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코딱지를 파는 제 모습이지요’맞다. 웅크리고 있는 한 사람의 손은 코를 향해 있다. 하지만 검정과 흰색의 뚜렷한 대비, 그리고 불안한 듯 거친 붓질에 아무렇게나 흩뿌린 검정 물감. 누가 봐도 우울한 심상을 드러냈고, 작가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말은 그림을 그릴 당시에 ‘얼마나 슬펐는지’였다. 그런데 작품을 하나하나 들추며 설명해 주는 그의 입에선 ‘소년 김동기’의 유치해서 순수한 추억이 쏟아져나왔다. 그림엔 백합을 사랑했던 소년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백합 알뿌리가 심어져 있는 흙바닥에 바짝 기대 무언가를
아직 싹이 움트기도 전인 이른 봄이지만 캠퍼스에는 활기찬 기운이 넘실댄다. 봄의 기운과 함께 피어오르는 봄 내음은 겨울바람에 움츠러들었던 소소한 봄의 기억들을 흔들어 깨운다. 잘 마른 빨래에서 느껴지는 노릇노릇한 냄새 속 성큼 다가오는 봄 햇살, 흙을 촉촉히 적신 봄비의 풋풋한 냄새 등은 개강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우리들에게 편안한 위로를 건네준다. ‘봄에는 만물의 냄새가 궁금해진다’던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씨의 말처럼 일일이 나열하자면 벅찬 봄내음들이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다.후각과 기억의 앙상블 프루스트 현상&hel
내 고장 경기도 의정부에서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가 파한 뒤 날씨 좋은 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갈라치면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의정부 시내를 친구들과 꼭 한 번 들르곤 했다. 시내는 물론 서울보다야 덜하지만 어린 나에겐 우리 집이 있는 금오동처럼 주거지가 밀집한 의정부 다른 동네보다 볼 것도 많고 놀 곳도 많은, 별천지같은 곳이었다. 팬시점이나 옷집을 찾아다니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거리를 배회하다보면 시내와 얽혀있는 재래시장 길을 거쳐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잘 정비되지 않은 바닥에 고인
단원 김홍도가 현대에 다시 살아돌아오면 무엇을 소재로 한국화를 그릴까? 젊은 한국화가 손동현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색적인 작업을 해 왔다. 서른의 나이도 채 안된 화가는 왕성한 창작력으로 이번 ‘KING’展을 포함해 벌써 세 번째 개인전을 맞는다. 작가는 이전 전시들에서부터 누런 장지 위에 슈렉, 슈퍼맨 등 다분히 현대적인 소재를 올려왔다. 충, 효 등의 한자가 엄숙히 자리를 틀었던 전통 문자도의 형식을 빌어 나이키, 스타벅스 등의 브랜드를 새기는 작업도 그 뒤를 이었다.이번 전시회에서 그가 택한 소재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