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술에 취해 들떠있던 친구들도 사라지고 반짝이던 가게들도 하나둘씩 불을 끄는 시간, 자과캠 쪽문 거리 한 가게에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근원지는 건축모형재료점 ‘아키템’. 우리 학교 건축학도들의 마감 탓에 레이저커팅기가 밤새도록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키템은 우리 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김지민 동문이 운영하는 곳으로, 그 곳에선 많은 건축학도들이 자기 몸만 한 우드락을 들고 문을 나서고 있었다. ‘architecture’와 ‘item’을 합해 만든 이름 그대로 ‘건축모형제작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는
“낯이 익은 것 같네, 전에 여기 오지 않았어요?” 늦은 저녁,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는 사진기자를 보고는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두어 번 밖에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보셨냐고 묻자 그저 “거봐요, 맞죠?” 하며 미소를 짓는 이는 ‘천하제일 탕수육’(이하 천탕)의 주인 윤대호(43)씨다. 인사캠 쪽문을 5분 정도 걸어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노란색 천막의 작은 탕수육 가게. 어스름이 지는 저녁 무렵에야 불을 밝히고 포근한 미소로 맞아주는 이 가게가 바로 천탕이다. 인사캠 쪽문의 투박한 골목 안에는 소박함이
숱하게 투정부리던 엄마 밥도 집 떠나면 생각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조차 그런데 국경을 넘어 타지로 온 유학생은 오죽할까. 외국에서 살아본 한국인은 알 것이다. 낯선 냄새, 낯선 소리 속에서 ‘아리랑식당’이나 ‘태극식당’ 같은 한글 간판을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중국 본토 음식점 ‘저팔계식당’은 우리 학교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런 ‘아리랑식당’이다. 인사캠 쪽문에서 내려가다 보면 복스러운 돼지 캐릭터가 웃고 있는 빨간 간판의 저팔계식당이 보인다. 한글보다 한자 '猪八戒餐厅'이 더 크게 써 있다.
인사캠 쪽문 엘리베이터를 타고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눈에 띄는 새빨간 간판. 투박한 글씨체로 ‘피자봉’이라 쓰인 글자에서는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테이블 한 개만으로도 꽉 찰 만큼 비좁은 가게지만, 항상 호탕한 웃음소리로 가득 찬 곳이다. 주방에서 도우를 반죽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손님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주인 이근주(58)씨 덕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예외도 있나 보다. 2005년 4월 문을 연 ‘피자봉’은 오는 9일이면 정확히 10년째를 맞지만, 개업 후 변함없이 피자 하나로만 그 자리를 쭉 지켜왔다. 그러나 대학
세련된 도시여자. 그녀의 첫인상은 기대했던 푸근한 큰이모가 아니라, 깍쟁이 작은이모에 가까웠다. 숏 컷에 깔끔한 화장,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는 술집 이모보단 커리어 우먼을 연상시킨다. 예상치 못했던 첫인상에 대해 말해주자, “무슨 그런 말을 하냐, 짜샤!”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녀. 지난달 28일, 자과캠 쪽문 ‘통나무집’에서 영락없는 술집 이모 김영순(48) 씨를 만났다. 통나무집 그녀가 처음 이곳에 자리 잡은 건 지난 2008년 여름이었다. 일 욕심에 메이크업, 천연화장품 판매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던 그녀는, 7년 전 자과캠
“저희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카페 ‘떠나자 배낭여행’(이하 떠배)의 주인장인 장순민(40)씨가 팀플을 하러 온 김수현(사회 13) 학우와 전이주(행정 13) 학우를 반갑게 맞이한다. 시인 이상화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며 막막해하는 두 학우의 모습에 그는 서슴없이 카페 서재에 꽂혀 있던 김홍규 교수의 저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를 건넨다.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와 주인장의 친절함. 이에 이끌린 학우들은 공부하려고, 연인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이곳을 찾는다. 인사캠 정문 오른편, 좁은 골목길의 한 모퉁이를 돌면 3층짜리 건
일상에 치이고 주위 모든 것들에 지치는 순간이 있다. 외로움을 느껴 함께이길 갈망하면서도 옆자리의 누군가가 부담스러운 그런 날 찾게 되는 곳. 왁자지껄한 대명거리를 지나 우리 학교 정문을 향해 난 작은 골목을 걷다 보면 오묘한 빛을 풍기는 가게가 있다. 바로 ‘인생의 단맛’이다. 지난 3일 새벽 1시, 형형색색의 맛을 선보이는 하덕현(37)씨를 만났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단맛’은 텁텁한 삶에 단맛 한 모금을 채우기 위한 이들로 북적였다. 자리에 앉자 곧 온갖 특이한 칵테일 이름으로 가득 찬 메뉴판이 도착했다. ‘엔조
