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아직 찾아오지 않은 봄을 애써 흉내 내는 혜화의 쌉쌀한 공기를 마시며 했던 첫 등교가 아득하다.덜컹거리는 셔틀과 아찔한 오르막은 습하고 쓸쓸한 공기를 보낸 것에 비례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그 익숙함이 권태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의문이 들 때쯤에 서둘러 군대에 갔다. 그저 스물하나 였던 그때는 세상을 괴롭히던 역병에 맞서 뭐라도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그렇게 일 년뿐이던 익숙함에서 벗어나 또 다른 계절을 보내며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정말이지 많이 사유(思惟)했다.강원도 원주 하늘에 박힌 별들을
전역 후 약 9개월의 시간 동안 퇴보는 있을지언정 발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춘 것 같다는 핑계로 나 자신 또한 멈춰있어도 된다고 합리화하며, 매일같이 해가 밝는 것을 보며 잠이 들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는 부모님의 도어락 소리에 잠이 깼다. 눈 뜨자마자 어둑해져 가는 하늘이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한심한 삶의 밝기와 동일시되어 갈 때쯤, 더 밝아지기 위한 무언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내가 다시 빛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진심으로 열망하는 무언가를 말
내일 내 동기들이 졸업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대로 이런 날이 올 때도 됐지 싶다. 사실 나 자신도 이제 후자의 생각에 많이 가까워진 것 같다. 축하 꽃다발을 예약하는 것도, 차려입고 오라는 참 어려운 부탁에 옷을 뒤적이는 것도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 익숙하다. 마치 누군가의 졸업식을 여러 번 가본 것처럼.스물, 스물하나라는 어린 나이에 만나 스물넷,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졸업을 하다니, 내가 그들의 졸업에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괜히 뿌듯하다. 음 잠깐 생각해보니 해준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국어국문학과면 글 잘 쓰겠네?”학과 소개를 하고 나면 꼭 듣는 한 마디였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항상 있었지만, 많이 써본 적도, 원하는 만큼 잘 써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두려움이기도 했다.그래서인지, 나에게 글은 항상 ‘언젠가는 차근차근 풀어나가야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기자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여러 경험 끝에 직업으로는 나와 맡지 않겠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보사라는 곳에 들어오게 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글을 구성해내는 기사의 매력을 느껴서였다.기사
성대신문 일러스트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보사 활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친구의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기자 지원까지 하는 선택은 정말이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곧 4학년을 바라보는 입장으로서 3학기를 무조건 채워야 하는 단체에 지원한 것은 휴학을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면접 때문에 떨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합격 후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글기사는 안 쓴다고 해서 지원했지만, 스스로 뉴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즐거울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원래 sbs나 kbs 등에서 따로 독립 채널을
대학에 입학한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그 말은 성대신문에의 지원을 2년 가까이 고민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성대신문은 오랜 시간 지원을 고민하다 글 쓰는 데에 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려놓은 지 오랜 낭만이었다.나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젊은 세대처럼 지면의 글씨보다는 화면의 영상이 더 익숙하고 즐거웠다. 장기화된 바이러스로 방 안에서 즐기는 각종 영상 매체들과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웠던 어느 날, 성대신문 뉴미디어부 모집공고를 보았다. 미처 다 내려놓지 못한 미련이 에브리타임의 성대신문 게시판을 즐겨찾기에서 해제하지 못하고
항상 막연하게 방송, 언론, 미디어 매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너무 오래된 꿈이었던 지라 왜, 언제부터 이 꿈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다 남들보다 긴 수험 생활을 겪으며 입시에 지쳐 잠시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 대학에 입학한 후, 다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어린 시절 내가 꿈 꿔왔던 그 분야가 가장 내 심장을 뛰게 한다는 사실이었다.그 후, 이제는
용의 꼬리가 되고 싶어, 뱀의 머리가 되고 싶어?막 13살이 된 겨울에 캠프에서 만난 여자애의 물음에 참 이상한 걸 생각한다 싶었다.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보다는, 공을 멀리 차서 친구들의 환호를 듣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좋았다. 그 애를 지금 다시 만난다면, 묻고 싶다. 뱀의 머리가 용의 꼬리보다 낫다고 알려주는 속담 책에게도 묻고 싶다. 뱀은 용의 존재를 알까. 안다면, 뱀의 머리에서 안주할 수 있을까.성대신문은 내게 용의 꼬리였다. 다만 조건이 있다. 다시 뱀으로 돌아갈 수 없다. 3학기 의무 활동은 내게 그렇게 들렸다. 한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 중 하나였던 학보사에 들어갔다. 편집부로 2년간 일했고, 애정을 가지고 학보를 제작했다. 하지만 기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대신문에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성균관대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대신문 모집 글도 보았지만, 더는 학보사에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익숙하고 궁금해서 관심은 갔지만, 전공으로 택했던 ‘영상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지원하지 않았다.그러다 작년 10월, 성대신문 뉴미디어부의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새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초반까지만 해도 학보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내 진로와는 딱히 연관성이 없을 것 같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해서 관심 있는 특정 분야와 관련된 활동만 하면서 이유 모를 부족함을 계속 느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무언가 허기 진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게 된 성대신문 뉴미디어부 모집 글이 나의 알 수 없는 허기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글을 쓰는 일은 어떤 방면에서든 미래의
믿는 구석은 없지만 스스로를 믿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어제 생각한 건데, 기사 쓰기 전 눈 시릴 때까지 남의 글을 살피는 습관이 생길 것 같아요아직도 저는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무겁습니다밤을 쪼개어 쓴 글들이, 진심 어린 말들이 당신께 어떤 형태로 닿게 될까요이왕이면 모르는 상태가 좋습니다정확하게 말하면 ‘모르겠는’ 상태입니다알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잘은 몰라서 괴로운 순간. 머리 아픈 느낌아는 것 없어 겸손할 수 있고 모르니 궁금한 게 많아 힘이 나서요자주 ‘모르겠고’ 싶으며모르기에 쓰고 싶습니다현실들은 제 눈
지난 학기 마지막 1688호, 사회부 지면 0.5p가 남아 ‘스토킹처벌법’이라는 주제로 내가 덜컥 지면 기사를 쓰게 되었다. 원래는 웹기사로만 쓸 예정이었으나 남은 지면을 채우기에 내 소재가 적절하고 시의성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말고사가 점차 다가오는데 기사를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긴 했지만, 어차피 써야 했을 기사를 더 빨리 마무리해버린다는 점에서 안심이기도 했다. 문제는 ‘기성 기사를 반복하는 수준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지? 내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지?’ 였다. 스토킹처벌법은 시행 초기에 관심이 뜨거웠지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