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도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작은 문제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외견상 가장 단순하고 확실해 보이는 해결책이 거꾸로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의료과오 소송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도 어렵고, 의사의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손해액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이에 따라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최근에 통과되기도 했고, 과실이 없었다는 점의 증명책임을 의사에게 지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평온한 농촌의 평범한 농부 갑(甲)은 하루 8시간 일하며 연간 100포대의 쌀을 생산한다. 하루는 촌장이 무리와 함께 찾아와 경작한 쌀의 절반을 달랜다. 대신 다른 농부들 것도 반씩 거둬 합친 후 총 농부숫자(n)로 나눈 양을 갑에게 ‘무조건’ 준다고 약속한다. 계산해보니 그 양은 갑이 내는 50포대와 같다고 가정하자. 이른바 ‘1/n(n빵) 룰’의 일종이다.내 것을 이웃과 공유(共有)하되 공동체도 날 확고히 보장해준다는 시스템이다. 경제학도의 눈으로 이 공유시스템을 한 번만 더 생각해본다. 핵심을 짚기 위해 보통사람인 갑의 본성과
사람은 회의할 때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밥 먹다가도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생각하고 멍 하니 있다가도 생각한다. 생각이 그냥 생각으로 끝나서 한때 무엇을 생각했는지조차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런 ‘생각의 미아’를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간혹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책을 읽다가 나도 이런 생각을 했다고 회상한다. 또 한 번 들었던 생각을 미아로 만들지 않고 계속 의식 속에 담아두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생각을 금고에 넣어두듯 보관만 하기도 하고 생각을 어항에 두어 키우기도 한다.원시인은 생각을 했지
익숙함과 낮섦 사이어느덧 장마를 동반한 여름에 접어들었다. 매번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참 낯설다. 꼭 챙겨보는 것이 뉴스 말미에 기상 예보가 되어버렸다. 뉴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털에서도, 앱에서도 계속 확인한다. 몇 시 즈음 비가 온다네, 최고 기온은 몇 도라네, 미세먼지는 몇 ㎍/㎥이네. 이 예민함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그간 익숙했던 사계절과는 다르게 전지구적으로 나타나는 ‘기상이변’이라는 이름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인걸까, 아니면 10분마다 갱신되는 날씨예보를 시시때때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일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로마인처럼 행동해라.” 등 로마와 관련된 서양 속담이 많다. 19세기 독일 법학자, 예링은 “로마는 세 번 세계를 통일했다”라고 했다. ‘무력’, ‘기독교’ 그리고 ‘법’을 통해 유럽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 큰 기여를 했듯이, 로마인들은 법학에 그러한 공헌을 했다. 로마제국은 쇠퇴하면서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었고, 이탈리아 반도를 기반으로 한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했다. 현재 터키 이스탄불
‘음수사원’은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에서 온 말로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마셔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의 근원을 잊지 말자는 의미이다.(When one drinks water, one must not forget where it comes from) 작년 8월 정년퇴임 후 올 3월 모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모교 교장으로 부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대학과 달리 모든 일이 조심스럽다. 그리고 아직 미성숙한 학생을 훌륭한 품성을 지닌 인재로 양성해야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1.4억 명의 확진자와 3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는 우리의 사회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는 큰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사회학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낙인(stigma)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한국에서 코로나19의 초기 집단 발병은 이미 종교적, 경제적, 성적 소수자로서 사회적 낙인을 받는 여러 소수자 집단에서 나타났다. 이로 인하여 이 집단과 그 구성원들
한갓 바이러스가 일상을 흐트러뜨렸다. 사람들 사이의 인연이 끊어지고, 어떤 풍경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딘가 비거나 망가진 듯한 느낌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막상 달라지고 나니 그런대로 익숙해지기도 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야 글렀고,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더 걸릴지 모른다. 강의실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고, 대학이라는 것의 존재 방식마저 바뀌고 있다.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벌어지고야 말 일이기는 했다. 학문의 위기라는 말은 식상하기 짝이 없으며, 온라인도 국제화도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흐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당연히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이지만, 사실 한 가지 더 주목받은 포인트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놀라운 선전이었다. 2020년을 경유하며 코로나19 대응실패와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 온갖 국정의 난맥상이 표출되었음에도, 트럼프는 무려 7,400여만 명의 유권자에게 재신임을 받았다. 이는 그의 재임 기간 미국 사회의 분열이 더욱 심화되었음을 보여준 것이자, 이후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한 셈이다. 지난 수십 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직 등 주요공직을 거친 조 바이든,
“1398년에 설립됐으면 아시아 최고의 역사를 가진 대학이군요!”2년 전 세계 3대 투자자로 유명한 싱가폴의 짐 로저스 씨 댁을 글로벌경영학과 학생들 10명과 방문했을 때에 그분이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말씀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의 역사가 한반도 안에서만 최고냐 아니냐는 것에 매달려 있었다. 역시 글로벌 투자자라 그런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범위를 넓혀 보니, 아시아에는 그 어떤 대학도 성균관보다 먼저 설립된 것이 없다. 물론, 누군가는 계속 “엄밀하게 말해서 유럽식의 대학조직체가 어쩌구 저쩌구” 할지 모
