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 GPT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는 점에서 이전 챗봇들과 다르다. 사람처럼 대화도 하고 에세이도 쓰고, 심지어 시와 신문 기사도 쓴다.현재의 챗GPT는 초거대 언어모델인 GPT-4(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version-4)를 사용한다.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언어를 생성하고 추론할 능력을 지녔다. 생성형(Generative)이란 문자열, 그림, 음악, 음성 등의 답변을
고등학교 내내 언론인을 꿈꾸며 공부해온 나는 경험의 한계가 있었다. 항상 매체에만 갇혀 사회를 바라봤을 뿐 내가 직접 뛰어들어 볼 기회도, 그 기회를 만들 용기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뒤에 서 있기만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이런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그렇다. 난 어쩌면 세상에 더 뛰어들고 싶었던 것 같다.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성대신문에 들어오고자 결심했다. 내가 직접 주제를 찾고, 기사를 쓰고, 인터뷰이를 찾아 인터뷰하고, 그 기사가 학교 내에 퍼진다는 것이 나에겐 큰 매력이었다. 세상에 뛰어들고자 했던
대학교에 들어온 후의 일상을 돌아보면, 나는 점점 도피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부정이 두려워 시작조차도 않고 무조건적인 안정과 현상 유지만을 추구하였다. 잉여로운 방학을 보내던 중,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통해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그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 때문에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지금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성대신문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결과물에 대해 계속해서 평가를 받아야 하고, 평가를 바탕으로 더
힘들다. 주말을 제외하고 10시까지 학교에 출근하는 것도, 게다가 방학에. 매일매일 생각하고, 쓰고, 찍고, 편집하고, 수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는 게.미래를 차츰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시기인 3학년 1학기에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하고 있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나는 문득 조급해졌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 학과에서 해오던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대신문 뉴미디어부에 지원했다. 사실 나는 항상 저지르고 후회하는 스타일이었다. 최근에는 저지르기
나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편이고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히 끝내려고 하는 편이지만, ‘해야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한없이 게을러진다. 1학년을 보내며 느낀 점이었다. 끊임없이 할 일이 주어지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교 생활은 온전히 나의 선택의 연속이었다. 크게 엉망으로 산 것은 아니었지만 별다르게 바쁜 일 없이 1학년을 보내며 남은 대학 생활은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생하더라도 조금 바쁘게 살면 뭐라도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성대신문에 덜컥 지원하게 됐다.성대신문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
폭풍 같던 새내기 시절이 지나고 2학년으로서의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성대신문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다짐이 필요했다. 혼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책 읽고, 일기 쓰며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새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되어있었고, 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자’의 피상적인 이미지는 평생 공부하면서 세상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직업이었고, 이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완전하게 부합하기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기자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멋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나는 쉽게 얻어지는 것들만 얻으며 살았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애를 쓰는 걸까? 추하게 버둥거리며 애쓰는 것이 ‘노력’이라는 빛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내가 무언가를 위해 힘껏 노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됐어.’ 부끄럽지만 지금도 내가 정말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 에너지가 많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해 보면 1년 동안 대학에 다니면서 한 번도
"만나이로 23살이니깐 우리는 아직 젊은거야". 올해 초, 같이 밥을 먹던 대학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꽤나 안심했었던 기억이 든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학교에 입학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렇다 할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졸업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항상 고민했었다. 그런 와중에 우린 아직 젊다는 친구의 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여럿 보면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젊을 때 하고싶은 일에 도전하라는 조언
나는 글을 담아내길 좋아한다.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 내 감정이나 말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 한다.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말을 다듬어 하나의 장에 꾹꾹 눌러 신중히 표현할 수 있는 글이 좋다.너저분히 나열되어 있는 많은 생각들을 다듬다 보면, 나조차도 다 알기 어려운 나를 살피게 된다.그래서 자주 짧게, 때로는 길게, 대개 적당히 글을 쓰며 나를 담아낸다.좋아하는 글과 사람이 모인 성대신문의 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그리고 이곳에 지원할 당시에 가장 큰 기대를 품고 있던 나의 부서, 뉴미디어 부원으로서의 삶
