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광화문 거리는 유령으로 가득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려는 국민들의 영혼이 유령이 됐다.” 지난 8일 오후, 종로 한복판에서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종대왕상을 점거한 이들은 “우린 누구를 위해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지나. 아이들을 위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표했는데….”라며 국가의 의미를 물었다. 8명의 학생들이 꾸린 이 기습시위는 경찰 투입 3분 만에 진압됐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슬픔의 여파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순진한 학생들을 바다 밑으로 침수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말이다.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서 합동분향소에는 연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각계각층에서의 성금도 모이고 있다. 언론은 이러한 슬픔을 다양한 형태로 나르고 있다. 대학가 역시 추모 분위기가 한창이다. 우리 학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5월 대동제 행사를 취소·연기했고 여러 가지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노란 리본’은 추모의 상징이 돼 교내 곳곳에 걸려있다. 필자는 세월호 발생 이후 드러나는 어처구니없는 사실과 이로 인한 희생자들을
“너 좀 편협한 거 같아.”“너무 공격적이야.”“왜 그렇게 삐딱하게만 생각하니?”필자가 가끔 듣는 말이다.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전달하는 일을 할 때 자주 듣는다. 사람들은 내게 주류의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 대학에 들어오기 전 나는 주류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고 있었다. ‘비주류의 시각에서도 바라보자’는 말이 정말 편협한 것일까? 왜 사람들은 그것을 편협하다고 느낄까?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기득권의 입장에서 재구성됐다. 이미 주류와 기득권의 입장은 널리 퍼져
벚꽃이 흐드러진 완연한 봄날이 왔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노래 중 하나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다. 지난달 26일, 우리 학교 600주년기념관 앞에서도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가사는 원곡과 사뭇 달랐다. 초등학교 음악시간에나 쓸법한 앙증맞은 멜로디언과 기타 한 대로 구색을 갖춘 반주에 맞춰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벚꽃엔딩’이 아닌 ‘위헌 학칙 엔딩’을.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바꿔요. 이 학칙을/ 학교 마음대로 위헌 학칙 어떤가요 (oh no)/ 열 받은 그대와 나 서로 손잡고/ 엉망진창
요즘 들어 국정운영의 화두는 단연 ‘규제 개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민·관 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를 열어 7시간 넘게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암덩어리’ 같은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조·중·동 등 다수의 일간지 역시 연일 비합리적인 규제를 보도하며 분위기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는 현재 1만 5269건인 등록규제를 박 대통령 임기 내에 80%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필요해진 규제는 없애야 마땅하다. 그러나 규제는 본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처럼 ‘규제는 무조건 나쁜
최근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 중 최종 파트너 선택을 앞두고 출연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해당 출연자는 ‘힘들어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는 유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프로그램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면서 제작진을 향한 비판이 일었다. 이어 일반인들이 짝을 찾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 구성 자체가 위험하다는 비난이 거세짐에 따라, 결국 프로그램이 폐지됐다.이번 사태를 두고 한 평론가는 “이전엔 △△녀라며 출연자들을 아이템화 시킬 때는 언제고, 사건이 터지니 이제야 프로
지난달 25일, 인사캠은 졸업식에 참석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금잔디 광장을 가득 메운 졸업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는 000 때문에 대학생활이 행복했어요”라는 문구의 빈칸을 채워달라는 것.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졸업을 앞둔 대부분의 성균인들은 빈칸에 주저 없이 ‘동아리’를 넣었다. 다양한 답변을 얻기 위해 질문을 수정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성대에서 즐거웠던 이유’, ‘기억에 남는 활동’, ‘기뻤던 일’ 등, 어떤 말을 붙여도 학교에서 만난 인연들로 뭉친 학내 동아리에 대한 애정이 가장 두드러졌다. 환한 표
“관심 없어” 경희대에 다니는 필자의 동생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최근 경희대에서는 일방적인 등록금 3.7% 인상 고지로 논란이 일고 있다. 경희대 총학생회가 등록금심의위원회를 거부하고 장외 투쟁을 진행하는 사실에 대해 아는지 물어보자 “알리지 않는데 어떻게 아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막연하게만 느꼈던 총학생회와 ‘일반 학생’ 간의 거리가 보이는 듯 했다. 2011년은 등록금 부담을 견디다 못한 대학생들의 분노가 표출된 한 해였다. 2000년대 초부터 연평균 6% 넘게 인상돼 온 등록금은 그들에게 ‘살인적’이었다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테니까.”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 등장하는 문구다. 수레에 실려 있는 건 꿈과 행복이 아닌 제도와 위선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한스 기벤라트는 수레바퀴 아래로 자신을 자꾸만 밀어 넣는 현실 앞에서 힘겨워한다. 자전 소설로도 유명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수레바퀴 밑에 깔리지 않기 위해 방황하고 좌절하며 성장통을 겪었던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다.2010년도 말, 필자도 자꾸만 짓눌러오는 수레바퀴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다. 수레에 담겨 있던 건 ‘가정을 덮친 뜻밖의
