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재 기자(이하 송) ‘최규석’이라는 세 글자가 웹툰에 등장하자 많은 독자들이 열광했다. 웹툰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중에서도 ‘네이버’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최규석 작가(이하 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웹툰을 시작했다. 웹툰 안에서 ‘네이버’와 ‘다음’ 사이에 진영이 갈라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내 만화가 ‘네이버스럽지 않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4주에 4화를 그리는데 12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힘들다. 1년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송 트위터를 보면 웹툰에 대한
아시아인도 모르던 ‘아시아성’을 예술 속으로우리가 배웠던 ‘세계미술사’를 떠올려 보자. 동양화의 육법, 인도의 굽타 양식 보단 낭만주의, 인상파, 그리고 다빈치를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우리는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미술사적 흐름이 소외된 서양미술사를 중심으로 배웠다. 서구와 아시아 문화에 상·하위 개념을 접목시키는 불균형적 시각이 강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하에서 ‘무브 온 아시아’ 프로젝트는 현대 미술이 잃어버린 ‘아시아성’을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것은 서구 문화와의 충돌도 대항도 아니다. 균형화된 바라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의 7번째 프로젝트 ‘검열(Censorship)’ 영상전이 열리고 있는 대안공간 루프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침한 조명 아래 20여 점의 작품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관객을 반긴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공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에는 인도 작가 날리니 말리니의 ‘In Search of Vanished Blood’가 상영 되고 있다. 재갈을 물리고 성폭행을 당한 영상 속 여성은 흰 옷을 입고 그녀의 순결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힌두교’라는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 굴복해 결국
오늘 아침 학교로 오던 길을 생각해보자. 계단을 오르내릴 때 보이는 비상구 표시, 건널목에는 걷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파란불의 신호등, 우리 학교 경영관의 ‘금연’ 표시부터 올림픽 기호 픽토그램까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 픽토그램은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픽토그램들이 언제 처음 세상에 나타나게 된 걸까?그림에 정보를 담다 픽토그램의 시작은 오스트리아의 정치 경제학자였던 오토 노이라트와 그의 부인 마리 라이더마이스터의 아이소타이프(Isotype)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각 자료를 만들고 싶었던 노
초여름,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늦은 6시. 퇴근 인파로 북적이는 사당역 주변. 이 때, 우산을 받쳐 든 양복 입은 중년 신사의 이목구비가 과감히 삭제된다. 깊게 팬 미간의 주름, 콧잔등에 튀긴 빗방울, 와이셔츠 소매의 구김도 함께 사라진다. 남은 것은 단순화된 몸의 형태 묘사와 이를 둘러싼 검정 테두리, 그리고 그 안을 꽉 채운 선명한 색채뿐. 줄리안 오피의 ‘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이다. 줄리안 오피는 인물의 정체성이 최소한으로 남을 때까지 형태를 단순화시킨다. 인물을 둘러싸고 있던 화려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것. 그러나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 있어서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이제 그런 것들을 좀 더 아끼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2002. 조주상의 '디자인 솜씨' 중에서배공민 기자(이하 배): 원래 직업은 디자이너였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신 건가요?조주상 감독(이하 조): 웹디자인을 10년 했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디자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엉뚱한 생각이 계속 났어요.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던 참에 ‘서울여성 디지털 디자인 공모전’이 눈에 팍 들어온 거죠. 마감이 일
“예술하고 싶어요.”말하는 청춘에게 “어떻게 먹고 살려 그러니”라는 답이 돌아오는 게 요즘 한국 사회다. 이 현실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예술’하고 있을까. 전에서 이 질문에 대한 네 작가의 각기 다른 해답을 들어 본다. 본업과 부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청춘 예술가. 안데스 작가와 권용주 작가와 함께 예술 하는 청년의 ‘진짜’ 리얼리티를 들어보자.투명한 유리문 너머 보이는 거대한 실루엣. 문이 열리자 들리는 요란한 전기톱소리. 천장에 닿을 듯 쌓인 옷더미는 마치 고물상을 연상케 한다.
