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도 되지 않는 짧은 수습기간이 끝났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받았을 때 정말 설레었다. 뭔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도 들었다. 신문기사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던 거나 잘할 걸’이라는 미련도 들고,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되고, 저 분들처럼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이제는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물밀듯이 밀려온다. 때마침 일기를 쓸 기회가 와서 너무 고마웠다. 아무거나 써야지.지느러미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휘놀던 붉은 물가에 일어서다. 저 너머 힐끗하게 원이 내비치다. 희뿌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는 것.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이다.-헤르만 헤세나에겐 사소한 습관이 하나 있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을 하는 당시에 읽고 있는 책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소한 습관이다. 예를 들어 생텍쥐페리의 를 읽고 있다면 난 그 세계관에 맞춰 사고하며 그 책의 주인공 어린왕자처럼 생각한다. 자라오면서 난 수많은 세계관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번 방학의 나는 헤르만 헤세와 그의 ‘자식들’과 함께 읽고, 자며, 숨 쉬었다. 싱클레어, 한스, 싯다르타. 이
이 질문은 성대신문에 들어오기 위해 논술을 볼 때 나에게 주어진 질문이었다.기자의 자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처음 나는 공정성과 글쓰기 실력이라고 대답했었다.왜냐하면 성대신문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기자들은 글쓰기에 특출한 능력이 있어서, 혹은 아는 지식이 많고 시사에 관심이 많아서 기자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그렇기에 과연 내가 기자로서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고민을 하며 지원을 망설이다 일단 해보자는 마음에 성대신문에 지원을 했고, 입사하게 되었다.처음 성대신문사에 발을 들였을때 나는 역시
수습기간이 끝났다.드디어 준정기자가 되었고 신문사에서 배정된 자리에서 수습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수습기자였을 때 언제 자리를 배정 받고 준정기자가 될까 생각했었는데 벌써 준정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느껴진다. 2학기는 1학기 보다 팀플과 과제가 많은 수업이 대부분이어서 트레이닝 과제가 정말 짐처럼 느껴졌다. 수습기간을 열심히 보내겠다는 내 다짐과는 달리 열심히 하지 못했다. 때려치고 싶었던 순간이 정말 많았고 실제로 한번 때려치고 다시 신문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번 포기했던 신문사이기에 다시 들어온 신문사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수습트레이닝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편집회의다. 이론교육을 마치고 정기 편집회의에 참여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날은 성대신문사 전체 기자들을 본 첫날이기도 했다. 자리가 어색하여 쭈그리고 앉아 괜히 신문을 뒤적거렸다. 시간이 되자 다들 긴 책상에 둘러앉았다. 편집회의는 지면평가, 문건 피드백 순으로 진행됐다. 발간된 최신호 지면평가 도중 편집장이 물었다. “수습분은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당황했지만 이미 나온 의견과 같은 생각이라고 아슬하게 대처했다.문건 피드백은 담당 기자가 기사의 구성과 진행 정도를 설명하고, 다른 기자들
한 학기 동안 이어졌던 트레이닝의 마침표를 찍는 수습일기를 적으려고 하니 아직 기사 하나 쓰지 않았는데도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든다. 평소 언론에 뜻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학보사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기에 수습모집 포스터를 보고서 ‘한 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었다. 그렇게 다소 경솔한 자세로 시작한 트레이닝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입학하고 처음으로 성대신문을 꼼꼼히 읽어보고, ‘수습 나부랭이가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으로 지면을 평가하고…….그렇게 트레이닝을 하는 동안 신문사 생활이 그저 재밌
수습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딱 4개월 전에 성대신문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 통보를 받았던 그 순간만큼은 정말 기뻤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보이겠다고 마음먹었다. 성대신문 입사 후 긴 트레이닝을 받았던 수습 기간을 거치고, 이제는 매일 신문사에 출근하는 준정기자가 되었다. 사실 지금은 처음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에 비해 의욕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감사히 일해야한다고 생각한다.첫 트레이닝에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기자상에 대해 서술하는 과제를 받았었다. 초심을 되살리
동아리 부스에서 처음 성대신문 설명을 들었을 때는 너무 바빠 보여 굳이 신문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1학년 1학기를 너무 나태하게 보낸 것 같아 2학기에 신문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신문사에 처음 들어와서 주2일 2시간씩 트레이닝을 하며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하니 살짝 벅찼고 힘들었다. 특히 중간고사 기간과 겹쳤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나갈 뻔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가지 않았던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트레이닝이 끝났을 때 해냈다는 성취감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방중활동에 참여하는 지금, 다음
연하게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성대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힘든 단체라고 들었지만, 일반 대외활동처럼 기자에 대한 체험이 아닌 학교 기자로 매주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주 1회 발간이지만, 직접 기사를 작성하고 기자로 힘든 부분을 직접 느끼는 것은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데 큰 결정을 끼칠 것이다.한 학기 동안 수습 기간을 마치고 준정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취재하면서 학기 중에 나갈 기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이번 주 월요일 처음으로 취재를 나갔다. 성대 신문과 관리팀이 관계가 좋지 못하지만, 관
글 쓰다보면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 다른 별들도 하나 둘씩 떠오르듯이 생각, 감정, 기억이 글을 통해 나타난다. 처음 신문사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는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거창한 사회발전이나 학교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을 하고 싶었다.하지만 내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기사는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면 안 된다. 독자가 원하는 것을 써야하고, 신문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우리 성대신문사에서는 편집회의를 통해 기사에서 ‘나’를 분리한
어제 가위에 눌렸다. 나는 피곤하면 종종 가위에 눌리는데 어제 많이 피곤했나보다. 방중일정 일주일차에 들어섰는데 벌써 피곤하다니! 신문사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활동이 될 것 같다. 문득 정기자 이상까지 잘 마무리하여 먼저 떠나간 선배들이 대단해보인다. 취재를 하는 일, 기획문건을 쓰는 일, 피드백을 받는 일, 컨택을 하는 일, 행정적인 일을 하는 일 등 무엇인가 계속 쏟아진다.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학교 졸업 후의 일도 생각해 봐야하고 요즘 이런 일들 때문에 뇌가 쪼글쪼글해졌나보다. 사랑니를 뺀 지 삼일밖에 되지 않아 피(?)
