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감성적인 글보다 분석적인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성대신문 면접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감성적인 글보다 분석적인 글을 더 잘 쓴다고 생각했기에 기사를 쓰는 것도 비교적 수월할 줄 알았다. 이런 생각에 갇혀 서점에 가도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감성 에세이’는 나와 결이 맞지 않으리라 여기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나의 오만이었다. 내 오만은 편자주의 존재로 깨졌다. 편자주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어 나 홀로 편자주 없는 수습 기사를 작성했으며, 기획회의에 낼 문건도 편자주가 없는 상태로 제출했다. 불현 듯 편
수습일기를 써야 하니까 다른 분들 것들을 좀 읽어봤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다 있어서 할 말이 없어졌다... 아마 고등학생 때의 나에게 이런 글을 쓰라고 하면 하고 싶은 말로 한 페이지는 금방 썼겠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은 평소에도 별생각이 없는 것 같다. 좌우명을 ‘기대하지 않기’라고 정해서 재원이가 웃었지만, 이 말은 어떤 상황에도 쓸 수 있어서 좋다. 안 좋은 결과가 있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나를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에도 신문사에 들어와 배울 것이라 예상했던 것들보다는 그 외
다른 친구들이 쓰는 블로그나 간단한 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왜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좋으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이 쓴 글들을 읽으면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 우리는 평소에 많은 대화를 하지만 거기서 드러나지 않는 각자의 생각들이 직접 쓴 글에는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렇기에 나는 글의 힘을 실감한다. 그리고 신문과 기사, 기자의 펜 끝에 매달린 의미들을 생각한다. 나아가 글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를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뷰파인더 속에 담긴 시선에도 나
언론인이 되고싶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나의 언론인이라는 꿈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다. 멀리서 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가까이 다가서 잡으려 하면 어느새 저 멀리서 반짝반짝 흩날리고 있다.성대신문은 나의 깃털이 멀리 도망갈 것을 알면서도 지원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언론인이 너무 되고 싶어서, 날 깃털로 인도할 나의 바람이 되어주길 바랐다. 생각보다 치열한 경쟁률에 기대를 놓고 있었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동경해왔던 단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성대신문의 다양한
모든 글에는 글쓴이의 성격이 드러난다. 내 글에는 섬세함이 없다. 다소 뭉뚱그려져 있고 기사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내 성격과 맞닿은 부분이라 이 글을 쓰면서도 부끄러워진다. 글을 통해서 나 자신을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또 새삼스레 나를 알아간다.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신문사 기획 회의를 통해서다. 신문사 모두가 참여하여 내 문건에 피드백 주는 시간 동안 내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사람들의 시각이 얼마나 다양한지, 반성과 감탄이 동시에 절로 나온다. 전공수업에서 경험해 본 팀플 때문에,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건 아마도 초등학생 때일 것 같다. 일기는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을 기록하는 것인데, 짧은 단어조차 기록하지 않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온 것 같았다. 대학교 3학년, 흔히 말하는 ‘취준’을 하며, 현질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23년이라는 짧지만 바쁘게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성대신문은 관찰자로서 세상과 학교를 기록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들어오게 됐다. 합격 후 수습기자 트레이닝이라는 형식의 일기를 쓰며 2022년 봄 학기를 보냈다. 준정기자가 된 지금, 제출했던
방의 가구 배치를 바꾸던 중이었다. 침대를 건드릴 때마다 수상할 정도로 먼지가 심하게 날렸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매트리스를 들어내 보니 시트 아랫부분이 온통 까진 채였다. 품질 탓인지 열에 녹았던 건지 잘게 부서진 얇고 흰 껍질들이 눈처럼 휘날렸다. 눈앞이 아득했다. 시트를 통째로 말아서 버리고 그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돌돌이를 굴리고 청소기로 빨아들여도 자꾸만 어디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조각들이 나풀댔다. 한 시간 남짓을 붙잡고 낑낑댔을 때에야 상황이 대충 갈무리됐다. 더는 쳐다보기도 싫어서 이만 새 시트를 덮으려고 했다. 어
도전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두렵고 회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 때문에 항상 새로운 도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며 지레 겁을 먹곤 했다.성대신문에 지원하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그런데도 지원을 결심한 이유는 나에게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끝난 1학년을 되돌아보자 1년 동안 나는 무얼 했나? 하는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나름 학업에 열중했다고 생각했지만, 대학교 4년이 강의와 과제로만 기억에 남고 싶진 않았다. 3학기 개강을 앞두고 새로운 활동
기자가 멋져 보여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첫인상이 깨졌다. 이제 글쓰기의 민낯을 본다.유하고 부드러워 보였던 것과 달리 글을 쓰는 일은 거칠고 험궂다. 완성된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치고. 기사를 쓰는 일은 생각했던 것 보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동시에 그러한 점이 글을 쓰는 일을 고귀하고 정성 어리게 만든다.글쓰기의 민낯은 나의 민낯도 드러낸다. 글은 얼버무리지 않기에 나의 부끄러움을 낱낱이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만남이 그렇듯이 좋은 첫인상이 있었기에 결단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글 쓰는 일이 해볼 만한
글은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었다. 내게 글은 처음부터 주어져있다기보다는 끊임없는 구애의 대상이었다. 활자가 좋았다. 더 정확히는 그 안의 세계가 좋았다. 그렇게 매일 책을 읽던 어린이는 키보드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머릿속에 상상하기만 했던 것들이 구체화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매일매일 하교 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썼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넘쳐났다. 결코 고갈되는 법이 없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던 어린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시험이 끝난 후에 몰아서 쓸 글을 기대하며 시험공부를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글을 썼다. 자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글을 쓰기 좋아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였다. 10년전 2012년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단지 몇 백원 받으려고 가족 신문을 멋도 모르고 만들었었다. 그때 신문 이름이 ‘동현 신문’이었다. 동현의 뜻은 아이 동(童)에 내 이름인 어질 현(賢)이다. 어린 내가 어질게 쓰는 신문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세상의 일을 알리는 기자라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었다.글의 힘은 위대하다. 슬픔, 아픔, 행복함, 즐거움과 같은 감정을 담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 하는 표현과 행동으로 하는 감정의 전달과는
성대신문에 지원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PD를 꿈꿨기에 글쓰기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어쩌면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기에 트레이닝 과정이 나에게 더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초반 트레이닝 과정이었던 지면 평가 땐 그저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이 신기했었다. ‘나는 찾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트레이닝 후반부가 되어 부서별로 문건을 발표할 때는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나는 최 씨여서 늘 마지막으로 문건을 발표했는데, 앞의 기자님들이 발표하는 걸 듣고 있으면 내 문건은 너무 초라하게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