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무작정 수동필름카메라의 레버를 돌리고 급하게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타일렀다. “필름카메라는 신중하게 아껴서 찍는 거야” 나는 삐죽거리며 뭘 또 아껴야 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여러 번 찍으러 다녀보고 말뜻을 이해했다. 정성, 시간, 돈, 이 세 가지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필름을 주문하고 사진관에 직접 필름을 맡기러 가는 정성. 필름이 현상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필름 값과 현상 비용.정성과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필름 사진을 찍는 이유는, 특유의 감성 때문이다. 수동
“이거 마셔봐” 일하고 있는 수제맥주 펍의 사장님께서 처음 보는 맥주를 한 잔 건네주셨다. 와인과 닮은 검붉은 빛은 어서 마셔보라며 손짓하는 듯 했고, 시큼한 체리의 향은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들었다. 오묘한 빛깔의 액체를 한 모금 넘겼더니 새콤달콤한 신 맛과 쿰쿰하면서도 깔끔한 풍미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맥주와는 완전히 달랐다. 감격스러웠다. 그 한잔을 아껴 마시며 맥주의 이름인 몽스 카페(Monk’s Cafe)를 계속해서 되뇌었다.몽스 카페는 시큼함이 특징인 사워 비어(Sour Beer) 중에서 플랜더스 레드 에일(F
‘네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 사회는 그런 곳이 아니야.’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 직장인들은 직장에 적응한다. 직장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 회사의 분위기를 익히고 업무를 배우는 것을 말한다. 때로는 직장 내 부정한 모습도 분위기를 보며 함께 맞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나의 목소리를 잊어버리고 조직의 목소리에 하나가 된다. 국민과 소통해야 하는 정당,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할 언론마저 이렇다면 민주주의에도 큰 위기가 올 것이다. ICT의 발전으로 뉴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했다. 유튜브를 통한 개인방송은 민주주의의
학교를 다니다 보면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많다. 점심시간 식당 발권기 앞에서, 혜화역 셔틀버스 정류장 앞에서 그리고 행정실 앞에서도 우리는 기다린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는 때가 있다. 바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이다. 일부 과제 도서와 핫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책이 서가에 꽂혀있다. 지금까지 300여 권 정도 책을 빌리며(대부분 들으면 아는 책들이다) 기다려본 적은 손에 꼽는다. 학생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성대신문 기사에 의하면 학부생 대출 권수는 2008년 이래 10년간 꾸준히 감소해왔다.왜 그런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이 이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이들은 임시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며, 김구, 이봉창, 윤봉길과 동일한 곳에 묘가 안치되어 있을 만큼 우리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에서는 이들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교과서의 지식만 학습하며, 실제 역사의식은 그리 높지 않다. 이에 따라 우리는 본교 인성교육센터 주관의 돈의 활동을 통해 제한적인 교육과정 이외의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고 역사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자 했다. 활동의 일환으로
“안전지대를 벗어나 모험을 해봐. 그에 대한 보상은 분명 가치 있을 거야” 남미 배낭여행을 검색하면 가장 처음으로 뜨는 치안 문제. 사실은 떠나기 전날 밤에도 갑자기 두려움이 불쑥 솟아나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여행을 출발했다. 단지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녀온 남미여행은 또 한 번 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었고, 꼭 다시 갈 것이다.남미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써서 나는 손짓과 발짓으로 주로 소통을 했다. 쿠바에서 같이 살사를 추자며 손 내밀던 쿠바노, 자신이 한국어를 배웠다
남들이 별 하잘 것 없이 여기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라 비웃을까봐 잘 고백하지는 않지만, 나는 밤거리를 산책하는 것이 꽤 취미이다. 혜화동 로터리 언저리에 자리한 고 몇 평짜리 안락한 내 보금자리를 슬며시 기어나와서, 제각각의 작은 간판들을 단 술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대로변을 따라 밤거리를 걷는 것이다. 커널형도 이어팁도 없는 에어팟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자동차 소리도 용인하면서, 대부분은 짝을 지어 약속이라도 한 듯 바싹 붙어 걷는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대학로를 따라 걷는다. 그러나 나는 이리도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
나는 평소 스릴러 영화와 액션 영화를 즐겨본다. 스릴러와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평소에 느낄 수 없는 그 긴장감과 안전한 공간에서 오는 공포감을 맛보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커다란 재미와 긴장감을 주는 영화 하나를 추천하고 싶다. 바로 2013년도에 나온 마크 포스터 감독의 ‘월드워Z’란 제목의 영화이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소재는 바로 좀비들이다. 제목의 뜻 그대로 좀비들과의 전쟁을 다룬 영화이다. ‘월드워Z’의 스토리, 음향효과, 스케일 등을 하나하나 찬찬히 소개
그러니까 밤바다는 좀 무서운 구석이 있다-, 이거다. 한 번 상상해보라. 으슥한 밤, 이곳은 늦여름의 어느 섬. 당신은 오른편에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아무리 힘차게 걸어도 발소리는 나지 않는다. 파도는 일정한 숨을 내뱉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육지고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만 하늘과 바다. 둥근 지구를 굴릴 때마다 발목을 파고드는 모래는 서늘하다.바다는 지구가 가진 것 중 가장 기묘한 매력을 지녔다. 한낮이면 볕을 제 몸으로 감싸며 눈부시게 하얀빛을 낸다. 에메랄드나 사파이어, 온갖 푸른 보석을 담
여름방학 끝 무렵, 20명 정도의 학우들과 볼음도로 농민학생연대활동을 다녀왔다. 농활을 간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은 할머니나 도와드리라고 하셨고, 친구들은 돈 받고 일하는 것인지 아니면 봉사활동인지를 질문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받고 가는 것도, 농촌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닌 농민 학생 ‘연대’ 활동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농촌과의 연대가 무엇인지 볼음도로 향하는 배를 타는 그 순간까지도 고민이 되었다. ‘농민들과는 어떻게 소통해야하며, 과연 그들도 우리와의 연대를 원할까?’하지만 생명체가 공존하고 사방이 밭인 이곳에서 생태
나는 경상도 토박이였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년을 살고, 이후에는 16년 동안 한 번도 경상남도 창원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서울에서 생활한지도 어느새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서울은 내게 꿈의 도시였다. 나에게 창원은 너무나 작은 세상이었고, 그래서 하루빨리 서울이라는 큰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고등학교 3년의 시간도 ‘인 서울’ 하나만 바라보며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인 서울 대학에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이 개봉한 4월 24일, 영화 개봉 첫날임에도 불구하고(심지어 시험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이미 ‘엔드게임’에 대한 뜨거운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찍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오로지 ‘엔드게임’만을 위해서 SNS을 끊고, 공공장소에서까지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들은 절경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마블 스튜디오가 선보인 22편의 작품과 11년의 세월은 전 세계의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