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은 다양한 장르와 역사를 포괄하는 음악이다. 그 안에서 여러 요소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현상 자체를 중시하는데, 월드뮤직의 가치는 바로 여기 있다. 한국에도 아일랜드 전통음악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가 있다. 하림이 바로 그다. 그는 프랑스 집시스윙 그룹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와 ‘하림과 집시의 테이블’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하림은 ‘하림과 집시의 테이블’ 공연에서 방랑 민족 ‘집시’를 테마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각국의 음악을 들려준다. 지난 20일 열린 하림과 집시의 테이블을 보고 자유로운 영혼
겉으로는 성(性)에 대해 점차 개방되고 있는 요즘 세대에게 ‘섹스’는 어색하지 않은 단어가 됐다. 그러나 사회 규범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보수적 사회규범이 불러일으킨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은밀한 ‘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시가 있다. ‘아마도 예술공간’은 ‘Art & Sex #1 Sex + Guilty Pleasure’을 통해 외면적으로는 개방적이나 내면적으로는 부조리에 갇힌 한국의 ‘성 문화’를 향해 도발적 작품을 선보인다. 이름만으로도 색다른 사람들의 개방적 공간, 이태원. 그 길목 한적한 귀퉁이에 ‘아마도 예술공
중후한 북소리와 잔잔하고 부드러운 선율, 그 속을 자유로이 나는 작은 나비의 섬세한 몸짓이 연극의 시작을 알린다. 창작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글 창제를 둘러싼 거대한 비밀을 조명한다. 한글 반포 568돌을 맞아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어린 시절, 유일한 피붙이인 고모 덕금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채윤은 이를 묵인한 세종에 원망을 품는다. 그리고 10년 뒤, 집현전 학사 정상수가 가슴에 단도가 꽂힌 채 우물 위로 떠오른다. 뒤이어 차례로 목숨을 잃어가는 집현전 학
1전시실: 광주 비엔날레, 그 파격적인 서막.어두운 입구, 빨갛게 물들어 타고 있는 창문만이 어두운 공간을 비추고 있다. 잭 골드스타인의 ‘불타는 창문’이 ‘터전을 불태우라’의 시작을 알린다. 붉게 일렁이는 창문에서 불타는 화염이 연상돼 어느새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어디선가 우렁찬 행진곡 소리가 들려오고 벽 사이로 번쩍이는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온다. 방 한 칸을 다 차지하고 있는 이 전시물은 에드워드 키엔홀츠와 낸시 레딘의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로 국가폭력에 대한 거침없는 폭로를 담았다. 하얀 말에 거꾸로 매달려 전진을 외치는
과학과 기술. 예술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단어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이 있다. ‘트로이카’는 그래픽, 사진, 엔지니어링 등 서로 다른 전공의 세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을 조율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예술가 그룹이다. 이들은 자연과 일상의 사소함에서 받은 영감을 기계장치를 통해 구현해 낸다. 수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현실의 이미지를 재창조하면서도 틀에 박힌 산물보다는 우연한 결과에 초점을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북적이는 광화문로를 지나 한적한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아기자기한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전시장을 들어서자 새하얀 유럽풍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수줍은 미소로 관객을 맞이한다. 머리 위에 하늘하늘한 양산을 들고 봄날의 정원에 서 있는 그녀는 함께 이곳을 산책해보지 않겠냐고 은밀히 말을 건넨다.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며 전시장 깊숙이 고개를 돌리자 여인이 살았던 시간이 펼쳐진다.태동하는 파리에서 찰나의 순간을 담다-인상주의 전시장 벽면에 나타난 19세기 파리의 영상. 당시 파리는 근대도시를 향해 태동하던 시기였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거리, 화려한 조각상이 장식된 건물들. 19세기 파리에 발을 내딛자 순간 주위는 파리 번화가로
무대에서 객석으로 울려 퍼지는 느리고 익숙한 가야금 선율. 그 안의 한국적 정서가 서서히 객석으로 스며든다. 바로 ‘퓨전국악’의 형식 안에 ‘한국인의 서정’을 담은 음악 그룹 ‘공명’의 콘서트 ‘통해야’다. 백발의 외국 노인은 맑고 신비한 가야금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빠름과 느림을 반복하는 이 곡은 ‘달의 여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달아달아’라는 전래동요를 25현 가야금으로 편곡해 재구성한 곡이다. 청아한 울림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자 도착한 곳은 대자연의 한 복판. 맑고도 은근한 우리 고유의 정서에 취할 무렵 어렸을 적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 보면 ‘성형외과’라는 빨간색 간판이 붙어있는 어두운 공간이 나타난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곳이 전위예술가 김구림의 ‘사라진 아름다움’이 전시되고 있는 ‘플레이스 막’이다.더운 날씨와 다르게 차갑고 음산한 공기가 감싼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이 생긴 눈, 코, 입, 귀가 포장돼 열 맞춰 진열장에 놓여있다. 도톰한 입술, 오뚝한 코와 쌍꺼풀 진 큰 눈은 8등신 서양미인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 옆에는 방금 수술을 마친 듯 수술도구가 널려 있고, 닫혀있는 수술 통을 열면 진열장에서 봤던 눈 코 입이 가
‘아, 두리반... 두리반 두리반 두리반 두리반’ 한 남자가 굴삭기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두리반 건너편에 앉아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식당 이곳저곳이 붕괴할 때마다 그의 노래는 점점 탄식으로 변해간다. 정 감독은 두리반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 두리반 주인장인 유채림 소설가와 그의 아내 안종녀 씨가 막 길거리로 쫓겨났을 때 즈음 우연히 신문에서 유 소설가의 글을 보게 됐다. “ ‘아내의 눈물 두리반’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어요. 두리반은 그가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그리고 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우물이었는데 이를 철거업체에 뺏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의 7번째 프로젝트 ‘검열(Censorship)’ 영상전이 열리고 있는 대안공간 루프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침한 조명 아래 20여 점의 작품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관객을 반긴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공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에는 인도 작가 날리니 말리니의 ‘In Search of Vanished Blood’가 상영 되고 있다. 재갈을 물리고 성폭행을 당한 영상 속 여성은 흰 옷을 입고 그녀의 순결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힌두교’라는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 굴복해 결국
초여름,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늦은 6시. 퇴근 인파로 북적이는 사당역 주변. 이 때, 우산을 받쳐 든 양복 입은 중년 신사의 이목구비가 과감히 삭제된다. 깊게 팬 미간의 주름, 콧잔등에 튀긴 빗방울, 와이셔츠 소매의 구김도 함께 사라진다. 남은 것은 단순화된 몸의 형태 묘사와 이를 둘러싼 검정 테두리, 그리고 그 안을 꽉 채운 선명한 색채뿐. 줄리안 오피의 ‘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이다. 줄리안 오피는 인물의 정체성이 최소한으로 남을 때까지 형태를 단순화시킨다. 인물을 둘러싸고 있던 화려
“예술하고 싶어요.”말하는 청춘에게 “어떻게 먹고 살려 그러니”라는 답이 돌아오는 게 요즘 한국 사회다. 이 현실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예술’하고 있을까. 전에서 이 질문에 대한 네 작가의 각기 다른 해답을 들어 본다. 본업과 부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청춘 예술가. 안데스 작가와 권용주 작가와 함께 예술 하는 청년의 ‘진짜’ 리얼리티를 들어보자.투명한 유리문 너머 보이는 거대한 실루엣. 문이 열리자 들리는 요란한 전기톱소리. 천장에 닿을 듯 쌓인 옷더미는 마치 고물상을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