안데스 작가와 권용주 작가는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좇는다. 불안정한 한국 예술계에서도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예술가들. 젊은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오늘도 씁쓸한 예술계의 현실을 무겁게 짊어지고 있다. 그들의 꿋꿋한 걸음 아래, 얇은 표층토의 한국 예술 기반이 단단한 토양으로 다져지는 날을 꿈꿔본다,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의 67%가 순수한 창작활동과 관련된 월평균 수입이 100만 원 미만으로 나타났으며, 월평균 수입액이 ‘없다’고 대답한 예술가들도 26%를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이 있다. 김종구 작가의 ‘잃어버린 것, 서 있는 사람’이다. 손발이 깨지고 뼈대마저 다 드러난 데다 색까지 바래버린 훼손된 여인상. 바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지나온 삶이다. ‘누락된 기록’ 프로젝트는 위안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파편화된 여성의 삶과 이를 바라보는 현재 시점의 기억을 △설치 △영상 △조각 △회화 등의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조명한다. 발걸음을 옮겨 김지호 작가의 ‘Mirror-CCTV (기억과 기록)’를 만난다. 고장 난 감시용 CCTV와 몇 개의 손거울이 서로를 마주보고
6·25의 종군기자들, 오뚝이처럼 일어서다6월 25일 아침 국방부 장교가 방송국에 가져온 보도 자료는 너무나도 허술했다. 이에 한 기자와 방송과장은 국방부 국장을 만나 원고를 다시 작성했다. 이 원고가 바로 전쟁이 발발했음을 알리는 국내 최초의 원고였다. 이 원고를 가지고 위진록 아나운서가 최초로 전쟁의 시작을 보도한 것이다. 서울에서 남북한의 격전을 발 빠르게 전달하던 KBS 방송국은 인민군의 공세에 6월 28일 첫 피난을 시작했다. 방송국 직원들은 한강 이남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또 밀리고 밀려 대전까지. 기자들은 대전방송국의
여기, 종군기자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카파가 있다. 이전까지 보도사진은 전쟁의 애국성과 영웅성을 강조했다. 카파는 기존 보도사진에서 탈피해 ‘있는 그대로’의 전쟁 얘기를 사진으로 담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은 전쟁을 혐오하는 그를 전장의 구석구석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라는 말을 남겼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은근한 페로몬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그에 이끌려 무엇인가에 ‘한 발짝’ 더(zoom-in) 다가서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로버트
조수민 기자(이하 조) 언제부터 미술을 시작하게 되셨나요.공성훈 작가(이하 공)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당시에는 미술 학원이 많지 않아서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죠. 그러다 중학교 때 미술반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매일 한 장의 그림을 그리며 그때부터 진로를 미술로 정하게됐죠.조 활동 초기에는 회화가 아닌 기계를 이용한 작업과 설치 미술을 주로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작업이었나요.공 제가 전자공학도 공부하기는 했지만, 고난도 기술을 이용한 적은 거의 없어요. 꼭 어려운 기술이어야만 의미 있는 것
영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 헨리 무어가 졸업한 왕립미술학교 출신의 미술강사 라이언. 그는 어느 날 애싱턴 광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미술 감상수업을 부탁받고 강의를 하게 된다. 열심히 준비해간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 슬라이드를 자신 있게 펼쳐 보이자 시끄럽던 교실은 일순간 조용해진다. 이 때 침묵을 깨는 한마디, “대체 르네상스가 뭔가요?” 10살 때부터 광부 일을 하면서 그 흔한 그림조차 단 한 번 본적 없는 광부들에게 처음 마주한 예술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대체 왜 그림을 그리는 건지,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언제 마지막으로 온몸을 펴고, 호흡을 가다듬고 쉰 적이 있는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머릿속을 붙잡고 있는 상념들로 지친 우리를 위한 전시가 있다. 제대로 된 ‘쉼’을 느껴보기 위해 우리 학교 후문에서 종로 02번을 타고 북촌로를 따라 국립민속박물관에 도착했다. 총 3부로 이뤄진 전시는 ‘금강산 관람객이 유람하고 집에 돌아와 쉬었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는 과정’을 담았다. 금강산 여행이라는 스토리텔링 안에서 관람객들은 ‘전시를 본다’는 느낌을 넘어 ‘논다, 여행한다, 쉰다’는 느낌을 받는다. 1부에서 3부로 갈수록 쉼의 자세가 바뀌