수습기자 때 웹기사를 발간 하기 직전, 글을 그렇게 많이 고쳐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 싶다.내 주변에는 글을 한 큐에 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끼리는 '작두를 탄다'고 표현한다. 나도 사전적 의미를 몰라서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단다.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황홀경에 빠져서 일을 할 때 생각보다 더 힘이 나고, 에너지가 솟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는 상태.길게 표현할 필요도 없다. 두 글자로 몰입이다. 대체로 몰입은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작두를 타서 쓰는 글은 종종 놀랍도록 매끄럽고 유려하다. 그러나 기사는 에세이도, 비평도,
처음 신문사에 들어와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그건 내 자부심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메리트라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펐다. 누군가 칭찬받을 때, 나에게는 날카로운 피드백이 쏟아지니, 어쩌면 내가 여기서 제일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참 자신감이 떨어져 있을 때, 도망치고 싶어졌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보다 뛰어난 사람들한테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그 마음 내려놓고 보면 이제 넌 그렇게 배우
2학년 1학기가 시작된 나에게 성대신문의 입사는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쏜살같이 흘려보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헤맸고 나에게 중요한 결정들을 회피하고 있었다. 자신이 정한 목표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다른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자리에 멍하니 멈춰 서있는 듯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수습 일기를 쓰기 위해 성대신문의 수습기자 지원서 파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그동안 왜 다른 활동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변명하는 듯한 지원서의 내용에
잘 써야지 다짐하고 쓰는 글은 항상 불편하고 부자연스럽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수습일기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이는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닫는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도 부족하다. 초등학생 때 토론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이후로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전개하는 일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학보사에서 일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사실 학보사에 입사하는 것은 내 대
내 메모장에는 몇 번이고 쓰다듬은 문장들이 있다. 그것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집의 한 구절도 있고, 무언가를 보며 느낀 감정을 직접 담아낸 문장도 있다. 이걸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글이 매우 불친절하고 유려하지 않다는 것을 알 거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는 여태 이러한 글을 써왔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문장들을 뱉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성대신문사에 그저 글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입사했다는 거다.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대범한 도전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누구에게나 그렇듯 도전은 두렵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는 도전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한 번도 내 의지로 다른 동아리나 학생단체를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나 과외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성대신문은 숨어있던 내 도전정신을 이끌어주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려 영상 제작 및 기사를 작성하는 매 순간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새로 접하는 일이 많았기에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고, 엄청난 업무량에 퇴근 시간을 넘길 때면 괜한 도전을 했나
지난 3월 성대신문에 속하게 됐고 지금은 8월이다. 성대신문에 지원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작년 2학기에 이전에 퇴임한 성대신문 선배로부터 성대신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때부터 여기에 들어오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성대신문에서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체계가 잡힌 단체라는 점도 한몫했다. 성대신문 기자가 되려면 먼저 지원서를 제출하고 논술과 면접을 봐야 한다. 3월 면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부적절한 말을 많이 했다. 언론 쪽으로 진로를 정했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고,
원고지 8매. A4 용지로는 절반이 조금 넘는 분량. 신문에 사용하는 베를리너판에서는 한 손바닥으로 충분히 가릴 정도의 크기. 지금 읽고 계신 편집장의 글이 갖는 물성입니다. 이것을 시간으로 치환하면 어떨까요. 재빠르신 분들이라면 1~2분 만에 다 읽으실 수 있으시겠지요.그렇다면 기사는 어떨까요. 이번 학기 성대신문은 호외를 제외한 8개의 호를 발행했습니다. 열여섯 면일 때도 있고 열두 면일 때도 있지만, 확실히 한 권의 책보다 얇은 두께입니다. 8개의 호를 쌓아야 그만한 두께가 될까 말까 하지요. 신문이 갖는 물성입니다. 이것을
‘그땐 그랬지’라는 말은 하나의 문화가 된다. 이 말을 하는 이들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지난날 열정의 순간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가 1997년 출간한 『전태일과 쇼걸』은 운동권이던 두 남녀의 현재를 담았다. 대학에서 만난 두 남녀는 강성한 운동권이었다. 서로 마음이 맞던 둘은 어느새 연인이 돼 함께 청춘을 보냈다. 연인을 ‘형’이라 부르는 모습은 그 시절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레 헤어진 둘은 7년이 지나 서울극장에서 마주친다. 영화
인생의 기간이 아닌, 열정이 있는 모든 순간입니다.
시작은 늘 들뜬 마음만큼 어렵다. 스물한 살 여름방학의 기억은 전부 교내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기사 준비에 있다. 학교 행정실의, 용역업체 사무실의, 노동자 휴게실의 문을 두드렸다. 양 캠퍼스 건물을 뛰어다니며 층별 휴게실의 위치를 기록했다. 자과캠 청소노동자 권 반장님의 하루를 동행하며 수세미를 들고 계단을 닦았다. 힘든 건 몸이 아니라 어찌할 줄 모르던 내 서툶이었다. 입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아 문 앞에서마다 망설였다. 친절하지 못한 답변 하나에 반나절이 서러웠다. 그리고 발간주 목요일 새벽, 몇 시간짜리 인터뷰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