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국 중 자살률 1위… 부조리 만연해카뮈 “부조리 직시하며 끝까지 살아가야”한 사회의 절망적 풍경에 대한 섬뜩한 비유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이화여대 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나서 “한국은 집단 자살 사회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간담회에서 취직과 결혼, 출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결혼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성장률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재정이 악화된다”며 “이런 악순환은 집단 자살로 가는 길”이라 말했다고 한다. ‘집단 자살로 가는 길’
정치에는 모기 눈곱만큼도 관심 없던 공대생 친구가 “요즘 정치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연휴 마지막 날 술자리에서의 일이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탈원전 기조를 공학만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헛웃음부터 나왔지만, 20여 년 우정을 생각해 마음을 헤아려보니 공학으로는 채울 수 없는 이해의 빈틈을 정치로라도 메꿔보고자 하는 시도인가 싶었다. “이 무슨 허망하고 민망한 짓이냐”며 괜히 놀려주려 했지만 친구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 참았다. 지난 10일 서울대 공과대학(이하 공대) 학생들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 영화 남한산성(오는 10월 3일 개봉) 예고편에 등장하는 문구다. 영화의 배경은 1636년 병자호란이다. 그해 겨울, 압록강이 얼어붙어 길이 되자 청군(靑軍)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말을 달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한양에 도달했다. 임금의 어가는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신하들은 어명에 따라 종묘의 신주와 사직의 위폐를 떠받들고 산성으로 몰려갔다. 일사천리로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 국운(國運)의 고립은 운명이었던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는 동북아의 국제전쟁 시기였다. 일본을 통합한 도요토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논란,지역이기주의 민낯'자연상태' 벗어나는 것이정의로운 사회 이루는 일장애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다. “제발 아이들 학교 다닐 수 있게 해달라”며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다. “특수학교는 혐오시설 아니다”며 큰절 올리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높았다. “쇼하지 마라” “쟤 내보내”라는 고성이 오갔다. “왜 굳이 여기에 특수학교를 지으려 하느냐” “장애인들이 왜 이렇게 많냐”는 소리도 들렸다. 지난 5일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 보도 영상은 슬프고 기막혔다. 님비(NIM
과학적 사고란 머릿속 큰 단어에 정교한 가위 들이대는 일오늘날 한국 사회에 거대한 개념들 횡행해… 과학적 사고 절실“구분하는 것이 곧 과학이다.” 교수님께서 science(과학)와 scissors(가위)의 라틴어 어원은 같다는 것을 예로 들며 말씀하셨다. 1학년 1학기 문학입문 수업에서의 일이다. 문학을 배우는 자리에서 무슨 경위로 과학을 논하게 됐는지, 5년이 지난 지금 알코올에 풍화된 필자의 뇌로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교수님께서 science를 인간의 ‘앎’ 또는 전반적인 ‘학문’의 의미로 사용하셨으리라 짐작하고
정돈되지 않은 것에는 누구나 불안 느껴불안에 발버둥치는 것이 곧 정리정돈한 독일인이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자 지나가던 다른 독일인이 다가와 묻는다. “Alles in Ordnung?(알레스 인 오르트눙?)” 괜찮으냐는 뜻이다. 이 문장은 심오하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든 것이 정돈 속에 있니?’다. 다듬으면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니?’ 정도다. 이 ‘정돈’을 묻는 말이 독일에서는 ‘괜찮니?’로 쓰인다. 영어의 ‘Are you OK?’와는 질감이 다르다. ‘Are you all right?’과도 결이 다르
문득 처음 신문사에 발걸음을 내딛던 날을 떠올려본다. 기획을 준비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조금은 대단해 보이던 때였다. 학교 곳곳에 놓일 신문 한구석에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써낸다는 일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조금은 뿌듯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내가 쓴 좋은 기사를 통해 학우들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문제점을 개선해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수습 기간을 마치고 기사를 맡아 작성하는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부끄럽게도 저런 생각은 바쁨 속에 묻혀버리게 됐다. 원고지 8매 분량의 기사 하나를 작성하는데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전에는
필자는 ‘취준생’이며 이번 학기가 흔히 말하는 ‘막학기’다. 취준생으로 살아가며 느낀 것은, 취업을 위해서 갖춰야할 것이 참 많다는 것이다. 높은 학점과 유창한 외국어 실력, 거기에 자격증은 덤이고 학교에서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인턴경력이나 여러 대외활동은 밋밋한 이력서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양념과도 같다. 여기저기 올라오는 스펙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열심히 대학생활을 해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대학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부족한 점이 많이 느껴지기도 한다. 자아성찰의 시간이다.자아성찰의 시
요즈음이 성대신문사가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다. ‘차기’ 데스크를 구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신문사는 오랫동안 학기 중 마지막 2회의 발간을 인수인계기간으로 두고, 차기 데스크단의 관할 아래 신문을 발행해 왔다. 따라서 필자 또한 차기 편집장에게 인수인계를 진행해야 한다.문자가 개발된 이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필자는 ‘정보의 저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단순히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음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저장된 정보는 후대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일종의 길잡이가 돼준다. 크게 보면 역사가 그렇다. 선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슬슬 따뜻해지는 환절기가 되면 무슨 옷을 입을지 항상 고민이 된다. 두꺼운 점퍼는 너무 더울 것 같고, 얇은 후드만 입기에는 해가 떨어지는 오후만 돼도 춥다. 이번 환절기에도 또다시 이런 고민이 찾아왔다. 짧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새 옷을 사는 것이었다. 결론을 내자마자 재빠르게 컴퓨터를 켜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무엇을 살지 정한다. 이번에는 청바지 한 벌, 약간 두꺼운 후드 티셔츠 한 벌이다. 이제 드넓은 정보의 바다 속 넘쳐나는 수많은 옷 중 맘에 드는 옷을 정하기만 하면 끝이다.평소에 애용하는
