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대표님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대표님이 그렇게 질문하시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다시 하셔야 합니다.”나는 20년 넘게 국내 굴지의 유통회사에서 바이어로, 또 MD 전략팀장으로, 그리고 점장으로 일했다. 대표이사에게 중요한 보고를 하다가 답답해진 마음에 내뱉은 저 말 한마디로 회의실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앞뒤 안 가린 내 태도가 문제인가?우리 시대(?)는 겸손(shy)이 미덕이었다. 아니, 겸손을 강요당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세월
아침이 되면 하루 여행을 시작한다.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여행의 맛을 알고부터 공간 이동에 시큰둥해졌다. 나이가 들어 몸이 고단해진 탓이 클 테다. 대신 시간의 마디마다 나름의 의미를 챙겨 보는 이 노릇도 꽤나 근사하다. 똑같은 일상이 마냥 똑같지 않다는 것도 똑같은 일상을 맞는 것 자체가 은혜로운 일임도 깨닫는다. 어떤 여행도 나를 키우지 않는 건 없다.
요즘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 GPT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는 점에서 이전 챗봇들과 다르다. 사람처럼 대화도 하고 에세이도 쓰고, 심지어 시와 신문 기사도 쓴다.현재의 챗GPT는 초거대 언어모델인 GPT-4(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version-4)를 사용한다.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언어를 생성하고 추론할 능력을 지녔다. 생성형(Generative)이란 문자열, 그림, 음악, 음성 등의 답변을
5월 초는 축제의 물결이었다. 지난 3일에서 4일은 자과캠에서 성균제가 열렸고 7일과 8일은 인사캠에서 대동제가 열렸다. 성대신문 제1711호에서 보도면은 양 캠퍼스의 축제를 다뤘으며, 문화면에서도 대학축제의 현주소를 짚었다. 보도면의 ‘다시 분리된 대동제 콘셉트, 성균관 어떻게 담아냈나’에서는 지난해와 달라진 축제의 컨셉 전반을 다뤘다. 이번에 양 캠퍼스가 다른 컨셉으로 축제를 전개한 이유와 각 컨셉의 의미에 대한 학우들의 의문을 해소해 준 기사라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축제 뒤 숨겨진 땀방울’에서 숨겨진 실무단과 학교 측의 노력
지금은 즉문즉답의 시대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질문하고 답도 바로 얻을 수 있다. 잘 발달된 인터넷과 우수한 검색 엔진들, 그리고 최근에는 챗GPT라는 생성형 인공지능 덕분에 원하는 답을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듯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식이 폭발하는 시대를 살면서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 되어 버렸으며, 대량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면서 주어진 정보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현재를 4
처음 만나던 날을 종종 떠올립니다. (3,-1). 공책을 펴고 좌표평면을 그려 당신의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그때 작게 그려 넣은 검은 점이 작도의 시작이었다면, 어쩌면 모든 건 늦여름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분주하고 소란스러운 공기 속에서, 당신은 책상 아래로 살짝 꼬은 다리를 늘어뜨리고는 통-통, 느린 속도로 발 리듬을 탔습니다. 목이 짧은 양말을 신은 탓에 리듬에 맞추어 복사뼈가 사라졌다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의 모든 차림은 계획되어 있었고, 차림새에 있어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실수를 만들지 않
2023년 성균관대학교 대동제(大同祭)는 자과캠 ‘성균제-유록화홍(柳綠花紅)’과 인사캠 ‘해방, 금지함을 금지하다’라는 각각의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었고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유록화홍(柳綠花紅)’은 소동파가 읊었던 바, 버들은 푸르고 꽃[복숭아꽃]은 붉다는 뜻이다. 조금도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즉 청춘의 순수함과 생명력을 상징한 슬로건이라고 생각된다. 인사캠의 ‘해방, 금지함을 금지하다’는 프랑스 68혁명의 구호인데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던 혁명처럼, 역사의 중심인 성균관에서 다시 한번 해방감을
성유진(경영 23)인사캠과 자과캠 대동제를 모두 경험했는데, 두 축제 모두 ‘청춘’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축제였다. 또래들과 함께 축제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입학하고 처음 느껴보는 대학 축제라 더 설렜던 것 같다. 다만 인사캠에는 성균인존이 따로 마련되지 않고 취식존이 부족해서 약간 불편했다. 손윤서(건설환경 22)킹고응원단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면서 ‘성균인’의 이름으로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사캠 대동제의 경우 오후에 많은 인파가 몰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대운
세차게 비가 오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쨍쨍한 날씨가 이어진다. 변덕을 부리는 봄날의 날씨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태도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요즘이다. 어느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찾아오다가도, 때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갈증이 샘솟기도 한다.변덕스러운 날씨, 오락가락하는 내 기분과 다르게 시간은 진득하리만큼 정직하게 흘러간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 강사 알바를 하러 지하철에 올랐다. 그때부터 꽤 긴 시간을 가야 했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요즘 넷플릭스에 방영되는 “나는 신이다”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음의 질문을 하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필자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높은 자살률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종교가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서구의 많은 연구 결과들은 대체로 종교가 자살 생각이나 행동을 줄여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종교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종교별 차이는 있는지, 그리고 종교를 가진 사람이 낮은 자살률을 보이는 구체적인 이유
'이 세계는 작은 보물로 넘쳐난다. 이 사실을 의식하며 지낸다면 삶에는 늘 보물찾기의 설렘이 함께할 것이다.'-모리사와 아키오『사치스러운 고독의 맛』 중.