이번 학기에도 많은 학생들이 내 수업 을 수강신청 해주었다. 내가 이 수업을 교양과목으로 강의한 지도 십년은 된 듯하다. 처음 이 과목을 개설신청 할 때 강의명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는 것에 대한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최고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 강좌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닐까 해서였다. 상아탑 안에서 사랑은 왠지 유치하거나 사치스런 단어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망설이며 시작된 과목이지만 지금은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두루 만나는 내가 애정하는 수업이 되었다. 프랑스문학 전공수업에선 원서
캠퍼스에 봄기운이 따스하던 30년 전 어느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명륜캠퍼스의 교수회관 1층 식당에서 앞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시던 원로 교수님께서 한참 어린 교수였던 필자를 보며 말씀하셨다. “정말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그 때는 반세기에 걸쳐 지구를 반으로 나누었던 냉전의 벽이 속절없이 무너지던 격변의 시기였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더니, 1991년에는 공산주의 종주국 옛 소련이 붕괴했다. 그 여파는 한반도에도 거세게 닥쳐왔다. 뛰어난 경륜의 노교수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혼돈을 경험하던 터였다.어
올 2020년은 모든 학교 구성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1학기 개강을 목전에 두고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우리는 사상 초유의 개강 연기와 전면 비대면 수업을 경험하게 됐다. 2학기부터는 비록 일부 대면 수업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수업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멈춤, 그리고 언택트의 일상화는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교육의 많은 장면들을 급격하게 바꿔버렸다. 이번 비대면 수업 상황을 맞이하면서 교수자 입장에서 겪은 가장 큰 고민은 과연 비대면 환
안녕하세요? 우리 대학에 부임한지 벌써 세 해째인데 지면으로 여러분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네요. 첫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의외로 거의 없는 “성균”이라는 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학 홈페이지를 찾아보아도 1398년 한양의 “성균관”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로 시작할 뿐, 아쉽게도 “성균”이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이며, 왜 최고교육기관의 이름으로 채택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성균”의 최초의 의미는 “인간의 도덕적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가상의 실재(實在)는 어마어마하다. 그것으로 우리의 행위가 결정되고 규범이 형성된다. 이를 소위 문화라고 부른다.보드리야르는 이 가상의 실재를 제3의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이를 사물화라고 부른다. 사랑, 정의, 행복, 종교, 법률 이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피상적인 세계이지만,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가상의 실재이다. 이 가상의 실재가 우리의 행동, 물건을 사고파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할리우드와 MIT 미디어랩은 가상의
우리 대학 인문사회캠퍼스 후문과 자연과학캠퍼스 글로벌 광장 앞에는 'Unique Origi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슬로건은 성균관대가 다른 대학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성균관대는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을 계승하였다. 성균관은 고려의 국자감을 모체로 하고 있지만, 조선으로 왕조가 바뀐 후 수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139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그 터 위에 오늘날 성균관대가 서 있다. 올해 2020년은 성균관대학교
손오공이 이긴다. 적어도 마인 부우를 상대할 때의 손오공이라면 확실히 그렇다. 원펀맨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손오공처럼 태양계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 문장 (1)은 참으로 보인다:(1) 손오공은 원펀맨을 이긴다.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1)을 통해 정확히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강호동과 서장훈이 싸우면 강호동이 이긴다.”라는 주장과는 다른 차원의 주장이다. 앞의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하기 위해서, 우리는 강호동과 서장훈을 찾아가 실제로 싸움을 시켜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수업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 된다. 평소에는 다소 느슨했던 수업에 묘한 긴장감이 넘친다. 이전에 자주 결석했던 학생들도 자리를 지켜서 강의실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밤샘 시험공부를 했는지 몇몇 학생들의 눈가에는 다크 서클이 완연하다. 그럼에도 졸지 않고 기를 쓰며 수업을 경청한다. 제한된 시간 동안 답안지를 채우는 시험 시간은 그런 분위기의 절정에 해당한다. 고도의 긴장 속에서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만 팽팽해진 정적(靜寂)을 긁고 있다.한 학기 수업 내내 이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했다면, 아마 무엇을 이루
지난 1월 중국 우한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고, 얼마 후 사망자가 나타났을 때 그간 수없이 발생했지만 얼마 후 지나가 버린 바이러스 중 하나일 걸로 생각했다. 중국에서 급속하게 확산될 때, 긴장은 했지만 아직 ‘강 건너 불’일 뿐이었다. 그리고 곧 대구에서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하루에도 수백명씩 확진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공포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부와 의료진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으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제약기업에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돌물목이란 어떤 뜻이지? 초임 교수 시절 구입한 우리말 큰 사전을 찾아보았지만 단지 돌물이란 단어만 있을 뿐이다. 돌물이란 소용돌이치는 물의 흐름이라고 되어 있다. 목은 추석 대목이라든지 병목현상이라는 단어에 들어 있다. 후자의 의미로 본다면, 중요하고 좁은 곳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돌물목이란 물흐름이 거센 좁은 곳을 의미할 것이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면 청소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일 것이고, 이는 대학 시절에 해당할 것이다.내게는 어림잡아 40년이 넘을 것이다. 대학 4학년 1학기가 80년 봄이라 불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