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동안 2대째 자리 지켜“성대 옆에 오래오래 남고 싶다”휴일 저녁, ‘나누미 떡볶이’는 그릇에 가득 담긴 떡볶이를 나눠 먹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28년째 성대 옆에서 장사하고 있어요.” 떡볶이 그릇이 비워지면서 가게가 한산해지자, 지정인(45) 부사장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을 꺼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먹어서 몰랐는데 친구들이 팔아도 될 정도라 하더라고요.” 지금의 나누미 떡볶이는 지 씨의 어머니가 개발했고, 어머니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떡볶이 가게를 열었다. 어머니가 떡볶이를 맛있게 만들어서인지, 지 씨는 어렸을 때부
손님과 소통하는 작은 가게를 꿈꿔양질의 음식은 좋은 컨디션에서자과캠 쪽문 길을 따라 언덕을 쭉 오르면 조금은 한산한 골목에 자그마한 식당 하나가 보인다. ‘정성식탁’이라는 멋 부리지 않은 네 글자만이 적힌 간판이 눈에 띈다. 간판의 글귀를 닮은 내부 인테리어는 탁 트인 주방과 테이블 6개로 이루어져 깔끔한 인상을 준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적한 오후 3시, 잠시 식당 문을 닫고 재료를 손질하던 조희상(29) 사장을 만났다.그는 단순히 요리하는 것이 좋아 레스토랑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며 말문을 뗐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음
우연으로 시작한 가게,열정으로 이어가고파 우리 학교 인사캠 쪽문에서 내려오면 조금 으슥한 골목 한 쪽에 파란 지붕의 가게가 있다. 쪽문의 대표 맛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쇼타돈부리’다. 여느 때처럼 바쁜 하루가 끝난 오후 9시, 가게를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광철(35) 사장을 만났다.“다음 달이면 제가 이 가게를 맡은 지 딱 2년이에요.” 신 씨는 쪽문에서 ‘쇼타돈부리’를 오픈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분이 개업을 했는데 한 달 만에 그만두고 가게는 문을 닫았죠.” 당시 호주에서 요리를 배우고
집을 떠나서도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대밥상’. 깔끔하고 눈에 띄는 가게 이름과 잘 어울리는 식당을 방문했다. 자과캠 쪽문을 나서 바로 왼쪽으로 돌면 볼 수 있는 식당. 깨끗한 주방에서 바쁘게 손님을 맞고 있는 주인 김종례(56) 씨를 만났다. 학생들 항상 자식이라 생각해 새로 단장해 넓어진 식당, 더 많이 찾아주길 자과캠 쪽문, 약간은 외진 쪽을 바라보면 새 단장을 마친 깔끔한 식당, ‘성대밥상’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신축으로 깔끔하고 넓어진 식당 내부에는 손님을 맞을 자리와 함께 새로
유일무이한 라면 맛이 인기 비결학생들의 ‘추억의 장소’ 되길“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운명이죠.” 우리 학교 앞에 가게를 차리게 된 사연에 대한 질문에 이 씨가 들려준 대답이다. 이 씨에게 李라면은 중학생 시절부터 가져온 오랜 꿈이다. “워낙 라면을 좋아해서요. 라면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라면집을 차렸죠.” 이 씨는 장사를 하지 않을 때도 집에서 라면을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라면에 대한 남다른 애정 덕분일까. 李라면은 큰 성공을 거뒀다. SBS 예능 ‘생활의 달인’에 방영되기도 했고, 점심과 저녁 시간에는 손님들이 매일 한 시간씩
학우들이 많이 찾는 쪽문 근처 식당가에서 정문을 향해 더 걷다 보면 이탈리안 레스토랑 Casa 14-2가 보인다. 이곳에 들어가자 점심이 다 지난 시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주방에서 분주히 음식을 만드는 주인 황 씨가 보였다. 생소한 레스토랑 이름에 Casa 14-2가 무슨 뜻이냐 묻자 황 씨는 “Casa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집이라는 뜻이고 이곳 옛 번지가 14-2여서 Casa 14-2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집 같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은 황 씨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이름이었다. 원래 그는 한옥에서 유럽식 가정
