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하다 보면 지면 공간의 제약으로 혹은 정제된 언어로 풀기 힘들어 기사에 담기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다. 기사 너머 오직 기자에게만 기억되는 이야기들에 종종 아쉬움을 느꼈다.지난 11일에 기사 취재를 위해 자과캠 정보통신팀을 방문했다. 30분간의 인터뷰에서 정보통신팀은 준비한 질문들에 꼼꼼히 답변해주셨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후 녹음기를 끄자 정보통신팀은 조심스럽게 “저희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어서 그런데...”라며 입을 여셨다. 이후 정보통신팀은 우리에게 수강신청에 어려움은 없는지, 개선했으면 하는 것들이 있는
신문사에 처음 들어와 첫 기사로 지면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적잖게 당황했다. 성대신문에는 나의 이야기나 문장이라고 할만한 흔적을 하나도 남길 수 없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기사의 형식을 띤 글은 결코 나의 글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당시에 나는 지면에 내 이야기를 쓸 기회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기도 했다.작년 수습기자 시절 작성한 나의 좌우명은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내일을 마주할 의지를'이다. 막상 성대신문사 일을 시작하고 보니 '용기'와 '의지' 정도로는
첫 방중 활동 때 소재를 찾으면서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천문학, 도시계획학을 넘어 평생 그 존재조차 몰랐던 학문까지 소재로 거론될 때, 고고학이 아이디어로 등장했다. 예전 기사와 소재가 겹치는지 확인하려 성대신문 페이지에 고고학을 검색하자 ‘수중 고고학’이 등장했다. 상상도 못한 소재가 등장하면서 주변 사람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 기사는 마치 “어지간한 소재는 이미 다 썼으니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듯했다. 그 엄포가 너무 단호하게 들린 나머지 나도 웃음이 나왔다.이번 기사로 이제 나도 4개의 소재를 후대 성대신문
“그냥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성대신문에 지원했다고 들었다. 성대신문사에서 활동하며 어떻게 도움 됐는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수습기자가 나를 인터뷰 할 때, 첫 질문이었다. 맞다, 나 그냥 지원했었지. 바쁜 생활로 처음 지원했던 이유를 잊고 있었다. 우연치 않게, 이번 학기 마지막 호의 취재 후기를 작성하며 지난 성대신문사의 생활을 돌이켜보기로 했다. 사진부 기자가 되어 했던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모아뒀던 신문들을 하나씩 펼치며 ‘박주성’ 세 글자를 찾아본다. 항상 내 이름의 위치는 멋들어진 기사를 작성한 동료 기자 아래, ‘사
늦은 밤 신문사는 적막하다. 타자 소리만 울려대는 이 공간엔 문화부 김선정 기자라고 적힌 명함이 놓여있다. 내 이름 뒤에 적힌 까만 두 글자, ‘기자’로서 사람들을 만났던 기억이 스쳐간다. 1665호에서 인터뷰했던 작가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면 대부분 아는 사람이다. 예고시절 그의 작업이 좋아 그가 쓴 책을 자주 읽었다. 사실 평소에 그에게 궁금한 것은 준비한 질문보다 더 세세한 것들이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동선은 어떻게 고려하는지, 작업이나 주제를 명료화 시키는 방법, 나아가 한국에서 예술로 밥벌이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하지만
이번 학기 방중 첫 회의 날, 이제는 우리가 취재후기를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제목부터 생각했다. 무슨 제목을 지을까 그리고 지금 지은 제목을 과연 쓰게 될까. 쓰게 됐다. 이번이 마지막 기사인데도 그때랑 별반 다르지 않나 보다. 난 여전히 익숙해질수록 낯선 바다에서 파도를 탄다.정기자가 됐으면 익숙해질 법한 일들은 없었고 온통 낯설었다. 그렇다고 준정기자 때처럼 설레는 것도 아니었다. 매번 처음 보는 파도가 밀려왔다. 배경지식을 찾는 일도, 텀 구성을 하는 것도, 인터뷰이 컨택하는 것도, 기사 첫 문장 쓰는 것도 다 해왔던 일이건
