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흉흉한 세상이다.눈을 뜨면 사람이 사람을 짓밟고 있다. 그때마다 나는 참으로 무기력해진다.서울에 오고 나서 참으로 무기력한 적이 많았다. 자신에 대한 확신도 미래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들지 않았다. 그때 내가 본 서울은 미세먼지가 그득했다. 참 잿빛이었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세상은 나에게 참 모질게 굴었다. 그때마다 나는 울컥거리는 상처를 상처로 덧대고, 덧대고, 또 덧댔다. 더는 그곳에서 아무런 감각도 나지 않을 때까지.그런데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깨달았다.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홀로 외롭게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놀라는 조앤 윌리엄스 교수의 모습은 SNS에서 급속도로 화제가 됐다. 그녀는 여성·노동·계급 등의 분야의 권위자이며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의 명예교수직을 맡을 만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우리나라를 향해 격하게 통탄했을까. 그녀는 이어서 말한다.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해당 상황은 7월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K’의 ‘인구대기획-초저출생’ 시리즈 중 한 장면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
지금은 당신이 죽기 5초 전이다. 서서히 시야가 흐릿해지고 오로지 둔탁한 심장 박동 소리만 당신의 귀를 울린다.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눈앞에는 무엇이 보일까.흔히 인간이 죽음을 앞두게 되면 주마등을 본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인상 깊던 기억들이 원통형 등(燈)에 그려진 그림처럼 눈앞을 지나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마등은 철저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전개되는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를 통해 우리에게 타인의 주마등을 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스스로 죽음이자 파괴자가 되
오늘은 막을 내렸으니, 푹 주무세요.
나는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말랑말랑한 문화면이야말로 신문을 열어 본 사람들이 가장 읽고 싶은 지면일 것이라고 생각해 문화부에 지원했다. 이에 한 학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기사에 담으려 노력했다. 첫 기사인 ‘온라인 선물하기’는 친한 친구의 생일에 선물 대신 보낸 편지에서 시작됐다. 스타벅스 쿠폰이 아닌 더 좋은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고, 친구는 그에 ‘백 개의 선물보다 훨씬 큰 편지’였다고 답했다. 그 순간 카카오톡에서 무난한 선물을 관례처럼 전송하던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들의 욕망은 단 하나, 푹 자고 싶은 욕망뿐이라고 한다. 그 군인들의 고생이 딱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부럽다. 불쾌하고 번잡한 마음과 근거 없는 생각의 홍수와 깨끗이 결별한 채 그저 수면만을 갈망하는 상태는, 정말 깨끗하고 단순해서 생각만으로도 상쾌해진다. 배불리 먹고 발 뻗고 자는 나는 마음이 번잡해서 온갖 욕망에 시달리고 불안에 떨며 또 하루 살기 위해 고민한다. 왜냐하면… 실존은 본질에 앞서니까.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목적, 기능, 의미 같은 건 없다. 인간은 그냥 존재한다. 존재
(1973)는 파스빈더가 연출한 유일한 SF 영화다. ARD 텔레비전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2부작 TV 시리즈였던 터라, 1973년 10월 14일과 16일에 딱 한 차례 방영되고 어디에서도 공식적인 재상영이 이뤄지지 않았다. 가 온전한 복원판으로 세상에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2010년 베를린 영화제 덕분이었다. 파스빈더는 다니엘 F. 갈루예의 SF 소설 (1964)를 뼈대 삼아 의 각색 대본을 완성했다. 원작 소설에
너는 언제나 내 전화를 받았지. 정말 언제나 말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한참 술을 마시는 중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거나 일을 하는 동안에도 너는 내 전화를 거절한 적이 없었어. 내가 혼자서 외로움을 잘 탄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전화를 망설이고 있을 때면 먼저 “지금 전화 걸까?” 하고 물어오기도 했지. 내가 때로는 두 시간 내내 전화만을 연결한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너는 내 용건 없는 전화를 거절하는 법이 없었지.친구들이 내게 수원에 꿀을 발라두기라도 했느냐며 놀렸던 것 기억나? 돈도
헌법은 매우 중요한 법이다. 물론 필자가 헌법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택한 주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헌법이 ‘객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법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600개의 법률 혹은 약 5,000개의 법령이 있는데, 헌법은 이들의 성립과 효력을 뒷받침하는 원천이다. 일반법이 국가로부터 만들어져 국민을 규율한다면, 헌법은 그 반대로 국민으로부터 만들어져 국가를 규율한다. 일반법이 국가작용의 산물이라면, 그 국가작용은 바로 헌법의
중학교 시절, 반 대항 축구대회의 주최자로서 심판을 봤던 적이 있다. 사뭇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대회였다.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기 직전, 공이 골라인에 걸친 지점쯤에서 골키퍼에게 잡혔다. 골인지 노 골인지를 따지며 양 팀에서 어필했다. 필자가 머뭇거리자 돌연 선수들끼리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웠지만 이마에 흐른 것은 분명 식은땀이었으리라. 아수라장이 된 운동장에서 외쳤다. “노 골! 공이 라인을 넘었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대회를 시작하며 만든 한 쪽짜리 규정집의 항목 중 하나였다.중학생