‘정중동’은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운 한자성어이다. ‘정’은 조용함을 의미한다. ‘동’이야 모두 알테지만 움직인다는 뜻이다. 정중동 – 조용함 속에 움직인다는 뜻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정중동'을 요란하지 않되 깊게 흐른다는 뜻으로 새긴다. 사려가 깊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함부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정중동의 사람이 반드시 과묵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중동'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필요한 가치이다. 평소에 말이 많고 떠들석한데 중요한 판단과 결정에서는 사려가
“생소한 곳에서 학교 선배를 만났다는 사실이 신기해 급격히 친해졌는데, 알고 보니 JMS 측에서 같은 학교 출신이나 공통점을 가진 신도를 참가자 근처에 배치한 것이었다.” 우리 학교 사이비 포교 피해 학우의 말이다. 사이비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길가에 서서 설문조사를 권하는 한 쌍의 남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오늘날 사이비 단체는 이보다 훨씬 치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대학 사회에 스며들어있다. 사이비 단체에게 대학교는 ‘황금어장’이라고 한다. 이에 성대신문 보도부와 사회부는 사이비 단체란 무엇이고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포교하는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악기로 서로 다른 음을 내고 그 음들은 하나의 곡으로 수렴한다. 엉망진창이던 첫 합주에서 몇 번의 합주를 거쳐 완벽하게 들어맞는 박자와 음정을 몸소 느낄 때면 짜릿하다. 밴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2년 전에 동아리에 들어와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처음 베이스를 잡았다. 처음 베이스를 잡았을 땐 내가 맞는 소리를 내고 있는지, 제대로 된 자세를 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악보가 지시하는 대로 손을 프렛에 가져다 댄 채 줄을 튕겼다. 나는 그럴듯하게 연주는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였다.작년
저는 지난 30년간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학의 경이적인 발전을 지켜보았습니다. 짧은 전공지식으로만 알고 지내던 정보들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영역까지 진보하는 공학의 성취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경지로 발전해가는 추세입니다. 이런 추세는 공학자와 과학자를 자신의 직업적 영역에 좀 더 깊숙하게 매몰시킵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은 성공적인 직업적 성취만이 인생의 성공이나 행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직업
"Light of Korea"
대학가에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점이 시험공부로 바빠지는 때와 매년 겹쳤다. 올해 벚꽃은 중간고사 한참전인 3월말에 폈고, 꽃이 거의 진 다음에야 때늦은 벚꽃축제를 진행한 지자체들도 있었다. 동해에서 잡은 명태는 밥상에서 사라졌고, 겨울날 개천에서 썰매 타던 추억도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일상의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장기적인 기온상승의 원인은 무얼까? 지구에 엄청난 에너지를 보내주는 태양의 활동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과거 1만 년 전부터
상위 기구 명시 및 의결 과정 통일에 힘써장기적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 있어지난해 10월 24일, 성균관대학교 제54대 총학생회 Spring(인사캠 회장 장필규, 자과캠 회장 최유선)의 주도하에 양 캠퍼스별로 분화돼있던 총학생회칙이 ‘통합 총학생회칙(이하 통합 회칙)’이라는 이름으로 통합 및 개정됐다. 개정 이후 양 캠퍼스의 첫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를 마친 지금, 통합 회칙의 내용과 회칙 개정이 갖는 의의를 짚어봤다.학생 자치의 근거, 총학생회칙총학생회칙(이하 총칙)은 학생 자치의 기반이 되는 원칙이며, △교내 자치 기구
자유로워 보였던 당신의 선택이 사실 의도된 것이라면 어떨까. 강압이 아닌 부드러운 개입을 뜻하는 넛지(Nudge)는 인간의 선택이 유도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바로 이 효과를 적용한 ‘넛지 디자인’은 외형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까지도 디자인한다. 나아가 넛지 디자인은 공공의 가치와도 결합해 사회를 더 바람직한 쪽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 선한 힘은 결코 강요하지 않으나, 때로는 강제성보다도 더 강력하다. 그리고 이는 사소한 시도와 관심에서 출발했다. 매일 지나친 일상 속에도 미처 인지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우리를 변화시키는 넛지
음악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면이 주어졌다. 음악에 대해 쓸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음악이 왜 멋진지 설명해보도록 하자.음악은 어떤 시간을 붙잡아버린다. 지금 핸드폰을 들어 음악을 틀어보자. 3분이든 5분이든 8분이든, 일정한 시간이 제시되고 그 시간 동안 음악은 재생된다. 지정된 시간 동안 지정된 속도로 펼쳐진다. 글을 읽거나 그림을 보는 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음악에는 ‘속도’라는 속성이 내재해있다. 글이나 그림은 감상자 자신이 임의로 정하는 속도에 맞추어 흘러가고, 이를 통해 작품이 감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