잘 먹고 잘 놀자!문화 예술계에 거센 ‘협동조합’ 바람이 수원에도 불었다. 올 4월에 설립된 이웃문화협동조합(이하 이문협)은 이웃 문화와 예술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문화 불모지’로 불리는 수원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수원 팔달구 지동에서 지역 공동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문협을 만나보자! 마음 맞는 친구들의 커뮤니티 아트, 이문협의 시작이문협은 문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 진행하던 그들만의 ‘재능나눔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 프로젝트는 벼룩시장을 운영하거나 작가들과 협업해 동네의 벽화를 그리는 등의
‘오가닉’ 하면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것은 푸른 채소, 촉촉한 갈색 흙. 그러면 오가닉에 예술이 더해진다면? 이웃문화협동조합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오가닉의 의미에 예술가들이 '공동체와 문화예술을 함께 즐기는 총천연색의 것들'을 더했다. 그래서 이문협이 재정의한 오가닉에는 예술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9월 7일 수원 화성 성곽 뒤편의 소박한 마을 행궁동. 이 마을을 축제의 현장으로 들썩이게 한 오가닉 아트 페스티벌을 찾았다. 오가닉 아트 페스티벌의 서막은 문탁네트워크 이희경 대표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주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히로코는 2년 전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이하 이츠키)의 철거된 옛 주소로 편지를 보냅니다. 마치 천국에 보내는 듯,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련하게 보낸 잘 지내냐는 편지.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 답장을 받게 됩니다. '감기기운이 조금 있지만, 잘 지내고 있어요?' 놀랍게도 그 집 주소에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와 동명인 그의 중학교 시절 여자 동창(이하 후지이)이 아직도 살고 있던 것이죠. 영화 ‘러브레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둘은 이후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후지이는 편지를 통해 지금까지 잊고 있던 이츠키와의 추억을 떠올립니
행사 시작이 예정된 7시에 거리로 들어서자 연결돼 설치된 네 개의 소규모 무대. 순서대로 △여일밴드 △H.I. △싱어송라이터 민열과 조디 △기타리스트 정선호다. 무대를 따라 길바닥에는 행사 포스터를 이어 선처럼 쭉 붙여뒀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미리 공연 구역과 인도를 나눠 둔 것. 이전까지의 버스킹이 좁은 거리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돼 거리가 혼란스러웠던 점을 고려했다. 7시가 약간 넘자, 골무 팀장과 밴드 H.I.의 리더를 맡고 있는 우리 학교 김준섭(연기예술10) 학우가 “행사의 주최자인 골무
거리로 몰렸고, 소리가 커졌다작년까지만 해도 홍대 거리에서의 버스킹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공연을 보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고, 주변 상인들도 자연스러운 ‘홍대 문화’로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던 중 오디션 붐과 함께 불어온 ‘버스킹 열풍’을 타고 뮤지션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졌으니 긍정적 측면도 분명 있다.하지만 문제는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버스킹을 할 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쏟아져 나오며 거리는 급격히 혼란스러워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부 버스커들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그리고 ‘수운교!’ 이름부터 생소한 수운교를 체험해 보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청사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금병산 자락으로 이동하자 수운교입구가 나타났다. 수운교는 화합이다물 수, 구름 운. 수운교는 천도교를 창시한 최제우의 별호인 ‘수운’에서 비롯됐다. 수운교 본부에는 불상을 모시는 법회당과 도교의 하늘님을 모시는 도솔천이라는 성전이 모두 자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수운교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선) 3교의 화합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수운교에서 신도 교육을 담당하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