“오늘 한잔 어때?” “좋지! 이모한테 가서 오목 먹자!” 이모? 오목? 궁금증에 친구의 뒤를 따라가 본다.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 멈춰 선 술집의 간판이 예사롭지 않다. “이모! 여기 술 한 병 더 가져갈게요!” “아이고, 내일 1교시라며! 작작 좀 마셔, 인마!” 남학우 하나가 사장님을 스스럼없이 이모라 부른다. 그리고 이모는 술을 더 마시겠다는 손님을 격려하기는커녕 퉁명스럽게 다음날 그의 수업을 걱정해준다. 이 가게의 정체는 뭘까. 지난 25일, 세 자매가 운영하는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술을 주시나’(이하 마
자과캠 쪽문을 나와 천천히 걷다 보면 유난히 낡고 투박한 녹색 간판이 보인다. ‘은하 세탁’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를 슬쩍 들여다보면 세 평 남짓한 공간에 서서 힘껏 다리미질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바로 우리 학교 학우들의 단정한 옷차림을 책임지고 계신 은하 세탁소 양영길(63) 할아버지다. 28년간 변함없이 세탁소와 함께한 그의 인생에 귀 기울여 봤다.은하 세탁소는 1987년 처음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셋째 딸 은하의 이름을 따 은하 세탁소가 됐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본에 수출할 옷을 만드는 일을
“먹거리 고을을 가보지 않고 율전에서 술을 먹어봤다 하지 마라!” 자과캠 학우에게 먹거리 고을에 관해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자과캠 학우라면 술이 생각날 때 꼭 한 번은 찾는다는 그곳. 지난 3일 방문한 먹거리 고을은 여느 때처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 학교 학우들의 주머니 사정을 신경 써주는 이모, 홍진선(58) 씨를 만났다. 먹거리 고을을 찾은 시간은 오후 8시경. 다소 이른 시간 임에도 가게 안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빈자리가 생기길 기다리기를 한참, 가게가 조금 한산해진 틈을 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그녀와 이
“아버지가 성균관의 ‘성균’을 따 이름을 지으셔서 한자도 똑같아요.” 이름 때문일까, 2004년 군 제대 후 일자리를 찾던 그에게 우리 학교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가 문방사우에서 일한 지도 올해로 10년째, 문방사우의 전매특허인 ‘재밌는 문구’를 시작한 것은 2010년 봄부터다. 처음 우리 학교에 왔을 때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대학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가 생각한 대학은 ‘낭만’이었는데, 실상은 너무 삭막했다. 다들 공부에만 여념이 없고, 문구점에서는 펜과 노트 등 공부에 필요한 용품만 팔려나갔다. 아직도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푸짐하게 먹은 윤호는 목이 말랐다. “밥도 배부르게 먹었고, 뭔가 마시고 싶어. 생과일주스 마시러 하하파파 가자!” 윤호와 친구들은 방금 만든 신선한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삼성학술정보관(이하 삼도)에 간다. 9시 40분, 삼도가 닫자 그의 무리는 밖으로 나왔다. “야식으로 하하파파 컵닭? 내가 살게!” 자과캠 학우들의 후식과 야식을 책임지는 아저씨, ‘하하파파’의 김준학 씨(사진)를 만나봤다.하하파파는 김준학 씨의 두 자녀인 하율이와 하성이의 이름을 땄다. 말 그대로 두 아이의 아빠라는 의미도 있고, 항상 웃는
지난 1일. 인사캠 정문 근처의 한 서점이 21살 생일을 맞이했다. ‘불을 피우는 기구로 바람을 일으키는 일’이라는 이름처럼, 세상에 따뜻한 바람을 일게 하는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이다. 1985년 우리 학교 동문 자매가 세운 이 서점은 1993년, 지금의 풀무질 일꾼 은종복(50) 씨의 품으로 왔다. 서울대 앞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과 함께 서울 유일의 인문사회과학서점으로 남아있는 책방의 일꾼인 그를 만났다. 대학 시절 문학 소년이었던 그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졸업 후 신문 배달과 지역운동을 하던 그의 눈에 우연히
우리 학교 ‘자과캠 후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학우님의 피어오르는 ‘계란빵 식욕’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자과캠 후문에 들어서기 전 길목 입구에 위치한 ‘후문의 지배자’ 계란빵 노점. 계란 특유의 고소한 냄새는 노란 현수막과 어우러져 소리 없이 우리의 식욕을 자극한다. ‘음..?’하고 있는 참이면, 벌써 누군가 말을 꺼낸다. “계란빵 먹자!”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라 직접 부딪혀 만든 계란빵에는 나만의 자부심이 있어”우리 학교 자과캠 학우들에게 일명 ‘계란빵 아저씨’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최원영(65) 이다. “
하숙생 모두 공부하러 나가버린 점심시간, 텅 비어 조용한 하숙집을 찾았다. 하루 중 정오부터 3시간 남짓한 이 시간만이 김 할머니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시간이다. 김 할머니의 하루일과는 고시생과 흡사하다. 동도 트기 전인 새벽 5시에 일어나 20인분의 아침 식사 준비를 끝내면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그녀를 기다린다. 공부하느라 바쁜 학생들을 위해 직접 빨래와 청소를 하고 나면 오후 12시. 잠시 쉬었다가 오후 3시가 되면 장을 보고 다시 저녁준비에 들어간다. 늦게까지 저녁 먹는 학생들을 챙겨주고 정리하다 보면 매일 자정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