신문사에 들어오며, 기대됐지만 걱정이었던 건 ‘바쁨’이었다. 하고 싶던 일에 파묻힐 수 있어 두근거렸지만, 그 두근거림은 ‘그에 숨이 막힐까’하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며, 밀려오는 트레이닝 과제가 때로는 코밑까지 차올랐었다. 그래도 열심히 발길질하며 다시 떠올랐다. 그와 함께, 대여섯 시간은 기본인 회의들과 빽빽한 방중일정 덕분인지 바쁨은 익숙함으로 변했다.매주 월요일, 문자 그대로 종잇장처럼 가벼운 성대신문이 학교 곳곳에 놓인다. 누가 봐도 뽀송뽀송한 새 신문지다. 하지만 준정기자를 앞둔 내겐, 땀에 축축하게
어느새 개강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신문사 활동을 시작한 지는 한 달이 다 되간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며 적지 않은 고민이 하나 둘 생긴다.우선 생활할수록 책임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처음에는 그저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맘에 들어왔지만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하는 자리에 들어온 것을 깨닫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있어 시작한 일이기에 그만두기보다는 잘 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문사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강인함을 키울 필요가
짧고도 길었던 트레이닝 시기가 끝이 났다. 추가 수습으로 들어와서 트레이닝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그만큼 일정이 타이트하기도 했다. 때로는 내 일정과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트레이닝 과제를 하느라 새벽 늦게 잠이 든 적도 있다. 그랬던 트레이닝 기간이 끝나고 나니 어느새 방학이 반절이나 지나있었고 8월 중순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트레이닝이 아니라 매 순간이 실전이다.앞으로 어떤 기자가 되겠다는 뻔한 ‘클리셰’는 반복하지 않겠다. 누구나 다 좋은 기자가 되고 싶어서 지원했을 것이고,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기자 모습은 첫 번째 트레이
‘성균관대학교 공식 언론사 성대신문’의 글 중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팩트체크 없이 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글이 수습일기가 아닐까. 내가 주인공이자 작가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기에 수습일기만큼은 화려하고 깔끔한 글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글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사실 글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생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문자와 글의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 추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글을 썼을 것이다. 그림 같은 문자에
수습기자 때 다들 우스갯소리로 부르던 질병방을 드디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됐다. 그때는 그저 웃긴 마음뿐이어서 웃고 넘겼지만 방중 첫째날에 보는 질병방의 닫힌 문은 감회가 새로웠다. 몇 개월 뒤 내 모습은 저 굳게 닫힌 문 뒤에서 자는 모습이 아닐까.제 몫만 잘하는 기자를 준정기자의 목표로 삼았다. 약간의 개인적인 바람도 더하자면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정도의 배움이면 지금은 충분할 듯 싶다.누군가는 너무 일찍 학보사에 발 들인 것이 아니냐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대학생으로서의 첫 날, 입학식에서 성대신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신문을 만드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또 얼마나 고된지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의 패기가 나로 하여금 지원서를 쓰게 했다. 면접을 보고 합격했을 때까지는 참 즐거웠는데, 트레이닝을 시작하자 줄곧 꿈꿔왔던 대학의 동아리와 신문사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계적인 업무 체계와 마감일정 그리고 편집회의는 딱딱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 깊은 공부를 해보지 못했기에 얕은 지식으로 기획문건을 만들면서 제출할 때는 창피함과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
길었던 한학기가 끝이 났다. 충분히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습기간동안 내가 충분히, 제대로 배웠나’하는 의문이 남아있다. 수습기간이 완전히 끝이 났을 때 이제는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대감보다는 긴장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사실 평소에 글을 많이 써 본적도 없을뿐더러 진로도 언론 쪽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호기심으로 들어온 신문사에서 이제는 스스로 보람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내 이름을 걸고 나오는 기사들로부터 그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 기사를
성대신문에서 한 학기 동안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받으며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매주 모여서 신문사가 하는 일, 각 부서의 역할 등을 공부하며 신문에서 더 흥미가 생겼다. 평소 신문을 읽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번에 사진부로 부서발령을 받으면서 기사의 내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다른 기자들의 질 높은 기사를 위해 도움이 되도록 사진 찍는 방법에 대해서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반면 트레이닝 기간 동안 아쉬움도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마치고 어느새 수습일기를 쓰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큰 열정이나 의지를 가지고 성대신문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은,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논술 시험을 볼 때부터 ‘굳이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트레이닝을 하면서는 생각보다 바쁜 일정에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6주간의 수습기자 트레이닝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뿌듯함이라는 감정이 먼저다. 이제 정말 성대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