'너 에타해?'왠지 우리 학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자주 들락날락한다는 사실을 들키면 민망하다. 이건 비밀인데 댓글도 단 적 있다. '인성;'이라며 상대방을 비방하는 몹시 나쁜 댓글.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벚꽃은 흩날리지만 어쩌다 창궐한 역병으로 학교가 텅텅 빈 지난 4월. 처음으로 지면에 실린 나의 첫 기사 덕택에 오랜만에 가슴이 설렜다. 저 지면 한 켠을 차지하기 위해 지난 겨울을 얼마나 혹독하게 보냈는가. 덜덜 떨며 학교에 전화하고 '김지우 기자입니다'라는 낯선 문장를 입에
이번 학기에 내가 맡은 기사는 총 네 개다. 이번 발간은 그중 두 번째였다. 두 번째로 맞은 신문사 학기지만 아직도 기사를 쓰는 일이 어색하다. 금요일에는 탈고해야 한다. 기사를 위한 기획 문건을 쓰는 내내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내가 주제에 관한 대표성을 갖고서 글을 쓸 자격이 되나? 그것도 학교의 이름을 내건 자리에서 말이다. 그 의구심이 기사를 준비하는 내내 나를 짓누른다. 밤을 새워서 기획문건을 쓰고 배경지식을 정리할 때에도, 신문사 사람들에게서 피드백을 받을 때도, 인터뷰이를 컨택할 때도, 기사 본문을 쓸 때도. 매번 솔직하
솔직히 난 이번 호까지 총 8번의 기사를 쓴 보도부 정기자이지만, 기사의 제일 기본적인 토대인 문건을 쓰는 것이 아직도 어설프다. 특히 학교의 어느 부분에서 비판적인 태도 혹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헷갈려서 기사 방향의 갈피를 못 잡아 헤맨다. 이번 호의 챌린지스퀘어 관련 기사를 쓸 때 어떤 흐름으로 기사를 쓸지 갈팡질팡했다. 나의 가치관과 판단이 기사에 영향을 주기에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기사를 쓰기 위해선 내 생각이 올바르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지만 아직 학생인 나는 그런 전제를 감히 자신할 수가 없다.그런데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대학 학생인 나는 성대신문에 들어와 지난 학기에는 예술대학의 이야기를, 이번 학기에는 자연과학캠퍼스의 이야기를 썼다. 땡볕 아래에서 날리는 종이를 잡아 물감을 칠하고, 모니터 너머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수업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취재가 필요했다. 학우, 교강사, 학교 이곳저곳에 한 마디를 묻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나는 자꾸만 스스로의 자격을 묻게 됐다. 그리고 이번 주 기사 취재를 하던 중 ‘자과캠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취재후기를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편집회의에 들고 가야 할 문건을 쓰다가 혹은 기사를 쓰다가 막히는 순간이 오면 성대신문 홈페이지에서 선배들의 취재후기를 읽고, 또 읽는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과 잘 다듬어진 문장에서 공감을 하기도, 감동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는 ‘취재후기’가 단순하지 않았다. ‘사실’만 가득한 지면 속에서 취재후기는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코너라고 늘 생각해왔다. 내 신문사 생활의 마침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
신문사에 처음 발 디뎠을 때가 생각난다. 어색한 공기와 산발적인 타자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려있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들을 겪을지 모른 채, 함께 할 사람들을 먼저 만났다.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한 동기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성향인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니.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곧 그들이 내가 신문사 생활을 버티게 해준 이유가 됐다. 이제는 얼굴만 봐도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한 편의 기사를 지면에 싣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자료조사부터 시작해 문건을 작성하고 편집회의에서 수차례 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