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복지회관의 준공식이 있었던 1996년 10월 16일. 당시 총학생회 학생복지위원회는 학교 측에 복지회관 건축비로 3억 5천만 원을 내놓았다. 2년 반 동안 커피 자판기 등의 수익사업을 통해 모은 돈이다. 지금도 자과캠 학우들이 족구를 하고, 때로는 공연도 여는 복지회관 앞 족구장도 이 때 조성된 것으로 당시 학생복지위원회가 수익금을 학내 복지에 재투자한 결과다. 상업화를 넘어 복지로캠퍼스 상업화를 막을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대학생활협동조합(이하 대학생협)은 학내 구성원들이 대학 안에서 합리적 소비생활과 복지 혜택을 누리기
우리 학교는 캠퍼스 내의 △매점 △식당 및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등 우리 학교 구성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모두 외부업체 및 개인에게 위탁해 운영한다. 캠퍼스 내 편의시설은 학내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존재하지만 입점한 외부업체들이 항상 학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학기를 끝으로 우리학교 자과캠 학생회관 2층에 있던 커피전문점 ‘이디야(EDIYA)’가 재계약에 실패해 퇴거했다. 이는 이디야가 지난 3월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린 것에 대해 총학생회가 적극적으로 항의한 결과다. 자과캠 성
대학이 학문의 전당으로서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들이 대학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경제적, 문화적 복지가 뒷받침 돼야 한다. 물론, 학내 복지를 위해선 캠퍼스 내에 적정수준의 편의시설이 있어야 하지만, 입점한 업체들이 수익에만 관심을 두면서 학생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이번 기획에서는 다른 대학들의 과도한 수익사업과 우리 학교에 입점한 업체들의 계약위반 사례를 정리하며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캠퍼스 내 소비생활을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2004년 고려대학교에 지어진 타이거 플
그녀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 동네에 처음으로 복지관이 생겼다. 그곳에서 사회복지사라는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도 잘 몰랐다. 그저 막연히,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정도의 생각에 그쳤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전공으로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다. 경험해 보니 잘 맞았다. 그렇게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게 됐다.이수나 씨는 여느 직장인과 같은 시간에 출근을 준비한다. 뛰지 않고 여유 있게 지하철을 탔을 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붐비는 출근길을 지
보치아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스포츠로, 패럴림픽 정식 종목 가운데 하나다. 오는 10월 열리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도 포함돼 있다. 보치아의 경기 방식은 ‘컬링’과 비슷하다. 두 선수가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 공을 굴려 ‘표적구’인 흰 공에 더 가깝게 붙여야 한다. 경기는 4엔드로 구성되고, 각 선수는 한 엔드에 공 6개를 던질 수 있다. 각 엔드마다 상대보다 흰 공에 가까이 있는 자신의 공 개수만큼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그렇게 4엔드를 합산해 점수가 높은 사람이 승리한다.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보치아 강국이다. 보치아
“대회 한 번 진행하기 얼마나 힘든데요.”이번 대회에서 왜 단체전은 열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대한 최승균 인천아시안게임 보치아담당관의 대답이었다. 스포츠 대회가 모두 그렇겠지만, 보치아의 경우에는 대회 한 번 여는데 드는 어려움이 더욱 크다. 그도 그럴 것이 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뇌성마비 장애인들이기 때문이다.대회 참가, 접근성 뒷받침돼야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 선수들이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대중교통 이용도 쉽지 않다. 대한장애
지난해 1월 성북구청은 노원구청과 더불어 국내 최초로 구청장의 행정명령으로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했다. 당시 성북구와 노원구는 참여연대 지역 지부와 함께 우리나라 평균임금의 58% 수준인 6570원을 해당 구청의 최저임금 하한선으로 설정했다. 5인 이상 사업장 평균임금의 50%에 서울시 물가수준을 반영한 8%분을 추가해 책정한 결과였다. 당시 최저임금 4860원보다 35% 높은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성북구청 산하 문화재단에서 근무하는 35명과 도시관리공단에서 근무하는 75명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됐다. 지난 21일 만난 도
생활임금 조례 제정 운동은 2011년 한국노총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국노총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생활임금 조례 제정’을 미래전략과제로 채택했다. 이후 지역 중심의 조례 도입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는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부천시는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 주도하에 국내 최초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의 혜택 대상은 주로 부천시 산하 공단의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지자체에서도 생활임금 조례 제정을 시도하고 있다.난관에 봉착한 조례 제정그러나 조례 제정은 재원 문제 때문에
양공주, 양갈보, 호스티스, 바 걸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그들. 한국전쟁 이후 주한 미군기지촌에서 미군들을 상대했던 매춘 여성들이다. 혼란스러웠던 사회 속에서 그들은 무시받고 경멸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해 ‘민간 외교관’, ‘외화벌이 산업역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번 기획에서는 기지촌 여성의 삶 뒤편에 자리하고 있던 국제 정치와 국가 안보 아래에서 개인에게 가해진 폭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동시에 당시 기지촌 여성들이 받은 피해의 비참함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희생자의 틀에 가두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은
# 힘들었던 어린 시절김숙자 씨의 어머니는 자주 그녀에게 화풀이했다. 늘 맞고 구박당하던 그녀는 어렸을 적 줄곧 엄마가 계모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집안의 돈을 들고 나가서는 다 말아먹고, 돈이 완전히 없어지면 그때만 일했다. 어느 날은 여자를 데리고 와 아이도 낳았다. 그녀가 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그녀 밑으로 동생들이 생기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그 화를 모두 그녀에게 풀었다. 두 남동생이 태어나고도 어머니의 매질은 계속됐다. 견딜 수 없었다. 12살 때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 서너 명과 집을 떠나 무작정 기차
가난과 가부장적 사회가 기지촌으로 여성들 내몰아1950년에 시작해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은 우리나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남은 건 20만 명의 미망인, 10여만 명이 넘는 고아,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 전쟁으로 인한 공동체 파괴와 극심한 빈곤은 생계를 잇기 힘든 여성들을 기지촌으로 내몰았다. 당시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공장에 들어가 여공이 되는 여성들은 일부 소수의 젊은 여성이었다. 안김정애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대표는 “당시 사회의 극심한 가부장적 구조와 순결이데올로기가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조례안을 상정하라!” 지난 4월 1일, 경기도의회 염동식 도의원 사무실 앞에서는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의 상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례안은 기지촌 여성에 대한 주거 및 생활안정 지원에 대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 과반수가 넘는 35명의 경기도 의원들이 이 조례안의 발의에 찬성했지만, 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장이 본 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기자회견이 끝나고나서야 현장에 도착한 염동식 의원은 4월 도의회 상정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상정은 위원장의 권한임에도 “집행부의 의견을 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