남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행복이 더 커 “우리 애들 먹일 건데 다른 사람한테 못 맡겨요” 자과캠 쪽문 밖 수많은 체인점을 지나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듣기만 해도 포근한 이름의 ‘우리집’이 있다. 깔끔한 식당 내부에는 손질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파와 무가 곳곳에 자리 하고 있었다. “애들이 예뻐서. 내가 젊어지는 기분이 들거든.” 식당을 개업한 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든다는 박씨는 ‘우리집’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원래 조리업계에서 일했던 박 씨는 자녀들이 모두 분가하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인사캠 정문을 걸어 나와 왼쪽 골목으로 고개를 돌리자 ‘8과 1/2’이라는 동그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가 있는 지하로 내려가자 유난히 더웠던 날씨 때문인지 내부가 더욱 시원했다. 카페에서 한창 파스타를 요리하던 이 씨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를 어리둥절한 웃음으로 맞으며 자리로 안내했다. 주문한 커피 밀크셰이크를 내어주는 그에게 카페 이름의 뜻을 물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이름입니다. 한창 영화 공부를 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이 영화는 영화 공부할 때 정석처럼 여겨지는 영화예요. 자연스럽게 저도 좋아하게 되었죠.” 그는
“26살 때부터 식당을 했으니까 지금은 거의 30년 가까이 돼가죠.”사람들은 그를 보며 일에 타고난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30여 년 동안 매일 가게 문을 열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항상 밝은 빛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단골손님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해줄 때마다 힘이 돼요”라며 웃어 보였다.어쩌면 그의 미소는 가족의 덕일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의 곁에는 항상 가족이 있었다. 그가
“우리 차-암 오래 했다.” 똑 닮은 이 씨 자매는 우리 학교 길목에서 전골 전문 식당 ‘화전골’을 운영한 지 벌써 18년째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경미씨는 결혼하고 나서 ‘식당 사장님’으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자 원래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친언니 이경숙(61)씨와 함께 식당 운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화전골’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한 자리에서 18년씩이나 화전골을 운영할 줄 몰랐다. 원래는 2~4년 정도만 하다가 식당을 그만두고 옷 장사를 하고 싶었다. 몸이 고된 식당일보다는
D.C.T Bar는 2006년 7월에 영업을 시작해, 올해로 11년 차를 맞이했다. 목재로 지어진 가게는 안락하고 따스한 멋을 가지고 있다. 곧이어 벽에 붙어있는 영화 인물 스티커들과 우리나라에선 팔지 않는 외국 담뱃갑, 그리고 멋스럽게 진열된 애니메이션 피규어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세심하게 신경 쓴 가게 디자인은 아기자기하게 꾸미길 좋아하는 임 씨와 동업자의 취향 덕분이라고.임 씨는 군을 제대한 직후 이곳에서 막내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D.C.T Bar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밤밭-문화의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서에서
성균관로는 우리 학교 인사캠 정문에 닿는다. 이 길을 따라 7개의 문화사가 정렬해 있다. 등교할 때, 많은 학우가 셔틀버스를 타고 문화사들 앞을 지나간다. 점심 때 밥을 먹으러, 하교할 때 역을 향하여 많은 학우가 문화사들 앞을 지나간다. 문화사를 찾는 학우들도 있다. 7개의 문화사와 셔틀버스와 학우들이 거리에 들어찬 모습은 성균관로를 메우는 풍경 중 하나다.명륜 문화사는 성균관로 초입에 있다. 간판은 파란색이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자로 ‘명륜 문화사’라고 크게 적혀있다. 그 위에 작은 글자로 ‘고속복사/제본/출력/학위논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