'寒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한겨울 추위가 지난 후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논어 자한편 제27장에 등장하는 문구다. 지난달 본지 기자단이 제작 및 발간한 무제호 호외 2호에는 해당 글귀를 활용한 내부 광고가 게재될 예정이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처럼 기자단도 어려움을 견뎌내고 대학언론인으로서 참모습을 갖춰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였다. 지면 관계상 해당 광고는 호외에 실리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기자단의 일거수일투족에 녹아들어 있었다. 기자단은 올해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냈다. 주간의 결호
“난 ‘그러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은 앞의 좋은 말을 깎아내리는 말이에요.”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등장하는 클레오파트라의 대사다. 고대 로마 집정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해당 작품 속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등장한다. 사자를 통해 떨어져 있던 안토니우스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클레오파트라는 사자가 ‘그러나’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의 말을 끊는다. 그리고 앞서 보여준 문구를 말한다. 예상대로 ‘그러나’ 이후에 나올 얘기는 그녀의 가슴을 아리게 할 만
‘나무를 베는 데 딱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난 도끼를 가는 데 45분을 쓰겠다.’에이브러햄 링컨이 했던 말이다. 그가 해당 문장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충분한 준비기간의 중요성’. 사실 해당 의견은 그만의 사견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 창에 '준비 명언'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비슷한 주제 의식을 나타내는 문장이 쏟아진다. 이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통설'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널리 공유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해당 의식은 학내에선 '통설'로 자리 잡지 못한
‘사다리 걷어차기’란 표현이 있다. 장하준 교수가 본인의 저서 제목으로 사용한 해당 용어는 책의 유명세와 함께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장 교수는 해당 저서를 통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시절 선택했던 정책과 제도가 현재 개발도상국에 의해 채택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논지를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이 이용할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냈다. 요즘 필자는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이 경제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본교 학생 사회에서 해당 표현에 부합하는 일면을 발견해서다. 최근 학생 사회를 둘러
최근 힙합계의 디스(diss)전이 큰 관심을 끌었다. 랩을 통해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뮤지션들을 비방하는 것이 ‘디스전’의 골개다. 비방엔 그에 대한 맞대응이 따른다. 즉, ‘디스는 디스를 부른다’. 스윙스를 시작으로 이센스, 개코 등 유명 랩퍼들이 디스전에 가담했다. 이윽고 극단으로 치달은 디스전 속에서 독특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랩퍼 양동근이 ‘Mind Control’이란 곡을 발표한 것이다. 해당 곡은 한국 힙합계의 디스전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러셀의 역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는 양동근의 랩을 두고
'셜록 본 사람들 공감’. 얼마 전 인터넷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장식하던 문구다. 해당 검색어를 클릭하면 두 개의 얼굴 그림이 나온다. 나타내는 대상은 동일하다. 영국 BBC의 유명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러나 두 그림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왜? 힌트는 그림 밑에 달려 있는 단서 조항에 나와 있다. ‘셜록을 처음 접할 때’와 ‘셜록을 다 봤을 때’. 전자는 그다지 눈에 띄는 얼굴은 아니다. 반면 후자는 미남 그 자체. 얼굴 주변에선 빛까지 반짝인다. 외모의 급발전을 이뤄낸 공신은 드라마 속 주인공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달과 6펜스)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한 말이다. 성공한 주식중매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던
흔히 인간은 태어나면서 접하는 새로운 세상에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10개월 동안 듣던 엄마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신문사 생활에서 출생에 비견할 충격을 받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신문사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들은 스무 살 새내기를 더욱 성장하게 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돌이켜보면 고등학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안나카레니나)얼마 전 영화로도 개봉됐던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문장이다.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고전을 구성하는 여러 문장 중에서도 위의 한 문장이 유독 유명세를 타
손석희 교수의 자전적 에세이인 ‘풀종다리의 노래’에는 그의 앵커 시절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 88년 당시 MBC 노동조합은 첫 파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쟁의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공정방송 쟁취’라고 씌어있는 작은 리본을 달 것을 요청했다. 당시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고
'해야 되는데 해야 했는데'열 글자로 구성된 짧은 글이다. 보통은 글을 읽고 고개를 갸웃한다. 알쏭달쏭한 이 글, 나름 문학 작품이다. SNS 시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하상욱 씨의 시집 ‘서울 시’에 포함돼 있는 어엿한 시 한 편이다. 의문의 갸웃거림은 시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공감의 끄덕임으로 변하곤 한다. 열 글자에 의미를 부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