돈은 없는 당신을 위해, 혹은 묵은 옷을 팔고 과감히 스타일 변신을 꿈꾸는 당신에게 서울의 플리마켓 세 곳을 소개한다. 패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 피프티서울피프티서울은 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 패션잡지 ‘Cracker’ 장석종 편집장, 강민구 사진가 세 친구가 기획한
그는 정지했다. 어제만 해도 눈앞에서 살아 숨 쉬던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조그마한 심장이 더는 일하기를 거부했고 그와 함께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일, 사랑했던 것, 맺어왔던 관계는 의미를 잃었다. 그렇게 끝났다. 그때, 어디선가 외침이 들려온다.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끝나지 않았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숭고하며, 그 끝은 초월이다.” 예술과 과학이 만나 탄생한 현대예술, 비디오 아트빛과 소리를 담아내고 시간의 진행을 보여주는 비디오. 일반인들에게는 단순히 신기한 과학의 산물이었지만 예술가들에게는 달랐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쉽
마침 비가 왔다. 홍대입구역에서도 한참 걸어야 나오는 주택가 사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골목 끝으로 보이는 노란 벽이 박물관이 거기 있음을 알렸다. 벽에는 노란 나비가 빼곡히 앉아있었다. 그 중 한 나비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자유로운 나비가 되세요.” 2012년 5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설립됐다. *일본군‘위안부’ 사건을 기억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내외 시민들이 힘을 모은 결과였다. 박물관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1990년 만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시기인 ‘청춘’. 하지만 그 시절을 힘든 나날로 떠나보낸 이들이 있다.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봄을 빼앗겨버린 할머니들.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예술작품으로 전하는 곳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압화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플라워 패턴을 지닌 디자인 상품으로 재탄생시킨 ‘마리몬드’의 대표, 윤홍조 씨를 만났다. ‘오늘 하루도 당신은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디자인 상품과 콘텐츠로 존귀함의 회복을 실현하는 브랜드, 마리몬드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이다. 대학생 시절 맡게 된 ‘위
지난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아 전국의 편의점, 마트, 문방구에선 각종 사탕, 초콜릿, 비스킷들이 현란한 포장에 싸여 자태를 뽐냈다. 사람들이 저마다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과자를 고르는데 심취해있을 때 바로 옆 방앗간의 가판대 위는 조용했다. 우리의 과자, 한과는 그렇게 외면당하고 있었다.한과의 기원은 과일이 없는 계절에 곡식으로 대신 과자를 만들어 먹던 것에서 비롯됐다. 한과에 대한 기록이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가는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도 달콤함에 대한 유혹은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불교 행사가 성대했던 고려시대와 임금의 상
굉장히 오래 한과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일을 시작한 것은 운명 같다. 부인과 인연을 맺었는데, 처가가 한과를 만드는 집안이었다. 어릴 적 먹고 싶었던 한과를 부인을 만날 때마다 먹으니 정말 좋았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처가 밑에서 한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어릴 적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먹었나에 따라 입맛이 바뀐다. 어린 시절 밀가루를 먹은 한국 사람들은 한과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한과를 먹는 고객은 50대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과의 발전을 위해 박물관을 세워 조상의 혼을 알
길을 거닐다보면 어디에서든지 감성 넘치는 손글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꽃’이라는 낱말에선 싱그러운 봄내음이 불어오고, ‘청춘’이라는 글자는 여리지만 뜨거웠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2000년 초, 한국에 처음 캘리그라피를 소개하고 글씨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의 다정다감한 교감을 시도해온 사람이 있다. 순수와 상업서예를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캘리그라퍼 강병인을 만났다. 어린 시절을 산골 오지에서 보냈다. 붓을 잡게된 것은 언제인가.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서예반을 개설하셨어요. 그 때 처음 서예를 시작하게
지구 육지의 20%. 11억 명 거주. 그리스어로는 ‘추위가 없는’ 대륙 아프리카. 우리는 보통 아프리카 하면 이런 생각을 한다. 사자와 기린, 굶주리는 아이들, 에볼라 바이러스…. 우리가 그리는 아프리카는 정답일까? 우리가 그려낸 아프리카는 50점짜리에 불과하다. 아프리카는 실제로 많은 아이가 굶주리고, 에볼라 바이러스의 상흔이 깊게 남아있는 대륙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프리카의 전부는 아니다. 아프리카는 2000년 이후 5%대의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도 그들 특유의 문화를 보존해 왔다. 그곳의 청년들은 맥도날드에서
고향이 어디인가.엠마누엘 파소 : 우리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왔다. 부르키나는 ‘welcome’, 파소는 ‘country’란 뜻으로 부르키나파소는 말하자면 ‘사람을 환영하는 나라’다. 나라의 이름처럼 우리는 당신들을 환영한다.(웃음) 독자들을 위해 ‘쿨레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엠마누엘 : 처음에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이 우리에게 정기적인 공연을 제안했고 우리는 오디션을 보고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강한 차별을 느꼈다. 일부 박물관 디렉터들은 우리가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들의 도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