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이 있다. 김종구 작가의 ‘잃어버린 것, 서 있는 사람’이다. 손발이 깨지고 뼈대마저 다 드러난 데다 색까지 바래버린 훼손된 여인상. 바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지나온 삶이다. ‘누락된 기록’ 프로젝트는 위안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파편화된 여성의 삶과 이를 바라보는 현재 시점의 기억을 △설치 △영상 △조각 △회화 등의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조명한다. 발걸음을 옮겨 김지호 작가의 ‘Mirror-CCTV (기억과 기록)’를 만난다. 고장 난 감시용 CCTV와 몇 개의 손거울이 서로를 마주보고
영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 헨리 무어가 졸업한 왕립미술학교 출신의 미술강사 라이언. 그는 어느 날 애싱턴 광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미술 감상수업을 부탁받고 강의를 하게 된다. 열심히 준비해간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 슬라이드를 자신 있게 펼쳐 보이자 시끄럽던 교실은 일순간 조용해진다. 이 때 침묵을 깨는 한마디, “대체 르네상스가 뭔가요?” 10살 때부터 광부 일을 하면서 그 흔한 그림조차 단 한 번 본적 없는 광부들에게 처음 마주한 예술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대체 왜 그림을 그리는 건지,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넌 언뜻 보기에 아무개를 닮았어’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아무개를 예컨대 원빈이라고 해보자. 분명히 당신이 원빈을 닮았을 일은 없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당신이 ‘원빈을 닮은 시점’을 캐치해낸 것이다. 조르주 루스 작품의 핵심은 바로 그 ‘시점’에 있다.
진실 혹은 거짓?우리는 수많은 진실과 거짓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를 판별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과연 진실을 올바르게 판별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정말로 진실이 맞는가. 김홍석 작가는 '좋은 노동 나쁜 미술'전에서 평범한 작품 전시를 거부하고, 작품과 도슨트의 설명이 어우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본 적 있는가? 포트폴리오는 딱딱한 형식의 자기소개서와는 다르다. 포트폴리오에 정해진 형식은 없다. 다시 말하면 포트폴리오는 현대 경쟁사회에서 자신을 가장 창의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다. 이런 포트폴리오와 예술가들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종로구 안국동의 사비나 미술관에서
밤이 빠른 초겨울에 찾아간 대림미술관은 고요한 광채에 휩싸여 있었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은 어두운 방에 쏟아지는 흰 빛으로 마치 겨울밤을 연상시켰다.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 제품을 제작하는 회사다.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브랜드에 초점을 맞춘 스와로브스키라는 전시회를 진행한다는 데에 고개를 갸우뚱할
연극 에는 ‘외모바이러스’라는 병이 등장한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극심한 콤플렉스를 느낄 때 발작을 일으키는 무서운 병이다. 이에 못생긴 여고생 박장미는 자신도 외모바이러스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한다. 그러던 중 장미는 커다란 가위로 이를 치료하는 미남 이발사 김삼봉을 우연히 만난다. 이 연극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
“철컥철컥” 칠흑같이 암전된 무대 위에서 거칠게 현관문 따는 소리만 들려온다. 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희미한 조명이 문고리를 비추자 객석에 앉은 이들은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다. 문이 왈칵 열리고 도둑이 씩씩대며 들어온다. “야. 이 멍청한 계집애야. 문을 안 잠갔으면, 안 잠갔다고 얘길 하던가!” 집주인 유화이는
지금 누군가가 당신의 입을 막는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을까? 박정희 정권 그때 그 시절에는 검열이란 억압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연극 는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심정을 현대인의 마음속에 아로새긴다.연극은 군대를 연상시키는 초록 그물로 둘러싸여있었다. 어눌하게 혼
. 실험음악의 선구자 존 케이지의 작품인 이 곡은 ‘휴식(TACET)’이라는 악상만이 연주되는 소리 없는 연주곡이다. 느지막한 오후에 찾은 백남준아트센터는 가 흐르는 듯 한가롭고도 조용했다. 그러나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자 고요함은 자취를 감추고 관람객들은 수많은 소리에 사로잡힌다. 전시
군대.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동시에 낯선 단어다. 누군가의 아들이며 친구, 애인이었던 젊은 남자가 삐죽삐죽한 머리의 군인으로 변신하는 것은 일상적일 만큼 흔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아를 벗고 군대라는 ‘집단’의 자아를 입어야 하는 군인이 뿜어내는 혼란스러움은 끊임없이 군대를 낯선 곳으로
오후 여섯시의 약속다방. 오늘도 역시 손님은 없다. 사장은 만화책에 코를 박은 지 오래. 다방 레지 양희는 애꿎은 사연 신청 종이로 학을 접는다. 디제이 박스 안에서 빈둥대던 필석은 다방 안으로 들어서는 여자를 보며 헛것인가, 눈을 꿈쩍인다. 그녀가 또렷한 사투리로 묻는다. “장사하는 거, 맞지예?”합천 출신 시골 처녀 스물여섯 살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