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비로소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성대신문에 들어온 계기는 꼭 성대신문 활동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생활한 1년 동안과 지원 당시 방학이었던 나의 생활을 돌아볼 때 이룬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나태함을 끝내고 싶어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추가수습이었기에 3주 동안 대부분의 일정이 신문사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트레이닝 과정을 밟으면서 그 마음이 점점 사라졌고 마지막 트레이닝 시간에는 드디어 끝난다는 해방감과 이제 준정기자가 되었다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신문사에 왜 지원했냐고. 나의 대답은 항상 길고 거창했지만 핵심은 없었다. 속으로는 ‘그냥’이라고 답하고 싶었다. 모든 일에 확실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신문사란 그런 곳이다.가벼운 시작은 가벼운 끝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수습 기간 동안 매주 수원에서 서울로 시간 맞춰 이동하고 과제를 제출하며, 하루에 지쳐 집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거의 10시가 다 되었을 때 도착하는 일상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글
안녕, 나 지우야! 첫 편지니까 오늘은 내 하루를 전부 차지해버린 성대신문 너! 네게 내 마음을 고백해보려 해.널 만나기 전 사실 오랜 휴학생활로 지쳐있었어. 학교 열심히 다닐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휴학하고 오래 쉬니까 오히려 더 피로하더라고. 역시 나는 바쁜 게 잘 맞는 사람인가 봐. 운명처럼 너를 만나게 돼서 이제 난 더 이상 힘들지도 않고, 살맛 나. 행복해.사실 가끔은 네게 서운했던 적도 있어. 수습 트레이닝으로 많은 과제를 줬던 너... 그 땐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보니 아주 잠시 우리의 관계가 쉽지 않겠다고 생
이전 기수의 수습일기를 읽으며 지원을 고민했던 게 벌써 6개월 전이다. 3번 고민 끝에 지원했고,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하며 바쁘게 2학기를 보냈다. 원래 이 시기는 방중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 19’ 때문에 일정이 변경됐다. 좋은데 슬프다. 고등학교 때 수면 패턴을 따라야 한다는 점과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점이 처음엔 부담됐다. 그러나 곧 ‘통학러’의 숙명임을 받아들이며 익숙해졌는데 정기 출근이 없어지다니. 공지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였다.익숙한 물음이다. 무계획의
“다른 건 몰라도 기자는 안 해요.” 명절마다 뭘 하고 싶냐는 가족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어쩌면 치기였다. 사회적 성공에 연연치 않으리란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지금은 성대신문에 있다. 학교에 대한 관심,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속하고 싶은 분위기를 따라오니 성대신문이었다. 나는 지금 기자가 되고 싶다.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틈 없이 확인하는 모습을 지니고 싶다. 무엇보다도, 늘 닳으면서도 이상을 품는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 벌써부터 자랑스럽다.한 학기 동안 배우며, 닮고픈 모습을 많이 마주쳤다. 끌어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은 담대함의 연속이었다. 수능을 볼 때도, 논술 시험을 치를 때도, 성대신문에 지원할 때도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바란 것은 하나였다. 늘 담대할 것. 내 앞에 놓인 상황을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도 담대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어린날의 치기가 더 이상 없는 지금, 어느 순간부터 내 앞으로 불쑥 다가온 현실이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더 담대해질 수 있기를 바랐다.준정기자로 지면에 내 이름을 싣는 진정한 신문사 생활을 하기 직전에는 사실 설렘보다 걱정이 더 앞섰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다. 어느 순간부터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한 권의 책이며 참으로 다채롭다고 생각하게되었다. 그 안에 슬픔이 담겨있을지라도 품고 사는 이야기는 용감하고
나는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는데, 앞이 막힌 것처럼 보이지 않는 느낌에 무력감에 빠졌었다. 사실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해서 쉽게 돌아가 버리진 않을지 무섭다.하지만 지금은, 아주 조금이라도 몇 발자국 떨어져서 그때를 돌아보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 속에서 알고 있는 대로만 생각하니까 정말 세상이 좁아지더라. 그런 조그만 독방 같은 곳에서 사실은 너무너무 나오고 싶었다.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해보면서 아직 너무 많
고등학교 때부터 학보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드라마의 영향인지 학보사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 학보사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었다.그리고 3월, 성대신문 맨 뒤에 수습기자를 뽑는다는 전면 광고를 보고 학보사 지원을 마음먹었지만, 논술 시험이 두려워 포기했었다. 너무 사소한 이유로 지원을 미뤘다. 그리고 우연히 학회에서 신문사 일을 하는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선배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학보사 지원을 고민하게 되었다. 학회도 하고 있었기에 사실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사 지원을 결심하게 된
약속은 책임감을 부르고, 책임감은 부담감을 부른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를 돌아보면 무엇보다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것은 약속, 책임감 그리고 부담감이었다.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그 부담감으로 인해 힘들었다. 2년 반 간의 고등학교 학생회 기간을 겨우 이겨낸 후 들었던 생각은 다시는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나는 다시 어깨에 책임감을 짊어지려고 한다. 글을 쓰고, 마감을 지키는 일의 책임감과 부담감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감정적으로 쏟아내는 글이 아니라 준비된
문득 일상이 너무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대신문에 지원하게 됐다. 바람대로 수습트레이닝, 방중활동은 나를 아주 바쁘게 만들어 주었다. 새벽 6시에 잠들어서 오후 2시에 일어나는 생활패턴도 정상으로 돌려주었다. 기획문건에 대한 고민은 습관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이나 우울함도 지워줬다. 보답하는 마음에서라도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아직 주제를 정하는 일도, 기획문건을 쓰는 일도 너무 어렵지만 친절한 동기, 선배들이 도와줘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들어가는 일정에 몸은 피곤하지만, 기분은 나쁘
