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직후 필자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외도는 어느새 고치기 싫은 습관이 됐다. 그 때 그 시절, 캠퍼스를 거닐던 필자의 모습을 좀 보라. 턱을 치켜들고 세상을 걷어차듯 걸을 때마다 온몸에서 ‘젊음, 청춘, 충만’과 같은 글자들이 꽃가루마냥, 팝콘마냥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왼 팔로는 A의 팔짱을 끼고 오
“그거, 들어왔소?” 어느 홍대 골목. 허름한 상점 안에서 은밀한 거래가 오간다. ‘물건’을 찾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 시도 때도 없는 “까도 되요? 진짜 까요!” 외마디 외침의 정체도 도무지 모르겠다. 자 이제 몇 걸음 물러서 간판을 올려다보자. 삼원색으로 빛나는 그 이름. &lsquo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오후 여섯시의 약속다방. 오늘도 역시 손님은 없다. 사장은 만화책에 코를 박은 지 오래. 다방 레지 양희는 애꿎은 사연 신청 종이로 학을 접는다. 디제이 박스 안에서 빈둥대던 필석은 다방 안으로 들어서는 여자를 보며 헛것인가, 눈을 꿈쩍인다. 그녀가 또렷한 사투리로 묻는다. “장사하는 거, 맞지예?”합천 출신 시골 처녀 스물여섯 살 김
여자에게 묻는다. 초등학생 시절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는 누구였나. 선생님? 부모님? 혹시, 동성의 선배나 급우는 아니었는지. 자, 그럼 다음 질문.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불과 일주일 새 당신의 세계를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바꿔 놓았던 경험이 있는가. 또는, 여자 상사가 교묘히 당신보다 남자 동기에게 너그럽게 군다고 느끼지 않나. 격렬하게, 혹은
40대 주부 정00씨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A와 B를 만났다. “페북 보니까 너도 XX 하더라?” A가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 이름을 대며 정씨에게 물었다. 친구등록을 마친 둘은 서로의 마을을 방문해 필요한 아이템을 교환하며 게임 노하우를 공유했다. B가 호기심을 보이자 정씨는 적극적으로 SNS 가입을 권유하고 손수
황무지 한 가운데 자리한 바스커빌 가(家)에는 오랜 전설이 있다. 아름다운 동네 처녀를 겁탈하려 저택에 감금한 가문의 남자와 그를 피해 황무지로 도망친 여자. 그리고 추격 끝에 마주한 두 남녀 앞에 나타나 바스커빌의 목덜미를 무참히 물어뜯은 불을 뿜는 검은 개. 선혈이 낭자한 죽음 앞에 처녀마저 까무러쳐 죽은 후 바스커빌의 남자들은 영영 평온한 죽음을 맞을
. 살인 혐의로 수감된 한 남자가 19년 만에 자유를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혹시 기억하나요?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탈옥’ 이전에 ‘탈세’의 죄를 물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여기,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 자수를 한 양심적인 금융 사기범이 있습니다. 어느 날 쇼생크의 죄수들은 일제히
엄보람 기자(이하 엄) 어떤 계기로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셨는지 궁금해요김환 뮤직비디오 감독(이하 김) 고등학교 때부터 쭉 밴드 활동을 했어요. 대학에 가서도 수업 들은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매일같이 홍대 쪽을 떠돌면서 초창기 노브레인, 크라잉넛 멤버들 사이에서 음악을 하는 게 좋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영상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관객은 완성된 공연만을 감상할 뿐 그 두꺼운 커튼 뒤에서 어떤 수고가 오갔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 공연 예술 1세대라 불리는 고희경 기획가는 젊음을 송두리째 그곳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등 예술의 전당에 묵직한 작품들을 성공리에 선보인 지 어언 23년. 이제는 신도림 &ls
전라북도 전주와 완주 사이 모악산 아래 자리한 한가로운 미술관. 이곳에 스물일곱가지 얼굴의 아시아가 깃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 주제인 ‘CROSS+SCAPE’는 교차(Cross)하며 소통하고 융합하는 풍경(Scape)을 의미한다. 한국작가 7인이 아시아 10개국을 여행하며 마주친 타국의 인상과 20인의 아시
음악이 좋아 오디오에 관심을 쏟았다. 사진기 너머로 세상을 보는 게 좋아 셔터를 눌렀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글을 썼다. 이렇게 ‘재미’에서 출발한 그의 행보엔 어느새 오디오칼럼니스트, 사진작가, 베스트셀러 작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그럼에도 ‘잡가’라는 수식어가 가장 좋다는 그는 “본인 요청으
서울 무형 문화재 1호 옻칠장. 그에게 따라 붙는 첫 수식어다. 공방 문 앞으로 마중을 나온 손대현 씨는 소박한 옷차림과 안료로 얼룩진 손이 잘 어울리는 진정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한국 문화의 집에서 일반인을 위한 옻칠 강의에 힘쓰는 한편 우리 칠기로 세계에 ‘노크’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에 위치한
인천광역시 십정 1동은 자그마치 20년 동안 재개발 ‘예정’ 지역으로 방치됐다. 이 슬픈 도시에 살고 있던 한 화가는 마을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사람을 모아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러 고마운 이들의 붓질이 라는 이름 아래 삭막한 마을 구석구석을 색으로 메워가는 동안 △독거노인들을 위해 고장 난 가전제품
산하고 하늘하고 누가 누가 더 푸른가. 그에게 묻는다면 산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요, ‘쪽’이라 답할 것이다. 도넛 체인점, 아트 갤러리 사업을 뒤로하고 과거의 색을 지키는 일을 택한 전통염색연구가 홍루까 선생. 염색 공부를 위해 늦깎이 학생도 마다않는 그를 ‘하늘물빛천연염색연구소’에서 만났다. 엄보람 기자(이하