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취재하며 가장 많이 한 말이 ‘안녕하세요 성대신문 보도부 기자 유다겸입니다’였다. 학내 사안을 다루는 보도부에 들어와 학교와 컨택할 일이 많아 학교 측과 인터뷰할 때 저렇게 나의 신분을 밝히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보도부 기자 유다겸’이라는 말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너무 부족하다는 나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울리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1년 동안 저 멘트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그렇다. 나는 어느덧 신문사 임기
뉴스는 도처에 깔려 있다. 그리고 바이라인은 뉴스의 끝마다 달려 있다. 종이신문뿐만 아니라 모바일 메신저에도 어느 새 뉴스를 보는 란이 생겨서, 심심할 때면 스마트폰만 들고 기사 제목을 한 번씩 훑어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참 신기한 일이다. 넘쳐흐르는 콘텐츠의 시대에도 글자가 가지는 힘은 살아 있다. 성대신문에 들어온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종이 위로 흥미로운 주제를 잡아내고 싶었고, 쉽게 쓴 말로 풀어내보고 싶었다. 기자들은 항상 전화를 들고 질문을 주고 받을까? 인터뷰 음성을 녹음하고, 내용을 곱씹고 타이핑을 하고. 마지막으
성대신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지원서를 냈던 지난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호암관 신문사에서 나는 열심히 논술 문제를 풀었고, 면접에서는 긴장한 목소리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짐했다. 힘들고 바쁘겠지라는 각오를 어느정도 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수습기자부터 실전 업무에 투입되는 준정기자, 정기자까지. 이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바쁜 생활이었다.기사 하나를 세상 밖으로 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소재 기획부터 회의 피드백을 거쳐 취재, 인터뷰, 체크, 교열까지. 수많은 인원이 참
“Drive it like you stole it”, 영화 의 메인 삽입곡이자 내 인생의 좌우명이다. 경쾌한 밴드 음악과 당당한 가사가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말 그대로 “훔친 듯이 달려라”, 네 인생이니 열심히 하고 싶은 대로 달리라는 뜻이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다 힘이 부칠 때면 본가에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다이어리를 다시 읽어본다. 나를 채찍질하는 말들, 친구들의 응원 쪽지,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되새기며 다이어리를 닫고 다시 달려간다. 그러나 다이어리는 절대 자취방으로 들고 오지 않는다. 그곳이 다
11월 30일,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성대신문의 마지막 조판회의가 끝나고 있다. 치열했던 신문사 생활이라고 하기엔 그 마지막은 조용하고 허무하다. 성대신문에 왜 들어가겠다고 다짐했을까. 처음부터 기자가 되고 싶어 신문사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 자신을 깨우쳐 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이고 사소한 동기만으로 신문사 생활을 하기엔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성대신문 기자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책임감이 있었고, 기사를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 헤르만 헤세가 소설 『싯다르타』에서 형상화하고자 했던 말로, 진리는 직접 터득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 인생에 큰 가르침을 준 이 교훈. 너무나 값진 이 교훈은 내 수습일기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진부하지만 나는 다시금 진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1658호 사회부 기사는 기획 단계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주제 선정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주제를 선정한 후에도 주제를 구체화하기 어려웠다. 신문사 내에서도 우리 사회부의 주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종교는 민감하고 어려운 사안이라 서술하는 데에 어려움
그날은 유독 이상한 날이었다. 성대신문에 지원서를 내던 날 말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진 것도, 교수님께서 갑자기 휴강을 공지하셔서 학교에 가다가 집으로 돌아간 것도 모두 이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했던 건 선배 기자로 활동하던 친구 기자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저렇게 바쁜 일은 하지 말아야지, 좀 더 쉬운 일을 찾아야지, 힘들게 대학에 왔으니 조금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내가 갑자기 웬 바람이 불었는지 성대신문에 지원하게 된 것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노을이나 어스름같이 아름다운 것을 담으려는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본다. 매일 반복되지만 순간이기에 아름다운 것을 지나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간절해서 예쁘다. 다시 태어나면 높고 큰 나무가 돼야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더 오래도록 바라봐야지 생각한다.새해가 되면 매번 일상을 소중히 여기자고 다짐한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은 동형 반복되는 일주일 속에서도 각자의 디테일로 채워진 하루는 한편의 시이자 예술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삶은 저마다 빛나는 유일한 걸작이므로. 그리고 신문사는 일상에 미묘한 변주들을 안겨줬다.여러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언론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대학 입시 자기소개서에도 소외계층을 위해서 노력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언론인이 되고 싶다며 당차게 포부를 적었었다. 하지만 신문사에 들어온지 반 학기가 지난 요즘, 이제는 언론인이 되고 싶지 않다.준정기자 때에는 형식적인 기사들만 다뤘어서 ‘나도 다른 보도부원들처럼 학내 사안 취재해서 기깔나는 기사 좀 써보자!’고 생각했었다. 정기자가 된 지금은, 준정기자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기자가 되고 나서 예민할 수 있는 학내 사안을 다루다 보니 취재 협조를 얻
정기자가 된 후로도 벌써 세 번째 발간이 끝났다. 정기자의 특권인 취재 후기를 쓰자니 성대 신문에서의 지난날이 떠오른다. 동기들과 어색하게 둘러앉아 트레이닝을 받던 수습기자,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웠던 준정기자를 지나 어느덧 한 부서의 부서장이 된 정기자까지. 글이 빽빽한 문건을 다 읽지도 못해 허둥지둥하던 첫 번째 편집회의를 떠올리면, 기계적으로 문건을 보고 피드백을 하게 된 나의 변화가 신기할 따름이다.생각해 보면 신문사를 통해 나는 정말 많이 변화했다. 글을 읽기 싫어하고 휴대 전화만 들여다보던 내가 글이 가득한 문건과 기사를
톡톡톡.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우산을 두드린다. 간혹 우산을 피한 빗방울이 나를 때리면 내 마음은 빗물 모양대로 움푹 팼다. 한 폭의 기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신경을 쏟고 나면 몸과 정신은 액체괴물이 된다. 미술시장을 취재하면서 기뻤던 일은 기뻤던 모양대로 자국이 남고, 힘들던 일은 힘들던 모양대로 자국이 남았다. 자국은 오래도록 남아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맨발의 박 기자] 중앙대 이 교수를 만나는 과정은 낭만적이었다. 그의 논문을 접하고 꼭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다. 두 차례의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자 학교 행정실에 전화했다.
이번 미래학 기사를 쓰기 위해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위원을 인터뷰하러 국회에 다녀왔다. 미래학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얻기 위해 인터뷰하러 간 것이다. 그런데 인터뷰 이후, 미래학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인터뷰이는 ‘미래학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던 도중 나와 사진기자에게 우리는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왔기에 사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어떤 답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