취재에 동행하면서 가보게 된 소록도의 첫 인상은 ‘아름답다’였다. 남해에 있는 섬답게 바닷물이 맑고 푸르렀는데, 고향인 서해 근처에서 보던 흙탕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소록대교를 건너 섬에 들어서자 소나무숲길이 보였다. 이어 나타난 소록도 중앙공원에는 수목원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종류의 관상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원에는 나무들 외에도 여러 조형물과 돌들이 보기 좋게 배치돼있었다. 소록도 중앙공원 외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또 다른 장소인 박물관 역시 깔끔한 현대식 건물로 보기 좋게 지어져있었다.하지만 소록도에 대한 인상은 본격적
우리 신문사에서는 기자단을 대상으로 벌점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개 회의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주어진 시간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벌점을 받게 된다. 신문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들을 지키지 않았을 때 벌점을 받게 되지만, 그럼에도 기자들의 부담은 상당해 보인다. 규정으로 만들기 전에는 융통성을 발휘해 어느 정도 상황을 봐주던 사항들에 대해서도 더 이상 융통성이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융통성’이란 단어는 규정을 집행하는 사람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 지각을 하는 사람에게 벌점을 부여해야 하는데, 만약 가족모임이
올해는 한·중 수교 25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중국과의 수교가 고작 25년밖에 되지 않았냐고 말할 만큼 여기저기에 중국이 있고 중국인이 있다.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에 ‘Made in China’가 박혀있고, 어느덧 캠퍼스 주변에 중화요리가 아닌, 중국식 음식들을 판매하는 식당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조별과제를 위해 조모임을 하면, 중국 학우를 만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가끔 우리 학교를 ‘작은 중국’이라고 말하는 학우들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중국에 대해서 잘 아세요?”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3월의 개강이 9월보다 더욱 설레는 이유는 어쩌면 해가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기관에서는 한 해의 시작을 한겨울인 1월에 맞이하지만, 대학은 봄기운이 피어오르는 3월에 학기를 시작한다는 점도 개강의 두근거림을 더하는 것 같다. 3월의 대학가는 새로운 사람들이 가득하고, 대학생들은 새로운 후배를 맞이하게 된다.과거 대학에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밥을 사는 것이 일종의 미덕이었다. 신입생이 3월에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는다면, 그것이 곧 선배들의 잘못이 되는 시기였다. 식구(食口)란 원래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성대신문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학내 문제들로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 무수한 충돌 속에서 대학언론은 어떠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는 아직도 고민이 많지만, 언론과 마찬가지로 대학언론도 ‘눈치 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가치관만큼은 갖게 됐다.흔히 언론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표현된다. 한 번 보도가 되면 걷잡을 수 없기에 오보가 나도 정정하기는 쉽지 않다. 즉 보도하는 행위 자체가 언론의 역할이면서도 권력이 된다. 이 때문에 입법, 행정, 사법에 이어 제4의 권력이라는 언론이 정치권력과 유착한다면 정치권에 대한 파급
지난 15일, 서울 도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대학생 시위에 취재차 참여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뺨이 얼얼해지는 날씨에, 마로니에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모인 지 한 시간쯤 후에 도로를 걸으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학보사 생활을 하면서 시위 취재에 나간 것은 여러 번이었지만, 이번 시위에 참여하면서는 꽤 놀랐다. 시위 때 도로로 행진하는 것은 경찰의 협조하에 이뤄지는 것이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교통이 통제된다는 불편함에 버스와 자가용을 타고 있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겉으
촛불은 꺼질 줄을 모른다. 꺼지려고 해도 꺼질 수 없는 밤이다. 학내신문이라고는 해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 현 시국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생들이 학외에서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취재하러 가기도 했지만, 우리 안의 목소리는 어떠한가도 들어보고 싶었다. 발간일은 정해져 있기에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객관식으로 구성한 설문지라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응답자를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현 상황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을 적을 수 있도록 질문지를 구상한 이상 응답자는 더 적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과방, 학생회, 학회, 동아리
누군가 기자는 펜으로 싸우는 직업이라 했다. 기자라는 직군을 묘사할 때 ‘싸운다’는 다소 격한 표현이 사용되는 건 그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기자 그 스스로 싸운다고 말할 수 없을 때의 무력감은 치열함을 무색하게 한다. 어떤 이들은 그 무력함을 가장 치열해야할 시기에 느꼈다. 언론보도를 통해 비선실세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작되며 ‘언론이 언론다운 일을 했다’며 찬사를 받는 한편, 일부 기자들은 의혹에 대한 취재 건의를 거부한 보도본부를 비판하며 농성을 벌였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보도본부장은 자사 기자들이
지난 3일, 노벨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한국인 수상자가 없는 것에 대해 보도되곤 하지만, 올해는 노벨상이 유독 화두가 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올해 첫 번째로 발표된 노벨상 수상자가 일본 도쿄공대 명예교수로, 같은 아시아권 국가인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조된 여파다. 보도된 많은 뉴스는 일본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현재까지 총 22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것과 비교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국내 학문 풍토에 대한 자성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가 끝나고 학부모들이 준비한 간식을 선생님,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한 번쯤은 이와 비슷한 기억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이러한 풍경을 학창시절 내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드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근 몇 개월간 잊을 만하면 뉴스에 나와 이제는 친숙해진 그 이름, ‘김영란’법이 드디어 시행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학교에도 적용되어 교사는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