어떤 종목의, 또 어떤 선수를 응원하든 스포츠팬이라면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말 한 마디가 있다. “이제 저 선수는 한물가지 않았어?” 이같이 날카로운 문장들은 의외로 사실에 근거를 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응원하는 선수가 예전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기록할 때 곧바로 들려오는 비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선수들의 활약은 물론 그들의 모든 이야기까지 사랑하는 팬들의 거부감을 야기한다. 때때로 선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객관적인 시각을 잃기도 하며, 불가능할 것을 알지만 응원하는 선수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만을 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기사를 쓰는 것보다 취재후기를 쓰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그 어떤 자료 조사 없이 써야 하는 글이라서 그런 것인지, 이 글 아래 내 사진이 들어가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소 부끄러운 기분이다. 그래도 누구나 채울 수 없는 여론면을 이만큼이나 차지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삼으려 한다. 내 첫 기사가 담긴 1706호부터 이번 기사가 실린 1713호까지, 신문이 8번 발간될 동안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사실 딱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기사 발간 과정에서 놓치는 것들도 많고, 바보 같은 실수도 한다. 이번 기사를 쓸 때도 첫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한 스무 살의 나는 로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동아리에 대한 로망이 가장 컸다. 교내 동아리에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동아리 홍보 부스를 통해 풍물패 얼을 알게 되었고, 얼의 화목한 분위기에 이끌려 가입했다. 그렇게 나는 로망의 대부분을 풍물패 얼에서 이루었다.장구를 제대로 쳐 본 적도 없이 무작정 들어온 동아리였지만, 가을 정기 공연을 진행하면서 풍물놀이에 점점 빠져들었다. 다 함께 만든 공연은 풍물놀이와 풍물패 얼에 많은 애정을 갖게 하였다. 힘들었던 순간들
“대표님, 대표님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대표님이 그렇게 질문하시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다시 하셔야 합니다.”나는 20년 넘게 국내 굴지의 유통회사에서 바이어로, 또 MD 전략팀장으로, 그리고 점장으로 일했다. 대표이사에게 중요한 보고를 하다가 답답해진 마음에 내뱉은 저 말 한마디로 회의실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앞뒤 안 가린 내 태도가 문제인가?우리 시대(?)는 겸손(shy)이 미덕이었다. 아니, 겸손을 강요당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세월
아침이 되면 하루 여행을 시작한다.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여행의 맛을 알고부터 공간 이동에 시큰둥해졌다. 나이가 들어 몸이 고단해진 탓이 클 테다. 대신 시간의 마디마다 나름의 의미를 챙겨 보는 이 노릇도 꽤나 근사하다. 똑같은 일상이 마냥 똑같지 않다는 것도 똑같은 일상을 맞는 것 자체가 은혜로운 일임도 깨닫는다. 어떤 여행도 나를 키우지 않는 건 없다.
요즘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 GPT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는 점에서 이전 챗봇들과 다르다. 사람처럼 대화도 하고 에세이도 쓰고, 심지어 시와 신문 기사도 쓴다.현재의 챗GPT는 초거대 언어모델인 GPT-4(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version-4)를 사용한다.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언어를 생성하고 추론할 능력을 지녔다. 생성형(Generative)이란 문자열, 그림, 음악, 음성 등의 답변을
고등학교 내내 언론인을 꿈꾸며 공부해온 나는 경험의 한계가 있었다. 항상 매체에만 갇혀 사회를 바라봤을 뿐 내가 직접 뛰어들어 볼 기회도, 그 기회를 만들 용기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뒤에 서 있기만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이런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그렇다. 난 어쩌면 세상에 더 뛰어들고 싶었던 것 같다.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성대신문에 들어오고자 결심했다. 내가 직접 주제를 찾고, 기사를 쓰고, 인터뷰이를 찾아 인터뷰하고, 그 기사가 학교 내에 퍼진다는 것이 나에겐 큰 매력이었다. 세상에 뛰어들고자 했던
대학교에 들어온 후의 일상을 돌아보면, 나는 점점 도피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부정이 두려워 시작조차도 않고 무조건적인 안정과 현상 유지만을 추구하였다. 잉여로운 방학을 보내던 중,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통해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그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 때문에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지금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성대신문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결과물에 대해 계속해서 평가를 받아야 하고, 평가를 바탕으로 더
힘들다. 주말을 제외하고 10시까지 학교에 출근하는 것도, 게다가 방학에. 매일매일 생각하고, 쓰고, 찍고, 편집하고, 수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는 게.미래를 차츰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시기인 3학년 1학기에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하고 있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나는 문득 조급해졌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 학과에서 해오던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대신문 뉴미디어부에 지원했다. 사실 나는 항상 저지르고 후회하는 스타일이었다. 최근에는 저지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