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는 것보다 취재후기를 쓰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그 어떤 자료 조사 없이 써야 하는 글이라서 그런 것인지, 이 글 아래 내 사진이 들어가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소 부끄러운 기분이다. 그래도 누구나 채울 수 없는 여론면을 이만큼이나 차지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삼으려 한다. 내 첫 기사가 담긴 1706호부터 이번 기사가 실린 1713호까지, 신문이 8번 발간될 동안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사실 딱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기사 발간 과정에서 놓치는 것들도 많고, 바보 같은 실수도 한다. 이번 기사를 쓸 때도 첫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한 스무 살의 나는 로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동아리에 대한 로망이 가장 컸다. 교내 동아리에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동아리 홍보 부스를 통해 풍물패 얼을 알게 되었고, 얼의 화목한 분위기에 이끌려 가입했다. 그렇게 나는 로망의 대부분을 풍물패 얼에서 이루었다.장구를 제대로 쳐 본 적도 없이 무작정 들어온 동아리였지만, 가을 정기 공연을 진행하면서 풍물놀이에 점점 빠져들었다. 다 함께 만든 공연은 풍물놀이와 풍물패 얼에 많은 애정을 갖게 하였다. 힘들었던 순간들
“대표님, 대표님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대표님이 그렇게 질문하시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다시 하셔야 합니다.”나는 20년 넘게 국내 굴지의 유통회사에서 바이어로, 또 MD 전략팀장으로, 그리고 점장으로 일했다. 대표이사에게 중요한 보고를 하다가 답답해진 마음에 내뱉은 저 말 한마디로 회의실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앞뒤 안 가린 내 태도가 문제인가?우리 시대(?)는 겸손(shy)이 미덕이었다. 아니, 겸손을 강요당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세월
아침이 되면 하루 여행을 시작한다.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여행의 맛을 알고부터 공간 이동에 시큰둥해졌다. 나이가 들어 몸이 고단해진 탓이 클 테다. 대신 시간의 마디마다 나름의 의미를 챙겨 보는 이 노릇도 꽤나 근사하다. 똑같은 일상이 마냥 똑같지 않다는 것도 똑같은 일상을 맞는 것 자체가 은혜로운 일임도 깨닫는다. 어떤 여행도 나를 키우지 않는 건 없다.
요즘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 GPT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는 점에서 이전 챗봇들과 다르다. 사람처럼 대화도 하고 에세이도 쓰고, 심지어 시와 신문 기사도 쓴다.현재의 챗GPT는 초거대 언어모델인 GPT-4(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version-4)를 사용한다.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언어를 생성하고 추론할 능력을 지녔다. 생성형(Generative)이란 문자열, 그림, 음악, 음성 등의 답변을
고등학교 내내 언론인을 꿈꾸며 공부해온 나는 경험의 한계가 있었다. 항상 매체에만 갇혀 사회를 바라봤을 뿐 내가 직접 뛰어들어 볼 기회도, 그 기회를 만들 용기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뒤에 서 있기만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이런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그렇다. 난 어쩌면 세상에 더 뛰어들고 싶었던 것 같다.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성대신문에 들어오고자 결심했다. 내가 직접 주제를 찾고, 기사를 쓰고, 인터뷰이를 찾아 인터뷰하고, 그 기사가 학교 내에 퍼진다는 것이 나에겐 큰 매력이었다. 세상에 뛰어들고자 했던
대학교에 들어온 후의 일상을 돌아보면, 나는 점점 도피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부정이 두려워 시작조차도 않고 무조건적인 안정과 현상 유지만을 추구하였다. 잉여로운 방학을 보내던 중,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통해 주어진 현재의 시간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그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 때문에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지금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성대신문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결과물에 대해 계속해서 평가를 받아야 하고, 평가를 바탕으로 더
힘들다. 주말을 제외하고 10시까지 학교에 출근하는 것도, 게다가 방학에. 매일매일 생각하고, 쓰고, 찍고, 편집하고, 수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는 게.미래를 차츰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시기인 3학년 1학기에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하고 있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나는 문득 조급해졌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 학과에서 해오던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대신문 뉴미디어부에 지원했다. 사실 나는 항상 저지르고 후회하는 스타일이었다. 최근에는 저지르기
나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편이고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히 끝내려고 하는 편이지만, ‘해야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한없이 게을러진다. 1학년을 보내며 느낀 점이었다. 끊임없이 할 일이 주어지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교 생활은 온전히 나의 선택의 연속이었다. 크게 엉망으로 산 것은 아니었지만 별다르게 바쁜 일 없이 1학년을 보내며 남은 대학 생활은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생하더라도 조금 바쁘게 살면 뭐라도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성대신문에 덜컥 지원하게 됐다.성대신문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
폭풍 같던 새내기 시절이 지나고 2학년으로서의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성대신문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다짐이 필요했다. 혼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책 읽고, 일기 쓰며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새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되어있었고, 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자’의 피상적인 이미지는 평생 공부하면서 세상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직업이었고, 이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완전하게 부합하기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기자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멋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나는 쉽게 얻어지는 것들만 얻으며 살았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애를 쓰는 걸까? 추하게 버둥거리며 애쓰는 것이 ‘노력’이라는 빛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내가 무언가를 위해 힘껏 노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됐어.’ 부끄럽지만 지금도 내가 정말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 에너지가 많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해 보면 1년 동안 대학에 다니면서 한 번도
"만나이로 23살이니깐 우리는 아직 젊은거야". 올해 초, 같이 밥을 먹던 대학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꽤나 안심했었던 기억이 든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학교에 입학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렇다 할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졸업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항상 고민했었다. 그런 와중에 우린 아직 젊다는 친구의 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여럿 보면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젊을 때 하고싶은 일에 도전하라는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