나는 지금 달리기 직전 출발선에 서 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세 번째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엄습한 것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1학년 때 놀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작년의 나는 로스쿨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과 활동도 많이 하고, 대외활동이나 봉사활동도 목표와 관련된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임했다. 당연하게도 학점 또한 열심히 챙겼다. 그러나 2학년이 되자, 내 활동반경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더불어 무조건 정해져 있던 진로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보고 싶었다.그때, 성대신문 추가수습에 대
만약 취업해서 회사에 들어가면 성대신문 생활과 많이 비슷할 것 같다. 아직도 신문사 발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데 벌써 글을 하나 낼 준비를 하게 되고 내가 쓴 글, 단어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 매일 어떤 음식을 배달시킬지 고민하고 어색한 사람들이랑 밥도 먹게 될 수도 있다. 회의 날 발표한 문건에 대해 가차 없는 피드백을 받을 확률도 매우 높다. 예전에 작은이야기 취재할 때 성대신문은 사회생활 경험하기 딱 좋다고 했는데 이제야 실감 났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의미한 방학이 방중활동으로 알차졌다. 글을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서점에서 마주한 이 문장은 꽤 오래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그 안의 짧은 문장들은 누군가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글을 쓰는 것을 동경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막연하게 한번 도전하고 싶었던 것이다.신문사에 들어와 보내게 된 이번 방학은 내 생각보다 훨씬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개강한 듯 매일매일 일찍 신문사에 출근해야 하는 것이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그
어릴 때부터 글쓰기가 좋았다. 말로써는 선뜻 드러내지 못하는 내 속마음을 글로써 마음대로 표현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성대신문에 입사한 이유도 글쓰기가 좋아서였다. 하지만 기자는 기자 마음대로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 항상 사실 확인을 해야 하고, 피드백을 통해서 다른 기자들의 의견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이런 종류의 글쓰기도 좋아해 보려고 한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준정기자가 된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복수 전공을 신청하여 타과의 전공 수업을 처음 듣고, 내 기사를 처음 쓰는 등 수많은 도전을 하는 2학년 2학
수습기자 트레이닝이 끝나고 이제는 준정기자가 되어 방중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신문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단순히 '바쁘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입사를 하니 트레이닝 기간에는 과제를 하느라, 요즘은 실제로 신문에 실릴 기사들을 기획하느라 일거리가 항상 쌓인다. 학교까지 매일 통학하는 일도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몸은 힘들어도 왠지 마음만은 힘들지 않은 것 같다. 바쁜 만큼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우선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단순히 기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 대학교에 다니면서 제대로 된 동아리 활동을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성대신문 수습기자에 지원했었다. 한 학기 동안의 수습 기간을 거친 뒤 방중 활동을 하는 지금, 내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 기획과 회의를 거치며, 모든 기자가 열정과 노력으로 기사를 쓰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개선하려는 모습도 기억에 남았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지,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앞으로 기자 활동을 하면서, 써보고 싶은 다양한 소재로 좋은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주로 감정을 싣는 글쓰기를 해왔다. 그는 어떠했고, 그녀는 어떠했으며. 이런 것들. 가끔가다 과제로 열심히 레포트를 작성했지만 늘 벼락치기를 거듭한 탓에 오롯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별달리 없다. 하지만 이제는 호흡을 거듭한 객관적인 글을 써야 한다. 성대신문에 입사하고 나서 학기 중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거쳐 이제 공식적인 활동을 목전에 두고 있으나, 좋은 기사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내가 우리 학교의 신문 기사를 잘 쓸 수 있을까. 자칫하다가 엉망인 글을 쓰는
아직은 신문사에서 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준정기자이지만 신문사에서의 매일 매일이 새롭다. 편집회의에도 처음 참여해보고 교열도 처음 해봤고, 편집회의 서기를 위해 문건들을 프린트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라 아직은 어색하고 어렵지만 나름의 재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신문사 분위기도 마냥 딱딱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모두 어리버리한 나를 챙겨주시기도,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시기도 한다. 수습기간이 끝나고 보도부 준정기자가 되고 난 후 처음 참여한 편집회의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학우들을 위한 기사를 쓰고
신문사에 들어와 익숙지 않은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락말락 하는 지금 첫 기사를 썼다. 종이에 찍힌 내 이름 옆에 기자라는 수식어가 생경하게 붙어있다. 괜히 글자들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종이를 만지작거린다. 부듯하기도 하고 어쩐지 조금은 아득하다. 하루키와 돌란을 동경하던 내가 어느덧 문화부 기자가 되어 씨네21 잡지를 뒤적인다. 좋아서 환장하는 것들과 함께하고, 또 그것들에 대한 확신이 짙어지는 것은 결결이 감사할 일이다.기록의 힘은 늘 크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이든 보고 듣고 느낀 것은 그것들이 날아갈세랴 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